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성탄을 맞아 생각하는 예수 탄생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 1

 

2014년 12월 24일 이인엽

 

오늘 우리에게 예수의 탄생은 어떤 의미일까? 이미 성탄절 자체도 예수가 주인공은 아니고, 자본주의 소비논리의 화신인 산타와 선물이라는 창조된 설화가 성탄절을 지배해왔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는 곧 쇼핑시즌이라 할 수 있는데, 1년 매출의 1/3이 추수감사절 블랙프라이데이 세일부터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다. 온갖 세일 광고가 넘쳐나고 어디가나 들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더 가져야 행복하다, 좀더 써라라는 최면을 귀에다 속삭이는 듯 한다. 개인적으로 성탄절을 떠올리면, 어린시절 교회에서 경험한 성탄절 행사, 새벽송, 성가대의 칸타타,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기억들이 생각나고, 말구유에 태어난 아기 예수를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이 방문하는 이미지 등이 떠오른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기억과 이미지들이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조차도 예수의 탄생이 가진 의미와 배경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예수의 탄생을 생각하며 낭만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는것 자체가, 예수의 탄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닌가? 제국의 식민통치하에서 세금징수와 수탈을 위해 인구조사의 명령이 떨어져, 겨울철에 가난한 만삭의 임산부가 가축우리에서 아기를 낳는 장면에서 어떤 낭만을 기대할 수 있는가? 

 

물론 그런 낮고 천한 자리에 오신 예수에게서 구원과 희망을 볼 수 있기에 성탄은 기쁜 날이다. 그러나 그 희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말밟굽에 짓밟히고 불의한 통치자에게 수탈 당하며,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에게 학대와 천시를 받던 백성들의 절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의 성탄절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위선과 폭압, 갈등과 분쟁, 학살에 눈을 감으면서, 예수가 평화의 왕이라고 기뻐하는 것, 하나님 나라보다도 내 나라, 나의 정치 이념과 경제체제를 절대시 하면서, 예수를 왕중의 왕이라고 찬미하는 것, 오늘 억압받고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하면서, 예수가 낮고 천한 자들을 위해 오셨다고 기뻐하는 것은, 어떤 감동과 깊이도 없는 공허한 종교적 수사일 뿐이다.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성경을 읽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에, 우리는 성경을 오늘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적용하지 못하며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속죄와 구원은 기독교인에게 놀라운 일이지만, 그 신앙이 왜 세상에 대한 실천과 사랑으로 확장되지 못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맥락이 거세되고, 개인경건주의적이고 낭만화된 이미지로 채색된 성탄의 이야기는, 이미 편안한 삶을 사는 중산층과 상류층에게, 역시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우린 축복받았다라는 안이한 감상 만을 일으키는 동화적 이야기로 전락한다.

 

예수의 탄생과 사역은, 로마의 제국주의, 로마의 지역 대리인인 헤롯의 지배, 바리새인들의 종교적 지배, 지주와 부유층의 경제적 수탈 등의 3중 4중의 억압이라는 당시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기독교인에게 성경의 구원은 역사를 초월하는 우주적인 사건이기에, 정치 사회적 해석에만 매몰되거나, 성경의 메시지를 정치사회적인것으로만 환원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 배경을 배제한 우리의 성경읽기는, 제대로 된 본문의 이해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며, 살을 다 발라내고 뼈만 남기고 먹으라고 하는, 거세된 성경이해일 수 있다. 이는 예수의 왕되심과 하나님 나라의 넒이와 깊이, 그리고 구원의 의미조차도 매우 조악하고 빈약하게 만들어 버린다. 

 

연말에 열리는 킹덤 컨퍼런스에서 파워와 국제관계라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과 고민들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되고, 그 중에 예수의 탄생과 관련해 생각나는 부분들을 정리해 보게 되었다. 예수의 탄생은 영적이면서도 사회적, 정치적이며, 이러한 요소들은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왜 정치적 사회적 의미라는 표현을 굳이 붙이는가? 그것은 보수 기독교의 성경해석이,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이원론적이며 몰역사적인 관점에 지배되어 왔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읽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오늘을 사는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주의적 기반위에, 진보 기독교의 고민과 연구성과들을 많이 배우고 흡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에서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느끼는 생각들을 예수의 탄생과 연관해 정리해볼 생각이다. 

