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영화 ‘듄 (2021)’: ‘백인남성 메시야’의 ‘중동 모험 서사’를 극복할 수 있을까?

2022년 1월 이인엽


기대했던 영화 ‘듄’을 보았다. 무척 좋아하는 드니 빌뇌브가 감독을 맡아 기대가 컸는데, 역시 실망 시키지 않았다. 프랭크 허버트 원작은 SF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지만, 1984 데이비드 린치가 영화화 했을 때, 일종의 B급 괴작(?)이 되어 버린 전력이 있다. 그런 영화의 리메이크를 맡는 건, 웬만한 감독한테는 ‘독이 든 성배(못하면 욕먹고, 웬만 해서는 인정 받기 어려운)’를 받는 것이었을 텐데, 드뇌브는 놀라운 수준의 결과물을 내 놓았다. 후속편이 제작 중이라는데, 스타워즈나 매트릭스 수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비중 있는 시리즈 물로 자리매김 할 것 같다.
이 영화평에서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후, 듄 시리즈 관련해서, 1) 원작 소설, 2) 데이비드 린치의 1984작 영화, 그리고 3) 이번 드니 빌뇌브의 2021년 작 영화를 비교해 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비롯해서 서구의 문학, 영화들에 반복되는 '백인 남성 메시야'의 '중동 모험 서사'에 대한 이야기,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1. 최근에 가장 ‘핫’ 한,드니 빌뇌브 감독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빌뇌브 감독은 퀘벡주 출신이다. 알다시피 퀘벡은 불어권으로 영미 문화와 구분되는 독특한 전통과 정서가 있다. 내가 인생 영화로 꼽는 ‘몬트리올 예수 (Jesus of Montreal, 1989)’가 퀘벡 영화인데, 예수가 오늘 몬트리올에 나타난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복음서의 이야기를 패러디 한 수작이다. 문화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영미권에서 보기 힘든, 깊이 있고 독특한 관점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빌뇌브 감독은 이런 퀘벡 영화의 전통과 깊이를 체화 하고, 동시에 엄청난 연출력으로 탁월한 퀄리티의 영화를 잘 뽑아내는 감독이다.
이미 감상한 주요 작품 몇 가지를 이야기 해보면, ‘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은 레바논 내전에서 벌어지는 한 여성의 비극적인 인생을 추적해가는 영화고, 휴 잭맨 주연의 ‘프리즈너스 (Prisoners, 2013)’는 소녀의 납치사건을 다루면서 미국의 신화와 폭력, 복수와 용서 등 각종 신학적,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는 깊이 있는 영화였다. 흥행에도 대 성공한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 (Sicario, 2015)’는 CIA의 마약 전쟁을 몸서리치는 리얼리티로 그려냈고, '컨택트 (Arrival, 2017)'는 외계인의 방문을 소재로, 소통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인 주제들을 풀어놓았다. 유명한 컬트SF명작 ‘블레이드 러너 (1982)’의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2049 (Blade Runner 2049, 2017)'에서는 원작 못지 않은 철학적 깊이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굳이 평가를 해 보자면, 시카리오를 제외하면 그의 영화들이 상업성, 오락성이 높지는 않지만, 작품의 연출력이나 완성도, 그리고 깊이 있는 질문들을 영화에 버무려 내는 능력은, 가히 역대급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점에서 드뇌브 감독은 듄의 리메이크를 맡기에 충분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고, 역시 좋은 성과를 내 놓았다.

 

빌뇌브 감독과 그의 영화들

2. 원작 소설과 데이비드 린치의 1984년 작

원작 소설은 직접 읽지 못해서 간단히 찾아본 정보를 나눈다. 듄은 프랭크 허버트가 집필한 1965년작 소설로, 그는 신문기자로 일하다 40대가 되서야 SF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레곤 주 사막에 관련된 기사를 쓰려고 조사 하다가 듄의 아이디어를 떠올려 집필을 시작 했다고. 이후 죽기 전까지6부작 듄 시리즈를 내 놓는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시리즈이자 SF소설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 했는데, 유명한 아서 C.클라크는 "<듄>에 견줄 수 있는 건 <반지의 제왕> 외엔 없다"고 단언할 정도였다고. 이후 아들인 브라이언 허버트가 아버지의 자료를 가지고 이어나가는 후속 작들은 악평을 받고 있다고.

정치, 철학, 종교, 인류의 운명 등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며 방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듄 연대기’, 혹은 ‘듀니버스(Duniverse)’라고 불리는 그의 작품은, 영화화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처음 영화화를 시도한 사람은 놀랍게도, 컬트적이고 극도로 마이너한 영화들로 유명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였는데, 그는 16시간 분량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우기다가 결국 무산되었다고. 그래도 당시 만든 듄의 컨셉 아트나 기획들은 SF문화에 족적을 남겨, 그의 영화 기획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나왔고, 조도로프스키는 이 기획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만화작가 뫼비우스와 함께 그래픽 노블 ‘잉칼’을 만들기도 했다.

