인엽

2013 성서한국 대회를 멀리서 바라보며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라 당연히 참석은 못했지만, 대회 참가중인 많은 페친들의 포스팅과 성서한국 블로그(http://biblekorea.tistory.com/)의 중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식을 접하다 보니 참 반가운 마음이 든다. 지난번 시카고 코스타에 참석했을 때처럼, 왠지 뿌듯함이나 동지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성서한국이 시작되었던 초반에는, 그 이름에 걸맞는 대회가 될지 약간의 우려도 있었는데, 금년에 행사에 대한 소식들과 강사분들 면면을 보니, 좋은 행사로 자리잡고 치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몇자 적어본다. 

 

복음주의 권에서 주목받는 분들이 대거 강사진을 참여한것이 인상적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김회권 목사님의 설교는, 정치 사회 전반이 절망스러운 이 시대에, 성경의 눈을 통한 날카로운 분석 뿐 아니라,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신거 같아 좋았다. 김근주 교수님은 지난 코스타에서 만나뵙기도 했고, 참석하지 못한 강의까지 녹음화일로 다 들어보았는데, 깊이있는 연구와 고민이 알차게 담겨있는 강의였다. 개인적으로 복음주의 권에서 또 하나의 김회권 목사님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분 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관심 있는 분은 코스타 스토어에서 4회에 걸친 김근주 교수님의 설교, 강의 녹음화일을 구매해 들어보실 수 있다. (https://kostausa.org/store) 듣기로 김근주 교수님을 비롯해 성서한국에 참가하신 주목받는 소장파 신학자 몇분들이 모 신학교에 계시다가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나오시게 되었는데, 이런 분들이 고초를 겪으셔야 하는 한국교회와 신학교들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어쨌든 성서한국 같은 자리를 통해서 좋은 목소리를 내시는 것이 무척 반갑다. 

 

이번 행사에 약 천명 가까이 참석했다니 정말 귀하고 행사 후기를 통해 접한 내용이나 진행, 전체적인 방향성도 무척 공감되고 도전이 된다. 한편으로는 다른 차원의 아쉬움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9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니면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사회참여에 대한 고민들을 접하면서, 2000년대가 지나면, 그런 내용이 기독교계 전반으로 확산, 일반화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성서한국 대회가 좋긴 하지만, 이렇게 특별한 행사를 통해 모여야 한다는 것이, 사실은 성서한국에 대한 고민이 아직도 ‘우리들 만의 리그’나, 깨어있는 소수의 모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캠퍼스 선교단체들은 그 자체로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는 소식도 오랫동안 들었고, 아주 일부 단체는 내용적인 면에서 7,80년대의 형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도 있다. 교회의 모습은 더욱더 심각하다. 예전에 어떤 분과 기독교 세계관과 사회참여 운동이 왜 확산되지 못했는가를 이야기 하다가, 그런 고민들이 전문인들이나 기독 지성인들 사이에는 어느정도 퍼져나갔지만, 신학교나 목회자들은 큰 영향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이 아닌가는 말에 공감한 적이 있다. 결국 기독교계가 바뀌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신학교의 상황은 여전히 상당부분 근본주의적인 영향, 그리고 대형교회와 그 목회자들, 교단 지도부의 정치적 재정적 영향력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결국 기독교 대중은 그대로 남아있거나, 오히려 외부 사회의 정치사회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면에서 사회 속에서 활약하고 계신 만은 분들과 더불어, 김근주, 권연경, 신현우, 이필찬 교수님 같은 소장 신학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절감하게 된다. 

 

일부 기독교인들 안에서 종북좌파 음모론을 퍼트려 물의를 빚었던 소위 선교사라는 박X업이라는 사람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성서한국은 주체사상을 숭배하는 거짓선지자들이 운영하는 기독 위장 적그리스도 인본주의 이단”이라며 “여기에 지금 있는 애들 불쌍해서 어떻게 합니까?”라는 기독교 일베 수준의 황당한 포스팅을 올렸다. 예전에 자신이 만든 동영상의 인물들이 거의다 모여있는 행사니, 이렇게 보이는 게 이상하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뭐 이렇게 무식하고 무례한 인간이 있나 싶기도 하고, 성서한국이라는 모임과 대비되는, 한국 교회 저변에 깔린 반지성적이고 마녀사냥적인 근본주의 기독교의 한 면을 보게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깨어 고민하고, 정의와 진리를 고민하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하기도 하겠지만, 로잔언약이 내년이면 40년이 되어 가는 상황에서도, 아직도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고, 할일이 많은지 생각하게 된다. 