 

 

1. 인구조사와 제국의 지배 (눅2)

 

누가복음 2장이 묘사하듯, 예수가 부모의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유는, 당시 로마황제인 시저 아우구스투스(가이사 아구스도)가 내린  인구조사 칙령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가 되기 전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였고, 유명한 줄리우스 시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였다. 로마의 전쟁영웅 줄리우스 시저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브리타니아를 최초로 침공해 북해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등, 로마의 정복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결국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하자, 루비콘 강을 건너는 일종의 쿠테타를 감행하고, 종신 독재관이 되어 공화정이 제정으로 전환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측근이었던 부르투스를 비롯해 그의 독재권력을 우려하고 공화정으로의 복귀를 시도한 세력에게 암살되었으나, 오히려 그는 신화가 된다. 줄리우스 시저의 이름은 신격화 되고, 구원자의 이름이 되어, 내전에서 승리한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로 부터 시작해 시저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황제의 호칭이 된다 (파라오가 이집트 왕의 일반 호칭이듯이). 영어의 7월인 July와 8월인 August 는 줄리우스 시저와 아우구스투스 시저의 이름을 따왔고, 황제를 뜻하는 독일의 '카이저'나 러시아의 '차르'도 시저(카이사르)에서 유래한다. 역사는 직선적으로 진보한다는 일반적인 관념과 달리, 로마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정점에 달했을때, 그것은 오히려 공화제를 무너뜨리고, 독재적인 황제숭배체제를 도출했다. 예수가 탄생한 시점은 이렇게 로마의 제국주의 체제가 완성되고 공고화된 시기이다. 

 

그렇다면 이때에 내려진 인구조사는 어떠한 의미인가? 통제와 지배, 착취의 기초는 정보이다. 일제 통치의 시작도 토지조사와 인구조사로 부터 시작되었다. 제국주의 체제의 근간은 세금과 조공을 통한 착취이며, 인구조사는 이를 대표하며, 유대가 로마제국의 하부구조로 완벽하게 편입되 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국의 체제는, 계속되는 정복전쟁, 학살과 노예화, 식민지로 부터 거둬들이는 세금과 조공을 기초로 한다. 제국의 중심으로 부가 이동되면서, 로마인들의 소비와 향락이 극대화 되고, 군사력이 유지 발전되며, 반란을 진압하고, 끝없이 이민족을 정복하는 순환과정이다. 세금과 조공이 중요한 이유는, 점령지의 세력을 약화시켜 반란의 싹을 자르며, 로마의 소비와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상황에 따라 빌라도 같은 총독을 통해 직접 통치를 하기도 했고, 헤롯과 같은 지역의 대리인, 괴뢰를 통해 간접통치를 하기도 했는데, 민중들은 2중 3중의 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착취와 폭압에 견디다 못해 반란이 일어나면, 수천 수만명을 학살해 본때를 보이고, 토지를 강탈했으며, 남은 자들을 노예로 팔아 제국의 재정을 충당했다. 로마군의 학살과 약탈, 노예화로, 순식간에 지역에서 한 세대의 인구가 사라지기도 했다. 많은 식민지 가운데에서도 유독 저항이 극렬했던 이들이 유대였고, 그중에서도 갈릴리는 반란의 땅으로 천대와 차별을 받았다. 

 

