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우종학 교수님과의 만남과 강의

 

2015년 6월 26일

 

이인엽

 

서울대에서 천문학을 가르치시고, 최근 과학과 신앙, 창조와 진화논쟁 등에서 좋은 목소리를 내시는, 우종학 교수님은 복음과상황이나 이런저런 글을 통해 원래 친숙했는데, 이번에 코스타 참석과 연구 일정 등으로 앤아버쪽에 오시게 되어 반갑게 만나게 되었다. 도착하신 날, 미시간의 이웃사촌 지훈형네 식구와 우교수님을 만나 식사를 나누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는데, IVF 선배시기도 했고, LA의 허현 목사님과 계도형도 잘 아시고, 사모님은 숭실대 기연에서 활동하시기도 해서 이런저런 인연이 많았다. 과학과 신앙, 한국 교회와 신학, 유학생활 이야기, 연애와 가정 이야기 등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동안이시라 생각은 했는데, 89학번이시라서 놀랐고, 부드럽고 인격적이고 대화가 통하는 남자 선배 찾기가 쉽지 않은데, 친근함이 느껴지는 좋은 분이었다. 

 

마침 우리가 미시간에서 강의자리가 마련되었다. 예전에 코스타에서 하신 강의 녹음을 듣기도 했는데, 직접 사진과 자료를 보면서 강의를 들으니 참 좋았다. 일단 본인의 전공인 천문학이 증명하는 우주의 역사와 나이를 풀어내시면서 설명을 하니, 젊은 지구론 등을 쉽게 반박할 수 있는 출발점이 잡혔다. 

여담이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안드로메다 성운조차 약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충격. 예전에 만화 은하철도 999가 끝날때면 “저 머나먼 우주, 안드로메다 성운에는…”뭐 그런 나레이션이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개념은 안드로메다로”가서 개념충만한 곳이라고 하기엔, 이동 시간이 너무 멀듯 하다. 따라서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이동중…" 

우주의 광대함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 그리고 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인가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우주의 나이, 생물의 기원 등에 대한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등의 연구성과에 대해 잘 설명해 주시고, 과학적 팩트와 그 해석의 차이 (예를 들어 과학이 말하는 진화와 무신론, 진화주의는 다르다는 것)를 잘 설명해 주셨고, 현대과학의 믿을만한 연구 결과물들이 '젊은 지구론'을 거의 지지하지 않으며, 성경의 텍스트와 젊은지구론 사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 등을, 전공자, 비전공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또한 충분한 과학적 근거와 성경적 근거도 빈약한 특정한 관점인 젊은 지구론을 유일한 기독교적인 입장이라고 우겨서, 신앙과 과학적 연구 모두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축소시키고, 과학 전체를 무신론에게 내주며, 기독교를 섹트화 시키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설명해 주셨다.

 

성년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셨는데, 사실은 역사가 오래 되지 않지만,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창조하셨다는 성년창조론의 경우 굳이 왜 그렇게 하셔야 하는지, 그렇게 하시는게 하나님의 성품과 맞는가 하는 의문이 있고, 지적설계의 경우 지나치게 확률론과 현재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에 의존하는 문제도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많은 기독교인들안에 전도와 변증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든 성경과 하나님의 존재와 모든 것을 꿰어 맞추려고 하고 (심지어 조악하고 부정직한 방법으로까지), 동시에 한가지가 어긋나면 마치 기독교가 다 무너질듯 생각하는 태도 말이다. 어떤 과학이론을 통해 신을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과거의 천동설이나 지금의 창조과학처럼 하나님을 하나의 이론과 연결할 경우, 그 이론이 반박되면 기독교까지 타격을 입는 문제가 있다. 전도의 열심은 이해가 가지만, 꼭 변증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의 관점에서, 인간의 과학적 연구와 문화적 성취가 모두 의미가 있는데, 크신 하나님을 왜 그렇게 제한하는지...또한 그분의 진리되심과 궁극적 승리를 왜 믿지 못하고 조바심과 근시안적 사고에만 머무르는지 안타까울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때 과학자, 발명가가 되고 싶었고, 고등학교때 수학도 꽤 잘했는데, 젊은 지구론에 촛점을 맞춘 창조과학 강의를 듣고 진화론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게, 이과 대신 문과를 선택한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한참 나중에 젊은지구론이 과학적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는 별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었는데, 인문사회학적 교양을 쌓고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이미 창조과학이나 보수 기독교가 주장하는 많은 주장들이, 성경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중의 하나일 뿐이고, 자신의 한가지 해석을 절대화 하는 이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젊은 지구론 류의 창조과학은, 근본주의 기독교의 결과로 나타나는 많은 병페들 중 하나이며,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우교수님이 예로 들었듯이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이 손가락이 있다는 뜻이 아니며, 바울이 노예들에게 한 말들이 성경이 노예제를 지지했다고 볼 수 없다. 성경이 당시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각 권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맞춰 쓰여졌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주의적으로 적용해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 중 하나인 것이다. 여호수아가 전투를 할때, 모세가 기도하자 태양을 멈추셨다는 기록을 보며 천동설을 주장하고 지동설을 이단시했던 일도 그런 예다. 그 본문의 핵심은 태양이 도는지 지구가 도는지 개념이 없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맞춰서,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역사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셨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데, 그것을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과학이론의 성경적 근거로 봤었다는 것이 문자주의의 맹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정치적 관념을 성경과 혼동하고, 그에 맞는 구절을 취사선택하여 왜곡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백인 노예주들이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중 함이 저주를 받았다는 말로 흑인노예제를 합리화 한 황당한 역사처럼 말이다.  