 

다른 이야기로, 

개인적으로는 ‘선교한국’과 ‘성서한국’이 이렇게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서, ‘통일한국’에 관심있는 기독인들이 네트워크화 되고 준비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물론 최근 몇년간 한반도의 상황은 매우 어렵지만, 복음주의 기독교 권안에서 윤환철 국장님 처럼 좋은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도 있고, 균형잡힌 관점을 보여주면서, 탈북자들을 통일의 주역으로 세우자는 통일 북한 관련 언론인 뉴코리아 뉴스(http://www.ukoreanews.com/) 같은 매체도 생기고, 최근에는 탈북자 분들 중에서도 예전처럼 전형적인 탈북자적 관점(?)을 넘어서 상당히 균형잡히고 건실한 생각들을 가지고 한반도의 미래를 바라보며, 좋은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몇분 보여서 반가움을 느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성서한국을 생각할 때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인물로, 역시 이번 대회에 참여하고 계시고 성서한국 공동대표이신 이승장목사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지난 7월의 시카고 코스타에서 몇년만에 목사님께 인사드릴 기회도 있었고, 목사님의 새 책, ‘왜 나는 예수를 믿는가’를 사서 읽어보았고, 예전에 간단히 흩어보았던 목사님의 ‘성서한국을 꿈꾼다’를 소장용으로 구입해 다시 정독하기도 했다. ‘성서한국을 꿈꾼다’는 1985년 ESF에 있던 시절에 쓰신 책이고, 2001년 개정판을 내셨는데, 찬찬히 읽으면서 받은 새로운 충격은,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부터 지금까지 고민해 온 내용들이, 사실 목사님의 책 안에 제시된 그림과 범위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었다. 유명한 “성서한국 선교한국 통일한국”으로 요약되는 복음주의 운동의 방향성과 가능성을 넓게 펼쳐놓으셨다고 생각되는 목사님의 책이, 고민하는 청년들이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자 조감도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또 다른 면에서, 80년대에 어떻게 이러한 고민을 할 수 있었느냐는 것도 미스테리 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UBF라는 보수적 단체 출신이시면서도, 김교신과 함석헌을 애독하고 소개하셨다는 점, 영국 유학을 통해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중요한 고백인 로잔 언약 (1974년 )을 국내에 거의 최초로 소개하신 점, 영국 캠퍼스 복음화 운동의 전통을 소개하시고, 사회정의를 위한 기독교 사회참여의 얼마 안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윌리엄 윌버포스를 기독인들 사이에 소개하신 것 등 선도적인 역할을 많이 하셨다. 이런 바탕에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학원 복음화 협의회, 잡지 복음과 상황, 해외 유학생 수련회인 코스타, 그리고 성서한국까지, 복음주의자들의 모판이자 활동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장들에 어김없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시고, 후배들이 뻗어나갈 수 있는 판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셨던 것도 중요한 점 같다. 개인적으로 기독인 연합 사역에 참여하면서, 학복협과 이승장 목사님을 통해 접하게 된 총체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한 가능성들은, 근본주의적 보수적 이원론적 기독교를 극복해 나가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었다. 복음민족역사대회, 부흥 집회, STEP 대회 등 청년대학생들을 묶어주었던 행사들과 각종 세미나, 문서사역, 집회와 설교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받은 영향들이 큰 자양분이 되었고.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의 역할, 선배와 스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아마도 성서한국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 이승장 목사님과 관련해서 이런 고백을 하는 분들이 나 말고도 상당수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목사님의 동시대 인들과 비교해 볼때 이러한 경이로움은 더 커지는데, 평신도인 이만열, 손봉호 같은 분들을 제외하고 목회자들 중에 목사님의 동년배나 한참 후배 그룹중에서도 목사님 만큼 넓고 앞선 관점을 보여주는 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감히 목사님을 평해본다면, “자신의 시대를 앞서가고 초월한” 기독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연 일제시대에 출생해 한국전쟁과 분단 군사독재를 겪으신 구세대 분이 어떻게 이러한 앞선 고민을 보여주셨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본다면, 목사님 개인적으로 제주도와 전라도라는, 우리 역사속에서 가장 고난과 아픔을 겪어온 지역에서 사셨던 경험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고, 극단화된 기독교 운동의 폐혜를 몸소 경험하신 것, 그리고 언제나 청년들을 사랑하시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셨던 것, 자신의 세력, 인맥, 왕국을 구축하시는데 재능이 없으셨거나(?) 그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안주하고 퇴행하지 않고, 시대를 고민하는 경건과 약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을 날카롭게 유지하실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예수님 중심성을 잃지 않으시면서, 그분 앞에서 깨어 고민해 오셨기에 가능한 일일 수 있겠다. 역시 동시대 분들에게서 보기 힘든, 정금자 사모님과의 동역적인 관계도 목사님의 삶에서 특별한 부분이기도 하고. 

 

목사님 자랑이 좀 길어졌지만, 이 시대를 사는 나는, 어느정도 미래를 바라보고 동시대 기독인들과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앞선 하나님 나라의 고민과 지향을 보여주고 실천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동시에 예수님 앞에서 제대로 고민하는 한 사람의 발걸음이 언젠가 백명, 천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큰 용기가 된다. 성서한국 참가자들이 얻은 격려와 새로운 고민, 결단들이 삶 속에서 구체화 되고, 한국 교회의 저변으로 확대되기를 기도해 본다. 

 

언제나 신앙안에서의 만남과 동역자가 그리운 유학 생활이라, 가지도 못한 행사를 멀리서 지켜보며, 이런 저런 글을 몇마디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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