구약에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고 (삼하24) 하나님의 심판을 맞는 장면은 시저의 인구조사와 통하는 면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좀 뜬금없고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스라엘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중앙집권화, 국가주의화, 제국화의 경향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정신과 상충한다는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백성들의 요구로 어쩔수 없이 왕정을 허락하긴 했지만, 하나님은 철저하게 제사(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게 했고 (삼상15), 병마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을 쌓지 말라, 강대국을 의지하지 말라(신17:16,17)고 경고했다. 그러나 사무엘상의 초반에서 사울이 왕이 될때 주어진 왕정체제에 대한 경고(삼상8:10-22)는, 결국 사무엘하의 마지막장인 24 장의 다윗의 인구조사와 그에 대한 심판으로 연결된다. 사무엘서가, 다윗의 왕권이 확고해지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지는 사무엘하 22, 23장의 다윗의 감사찬양과 용사들의 활약상으로 끝나지 않고, 마치 어색하게 덧붙여진 것 처럼, 전장들과 맥락도 연결되지 않는 24장의 암울한 심판으로 마무리 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절대화된 권력은 언제나 절대 부패한다. 우리 편이든 남의 편이든,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소위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라는 것은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것으로 잔인성과 무자비함으로 가득찬 야만적인 체제였다. 로마의 귀족들과 시민들은 엄청난 부와 사치와 향락을 누렸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제국의 전방위에서 착취와 억압이 지속되었고, 변방에서는 계속해서 전쟁과 살륙이 자행되었다. 로마는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변방의 이민족들을 ‘야만인’이라 불렀으나, 선진문명이라 자칭한 로마의 체제는 야만성으로 충만한 강도의 체제였다. 로마의 지배에 대항하는 유대반란세력들이나 열심당원 등은 그 당시의 테러리스트였고, 평화를 위협하는 불온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로마가 주는 평화의 약속은 잔혹한 약탈과 살륙을 전제로 돌아가는 허위와 기만이었다. 로마의 화폐에는 가이사의 얼굴이, 그리고 로마의 황제가 이민족을 짓밟는 승리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 자체로 제국의 정신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다. 이런 배경하에서 본다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버리라는 예수의 말(마22:21, 막12:17, 눅20:25)도 제국의 체제에 대한 순응 보다는 거부에 가까운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3~20절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의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유명한 대답을 한 장소인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명의 유래를 아는 기독교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원래 파네야스라고 불리던 이 지역은 가나안 시대에는 바알 신전이 있었고, 알렉산더 치하에서 판 신의 신전이 있었는데, 아우구스투스는 이 땅을 헤롯에게 양도했고, 헤롯은 아우구스투스의 영광을 찬미하는 대리석 신전을 지었다. 헤롯 사망후 아들 헤롯 빌립은 이곳을 확장하고 수도로 삼았으며 로마황제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 빌립보 (시저리아 필리피)’라고 이름한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수없이 세웠듯이, 가이사랴 빌립보는 그 이름 자체가 황제의 통치와 신격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가나안과 헬라인의 신전, 로마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신전이 있었던 땅, 로마황제 시저와 지역군주 헤롯 빌립의 이름을 딴 도시에서 예수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결정적 물음을 던졌다는 것, 그리고 그를 신의 아들이자 구원자라고 고백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던져준다. 

 

영적인 축귀로만 생각되는 군대 귀신과 돼지떼 몰살 사건도 (막5, 눅8), 로마의 통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해석이 있다. 거라사를 포함한 데가볼리 지역은 수천명에 달하는 로마군 14군단이 주둔해 있어서, 일종의 기지촌이라 볼 수 있고,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귀신들이 들어가 바다에서 몰사한 이천마리나 되는 돼지떼들은 (막5:13) 로마군들을 위한 식량을 사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영적, 정신적 현상은 때로 정치적 사회적 현상의 상징적 표상일 수 있고, 광인이 보인 정신질환과 군대라는 이름의 귀신들림 현상은 그런 지역적, 정치적 특성을 배경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군대 귀신이 들어간 돼지때가 바다에 빠져 죽는 장면을 애굽의 군대가 홍해에 빠져 몰살해 죽는 장면(출14:28)과 연결하는 매우 흥미로운 해석도 있다. 헤롯의 영아학살, 이집트 피난, 광야의 40일 기도와 같이, 예수의 삶에서 출애굽의 과정을 재현한 또 하나의 예일 수도 있다. 귀신이 쫓겨나가 광인의 정상화되고 돼지가 몰살하는 놀라운 현상을 보았으나, 지역 주민들이 예수가 떠나기를 간청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기지촌의 상인들이 주둔군의 존재와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먹고 사는 것 처럼, 비정상적인 현실에 익숙해지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에 충실한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권력은 인간을 미치게 한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이은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디베료 가이사, 눅3:1) 시기가 예수의 공생애를 배경으로 하며, 3대황제는 유명한 칼리귤라요, 5대황제는 네로였다. 세계를 정복한 권력의 꼭지점에 앉은 이들이 보인 기괴함과 광기는 제국의 실체가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아우구스투스 시저가 로마라는 거대한 피라미드의 최상부의 꼭지점이라면, 예수는 그 제국체제의 최하층에서 출생한다. 제국 변방의 식민지, 그리고 그 식민지에서도 천대받던 갈릴리, 가난한 목수의 자식, 어떠한 돈과 명예, 권력도 없는 천한 백성의 아들이다. 식민지의 가난한 백성의 아들, 부조리한 명령에, 집도 없이 가축의 밥통까지 내려간 아기의 탄생은, 로마의 거짓된 평화를 무너뜨릴 새로운 평화의 왕이 출현이다. 신의 아들이자 구원자로서의 시저의 통치 하에서, 누군가를 구원자요 신의 아들이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반역이다. 그렇기에 예수와 시저는, 하나님 나라와 로마제국은 양립할 수 없고, 예수의 말구유는 이미 십자가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제국 체제의 모순을 폭로하고 그 정치적 영적 기반을 붕괴시킨다. 