 

근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문자주의를 채택하면서, 다양한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연구, 토론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텍스트를 분석하고 생각할 능력을 제거해 버렸고, 소수의 신학자,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해석을 절대화 하며, 성도들은 무비판적으로 그것을 수용, 맹종해, 반지성주의를 팽배하게 했다. 종교개혁기에 성경을 번역해 평신도가 읽고 연구하여 개혁과 학문,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것과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는 교회의 자본주의, 비즈니스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목회자가 교회를 쉽게 운영하고 빨리 피라미드 회사 식으로 사람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성경과 복음을 단순하게 도식화해서 주입하고, 질문과 문제 제기를 억압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또한 기독교가 기득권화 되고, 기득권을 지탱하는 꽃놀이패가 되면서, 특정한 정치, 사회적 입장에 기반한 성경해석을 절대화 하다보니 생긴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다 보니, 근본주의의 성경해석, 신학, 그리고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보는 모든 시각이, 벽돌하나만 빼면 다 무너지는, 극도로 허술한 구조물이 되었고, 그렇기에 더욱 질문과 토론을 악마시 하는 반지성주의가 팽배한 것이다. 텍스트와 해석의 차이, 기표와 기의의 차이라는 인문사회학적 교양의 기초도 기독교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적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의 입지를 매우 좁게 만들고, 사회로 부터 퇘행하게 했으며,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와 예의를 상실한 개독교, 말이 안통하는 괴독교, 기득권에 영합하는 기득교가 되게 만들었다. 

교회성장, 영적권위, 정통수호 등의 이름으로, 신자들을 무지한 양으로 만들고, 교회를 이 지경이 되게 한 목회자들은 마지막날에 예수님의 불타는 진노앞에서 엄중한 문책을 받으리라 믿는다. 

 

이제 그 안에서 양산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단순무식과 막무가내가 익숙한 거대한 무지의 포스가 되어, 우리 사회의 건전한 사고와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근본주의, 반지성주의는 일부 지도자들의 왜곡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을 악마시, 이단시하고 린치를 가할 수 있는 파시즘적 사고의 기반이 된다. 삯군 목자들이 일궈온 파시즘의 토양에서 이제는 기독교 일베가 자라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고 있으니 언젠가 마무리 할 날이 오리라 믿고, 여기까지. 

 

어쨌든 우교수님 강의를 들으며 간만에 큰 위로와 기쁨이 있었다. 교수님은 예일에서 박사를 하시고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가르치고 계신데, 바쁘신 중에서 이렇게 좋은 대중강연을 해주시는 것도 좋았고, 확고한 복음주의 신앙과, 학문적 엄밀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경적인 관점으로 이런 역할을 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자랑스러웠다. 말안되는 소리를 억지로 들어야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는데 (예를 들어 정치지도자가 문법에도 안맞는 황당한 어법으로 시종일관 횡설수설한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 사는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해질 것이다), 간만에 명철하고 지성에 빛나는 명강의를 들으니 마음도 따듯하고 고양되는 기분이었다. 

요즘 웹진에 기고하기로 해서 헌터의 책 “기독교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의 서평을 며칠째 쓰고 있는데, 그가 말한 “탁월하지만 엘리트주의적이지 않으며, 문화형성의 핵심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네트워크”라는 표현도 생각난다. 우교수님 같은 분들이 각 분야당 몇명씩만 있어도 기독교 지성사회의 미래가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간 북한 관련 대중강의를 꽤 여러 번 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비슷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 젊은지구론 식의 과학적 근거, 성경적 근거가 빈약하지만 기독교계를 지배하는 관점들은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경제를 보는 시각, 미국, 북한, 이스라엘을 보는 시각 등등. 북한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비신화하고, 역사적, 정치적 관점, 그리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기독교인 대중이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중요한 책임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우교수님의 강의법이나 전달방식이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카고 코스타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우교수님의 강의를 강추하고, 교수님이 주도하시는 과학과 신앙 페이스북 페이지와, 교수님의 저서 “무신론 기자 크리스챤 과학자에게 따지다 (무크따)”도 강추한다. 책에 교수님 사인도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흩어보니 IVF의 문서운동에 큰 역할을 하신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님에게 헌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동하기도 했다. 우교수님도 학생때 IVF와 GSF(기독대학원회) 활동을 통해 기독교 지성의 기반을 쌓으셨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애증이 있었던 IVF가 갈수록 자랑스러워진다. 기독교 세계관운동의 한계도 분명했지만, 젊은이들에게 최소한의 기독교 지성을 길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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