 

2. 헤롯의 영아 학살 사건 (마2)

 

누가복음 2장이 시저의 인구조사를 배경으로 한다면, 마태복음 2장은 헤롯의 영아 학살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의 왕을 찾아왔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들은 헤롯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새로운 왕의 탄생을 막기 위해 두 살 아래의 영아들을 모두 학살하게 한다. 헤롯 가문에는 여러지도자들이 있는데, 영아살해를 주도한 헤롯은 주로 헤로데1세 혹은 헤롯대왕이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안토니우스를 지지하다가, 그의 패전 이후 옥타비아누스에 충성을 맹세해 유대의 왕이되었고, 원래 유대인이 아닌 에돔(이두매)사람으로, 유대인의 지지를 받기 위해 솔로몬의 성전을 재건축(제2성전)하기도 했고, 유대의 제사장 가문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당시의 정세와, 자신의 출신 배경 등으로, 로마 황제의 신임을 유지하고 유대인들의 지지를 유지하는데 골몰했고,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으로 여섯번 결혼을 하고, 자신의 아내와 두 아들 장모까지 죽였으며, 수차례 유언을 번복했다고 한다. 이런 배경하에서 보자면, 영아 살해 사건은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다. 

 

제국은 직접 통치를 하기도 하지만, 지역의 대리인을 세워 간접통치를 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대리인은 제국의 필요에 따라 교체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전전긍긍하며 충성을 다하게 된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거나 너무 인기가 많으면 반란을 꾀할 수 있으니 곤란하고, 어느정도 매판 매국 세력이어야 하면서도, 너무 인기가 없으면 곤란하다. 지역의 대리인이 효율적인 것은, 제국에 대한 불만을 대신 흡수해줄 수 있기도 하고, 더러운 일을 대신해주는 편리함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체제하에서 백성들은 이중 삼중의 착취와 폭압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냉전시기에 미국이 제3세계에서 수많은 군사독재자들을 지원한 전력은 비슷한 논리하에 이루어 졌다. 악명높은 아메리카 군사학교 (School of America)에서는 중남미의 도살자들이 될 군사 독자자들을 양성했고 더러운 전쟁을 지원했다. 한때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없고 독재와 학살을 자행한 이들, 베네수엘라의 지메네즈, 과테말라의 아르마스와 리오스 몬트, 엘살바도르의 다뷔송, 니카라과의 소모사, 파나마의 노리에가, 칠레의 피노체트,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한국의 박 장군과 전 장군, 이란의 팔레비왕조, 이라크의 후세인, 이집트의 무바라크 등등은 그 시대에 정의와 민주주의의 싹을 밟아 없앴던 헤롯과 같은 자들이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미국이 지원하는 독재자들을 지칭하여, “He is an SOB, but our SOB,” 즉 그들이 빌어먹을 개자식들이더라도, 미국의 편에 서있다면 크게 문제가 될것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강대국의 세계지배 논리를 잘 보여준다. 

 

헤롯의 영아살해 사건은 이스라엘이 경험한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과 모세의 출생이야기를 재현 반복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헤롯이 유대의 참된 왕이 탄생할 것을 막기 위해 영아들을 학살했듯이, 이집트 제국은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노예 노동을 시키고, 진흙을 이기고 벽돌을 굽게 한다. 구원자로서의 모세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위해 남자 아기들을 나일강에 수장시킨다. 모세는 이집트 왕궁으로 가서 목숨을 건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는데, 예수는 헤롯의 살해를 피해 이집트로 내려간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제국의 통치와 정면 충돌한다. 구원자의 출현은 억압받는이들에게는 복음이고, 억압하는 자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의 시작, 기존의 지배 체제가 무너져 내리는 출발점이다. 10가지 재앙은 개구리, 이, 파리, 메뚜기 같은 미물들의 반란, 하찮은 것들의 체제 전복을 상징한다. 자연을 통치하는 여호와의 권능을 보여주기도 하며, 이집트가 섬기던 각종 신들과도 대응되어, 제국의 정치적, 영적 힘이 붕괴되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재앙으로 제국의 승계에 결정적인 장자가 유월절에 살해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아를 살해했던 것에 대한 심판이요, 제국은 지속될 수 없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은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국의 막강한 힘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기적중의 기적이다. 일제 말기가 되면서 많은 이들이 변절하고 친일을 했는데, 일제의 통치가 너무 강고했고 영원할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에 일본제국이 망한다고 말한다면, 미친소리라 했을 것이다. 로마제국은 세계를 정복했다. 대영제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고, 전세계 200여개 나라 중 대영제국의 침공을 한번도 받지 않은 나라는 단 22개국 뿐이라고 한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한때 전 유럽을 석권했고, 소련은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다. 미국은 냉전의 종식이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현재 전세계 군사비용의 절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강대국도 영원할 수 없고, 때가되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한다. 출애굽기의 유월절 사건은 그 심판의 정점이며, 동시에 뼈가꺾이지 않은 유월절의 어린양(민9:12, 시34:20, 요19:36)은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유월절의 절기는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구원과 제국에 대한 심판을 상기시키는 절기였다. 실제로 예수의 공생애 시기 유월절 기간에는 로마군대와의 충돌이 빈번해, 경비를 강화하기도 했는데, 하나님이 이집트에 대한 심판과 출애굽의 구원을 다시한번 허락할 것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집트의 막강한 군대는 홍해에 수장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생활을 거치며 단련된다. 이 사건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예수의 40일 금식을 통해 재현된다. 금식 이후 마귀가 준 세가지 시험(눅4)을 예수가 모두 신명기의 말씀을 이용해 물리치는 것도 이를 반증하며(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신 8:3),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 6:13),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 6:16)), 이스라엘의 소명을 예수가 이어받아 성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오늘 한국 사회를 보며 생각하는 제국과 하나님의 나라, 예수의 탄생 

 

제국의 통치와 하나님나라의 충돌과 갈등은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제국의 통치 방식에는 학살과 착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안정과 보상도 동반한다. 제국의 노예생활 하에서는 광야의 불안정성과 때때로 닥치는 굶주림과 목마름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가나안 정착을 위해 전쟁을 겪을 필요도 없다. 광야에서 일부 백성들은 이집트 땅에서 고기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를 그리워 하며, 광야에서의 굶주림과 불안정을 불평하며 심지어 이집트로 되돌아가자고 한다. 노예 근성에 젖은 자에게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운명을 개척하라는 것은 번거롭고 귀찮으며 두려운 일이다. 제국의 치하에서 모든 이들이 고통을 겪는 것도 아니다. 일부는 제국에 아첨하여 권력과 부귀를 나눠받고, 다른 동족의 위에 올라가 착취하며, 고통받는 백성을 외면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제국의 통치에 협력해 누린 특권과 혜택을 강조하고, 제국의 하부에서 압사한 동족들의 피눈물은 애써 무시하여, 선택적인 기억력으로 경험을 재구성해, 역사를 왜곡한다. 

 

이집트와 로마제국의 통치를 생각하며, 모세와 예수의 탄생을 생각하며 우리 역사를 생각해 본다.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기는 우리에게 이집트 치하의 이스라엘, 로마제국 치하의 이스라엘같은 시기였다. 그 고통과 불의의 시기가 지나갔지만, 그 안에서 민족을 배신하고 정의를 배신하여 부귀영화를 누린 이들은, 끊임없이 그 시기가 좋았다고 주장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롯해 일제시기를 미화하기를 그치지 않는 그들은, 자기들과 자기들의 조상들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를 스스로 폭로한다. 그들이 독립을 위해 목숨걸고 투쟁했더라면, 친일의 대가인 혜택과 단맛을 거부했더라면, 오늘 민족의 정기를 어지럽히고 순국 선열들을 욕되게 하는 그런 주장들을 감히 내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이승만의 독재를 뒤엎은 4.19의 영광은, 다음해 5.16으로 뒤집힌다. 권력을 잡은 독재자는 파라오와 같이 시저와 같이 철권으로 통치한다. 민정이양을 하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가고 종신집권을 향해 달려가 18년을 통치한다. 국민들은 숨죽이고 국가와 지도자에 충성하도록 훈련 받는다. 벽돌을 굽고 피라미드를 건축하면서도 그 영광은 지도자가 취한다.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한 이들은 간첩으로 몰려 학살되고, 최소한의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한 이는 허울뿐인 근로기준법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다. 독재자에게 각을 세우고 비판의 목소리를 울리던 선지자는 의문의 실족사로 사망했다가, 헤머자국이 선명한 유골로 발견된다. 성서만을 붙잡고 살던 성직자는, 친구의 죽음 이후 광장으로 뛰어나가 정의를 부르짖는다. 사울에게 핍박받던 다윗과 같이, 백성에게 사랑받아 독재자의 권좌에 위협이 되었던 한 지도자는, 계속되는 흑색선전, 투옥, 납치, 의문의 교통사고를 겪는다. 

 

줄리우스 시저와 같이 독재자는 측근에게 살해 당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그의 죽음은 신화가 되고, 그는 반신반인이 된다. 내전에서 승리하고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와 같이, 그의 양자가 권력투쟁에서의 승자가 되고 철권통치는 지속된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용감히 일어선 갈릴리와 같은 천대받던 도시의 용감한 이들은, 독재자의 창칼에 무참히 십자가에 못박힌다. 

정의의 회복, 제국의 몰락을 막기 위한 영아 살해는 계속된다. 공안통치와 간첩조작으로 무고한 이들이 살해, 투옥, 핍박당한다. 일제시기 부터 4.19까지 전국적 투쟁은 청소년들이 일어날 때 폭발했다. 독재자는 자신을 위협할 구원자들의 출현을 막기 위해 입시지옥과 군사문화로 청년들의 정신을 틀어막고, 3S 정책으로 국민들의 정신을 혼미케 한다. 그러나 죽은줄만 알았던 갈릴리의 정신은 다시 부활해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철권통치는 약해 보이는 백성들의 외침에 무너져 내리고, 우리는 홍해를 건너 새 시대를 향해 출발한다. 

 

그러나 독재에 길들여진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광야의 생활에 불평하며 이집트의 고기가마 옆에서 떡먹던 시절이 좋았다고 불평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다. 때로 배고프고 불안정할 지라도 운명의 주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길을 거부하고, 다시 자신들을 구원해줄 지배자를 갈구한다. 그리고 살해된 독재자를 다시 부활시키고 그의 형상을 닮은 이들을 세워 제국의 신민이 되고자 한다. 

 

한 선지자는 고난으로 점철된 이 민족의 역사를 성서의 눈으로 재해석하면서, 강대국의 침략과 악한 지도자들에 의한 착취와 억압을 겪어온 늙은 창녀같은 이민족의 역사에도 특별한 섭리와 의미가 있고, 하나님은 그런 창녀에게서도 인류에 희망이 될 옥동자를 출산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암흑의 시기를 보내면서, 구원자들의 출현을 기다린다. 제국의 역습과 역사의 퇴행, 종북몰이의 심화와, 공안정국의 회귀, 완장을 찬 폭력배들이 용기를 얻고 설치는 현실을 보며 절망한다. 이 시대의 통치자들은 벽돌을 굽게 하되, 이제는 짚조차 주지않는다. 88만원 세대의 등장, 비정규직이라는 이시대의 노예제도와, 노동자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세월호 사건으로 수장된 고등학생들을 비롯한 피해자들 죽음은, 통치자들의 불의가 깊어가고, 피라미드의 하부구조가 두터워지며, 약자들이 압사해가는 현실을 상징한다. 

 

성탄이브를 앞둔 23일, 유신시대 인혁당 사건과 사법살인을 폭로했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85세로 별세했다. 그는 유신시대 한국 언론에 대해 “자신의 밥을 위해 진실과 약자를 외면하고 독재자와 타협이라는 편한 길을 택했기에 난 그때 신문사들을 ‘밥통일보’라고 불렀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어떻게 한줌도 안되는 권력자들이 온 국민들을 통치할 수 있었을까? 자신들의 밥통을 위해, 권력이 주는 단맛에 취해 백성과 양심을 저버린 성직자, 지식인, 언론인, 법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유신 시대를 살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고, 인혁당 사건의 고문조작을 폭로했던 조지 오글 목사는 강제추방되기 전에 목요기도회에서 출애굽기를 인용해 “내 백성을 가게 하라”라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시대의 암흑이 깊을대로 깊어진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온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 순간, 암흑속에 빛을 가져올 구원의 날을, 새로운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갈망하게 된다. 예수는 휘황찬란한 백화점의 명품관에도, 수천억원을 들여 건축한 거대한 성전에도, 빌라도와 헤롯의 관저에도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가축처럼 천대받고 착취당하는 백성들의 밥통에 들어가 그들의 밥이 되며, 세월호의 밑바닥에, 고공농성중인 노동자들의 철탑위에, 강정과 밀양에 찾아 갈 것이다. 경찰에 목이 졸려 죽은 한 흑인의 가정에, 폭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의 동네에 걸어들어갈 것이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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