 

 데이비드 린치의 1984년 작 포스터 들

결국 한국에 ‘사구’로 소개된 1984년 작의 영화화를 맡은 것은, 몽환적인 영화들로 유명한 데이비드 린치였다. 미장센이나 디자인등은 상당히 공을 들인 느낌이 들고, 거대한 모래벌레가 나오는 장면은 당시 기술력으로는 꽤 스펙타클해 보인다. 그런데, 방대한 세계관과 스토리를 한편에 담으려다 보니 편집이나 구성이 좀 엉성하고, 막판으로 갈 수록 스토리가 압축 되서 허겁지겁 마무리가 되 버렸다. 그래서 아이러니 하게도 원작에 있는 초인 사상에 대한 경계가 아닌, 헐리우드식 초인 숭배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평가.

특히 하코넨을 미치광이 변태 성욕자로 묘사한 것이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겨서인지, 수작이라기 보다는 마이너한 성인용 B급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괴작(?)이 되어 버렸다. 원작에 없던 '위어딩 모듈'이라고 불리는 음파 무기로 싸우는 장면은 매우 유치해 보이기도.
당시 꽃미남이었던 카일 맥라클란이 주인공 폴을 연기했는데, 그는 린치의 유명한 컬트작들인 ‘트윈픽스’나 ‘블루벨벳’에서도 주연을 맡아 린치의 페르소나로 알려져 있다. 여주인공 챠니는 블레이드 러너로 유명한 숀 영이, 거니 할렉 역에는 스타트렉이나 엑스맨 시리즈(원조 프로페서 X 역)로 유명한 패트릭 스튜어트가 나왔고, 막스 폰 시도우가 카인즈 박사로 나왔고, 유명한 영국가수 스팅이 하코넨 남작의 조카인 페이드 로타 하코넨역을 맡았다(거의 상반신을 노출하고 나오는 스팅의 모습은 이 영화의 기괴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원작자 허버트는 이 영화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린치 감독 본인은 자기의 흑역사로 치부하는 듯.

1984년 작의 등장인물들

주인공 폴(카일 맥라클란)과 챠니 (숀 영)

 가수 스팅이 나오는 장면 

1984년 작에서 모래벌래가 나오는 장면. 당시 기술력으로는 꽤 스펙타클


이 영화는 게임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사실 우리 세대가 ‘듄’을 들어본 것은 아마 웨스트우드에서 제작한 1992년의 PC게임 ‘듄 II’에서 부터가 아닐까 싶다. 듄 II는 유명한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현재는 일반화 된 ‘실시간 전략게임(RTS)’이라는 장르를 처음 도입한 게임으로 유명하다.

 

듄II 게임. 1984년 영화의 이미지를 많이 차용.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게임. 

 


3. 2021년 빌뇌브 감독의 듄

일단 빌뇌브 감독의 신의 한수는, 소설 전체를 담으려 하지 않고, 폴이 프레멘에 합류하는 시점까지만 1편에 담은 것이다. 그래서 84년 작 처럼 후반부 스토리가 엉성해 지지 않고 적절한 내용을 다뤘다. 가장 빛을 발한 점은 드뇌브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 향상된 영화 기술력, 그리고 한스 짐머의 음악이 어우러져, 매우 진중하고 분위기 있는 SF 영화가 나온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소설이나 84년도 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솔직히 정말 재미 있다거나 흡인력이 강한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량한 사막의 분위기, 비극적인 주인공의 영웅 서사, 내면의 갈등과 성장 등을 이렇게 멋스럽게 표현해 내는 것은 드뇌브 감독이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비교를 위해 84년 작을 다시 보고 2021년 작을 보았는데, 같은 스토리의 장면도,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84년 작이 뭔가 좀 엉성한 비디오용 B급 괴작 느낌이라면, 2021년 작은 고급스러운 SF 서사극으로 부활했다.
폴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이미 “더 킹: 헨리 5세”등에서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레이디 제시카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로 알려진 레베카 페르구손, 레토 아트레디스 공작은 역시 요즘 잘나가는 오스카 아이작, 거니 할렉은 조시 브롤린 (과거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에 출연), 프레멘 리더인 스틸거는 하비에르 바르뎀 등 유명배우 들이 출연했다. 84년 작품은 프레멘 역들까지도 거의 다 쌩 백인(?) 배우들이 연기한 반면, 이번 2021년 판은 챠니와 스틸거를 비롯해 프레멘들은 중동의 아랍인 느낌이 나는 배우들이 맡았고, 닥터 유에 역을 중국 배우 장첸이 맡았는데,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최근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듯.

 1984년과 2021년 작의 모래벌레 신 비교

 


4. 스토리

일종의 메시야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폴 아트레디스의 운명의 장중한 도입부로서 1편을 시작한다. 폴은 아트레디스 가문의 리더인 아버지 레토 공작의 정치적 파워와, 특수 능력을 가진 여성 집단 베네 게세리트 일원인 어머니의 정신적 파워까지 받아서, 주인공 버프(?)가 상당하다.
영화의 배경상 가장 소중한 자원이 ‘스파이스’인데, 이는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우주 항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물질로, 오직 모래 행성인 아라키스에서만 채굴된다. 원래 원주민인 프레멘이 살고 있는 이곳을 하코넨 가문이 가혹하게 통치하며 스파이스를 채굴하고 있다. 그런데 힘이 커져가는 아트레디스 가문을 경계한 황제와 악랄한 하코넨 가문은 음모를 벌인다. 아트레디스 가문에게 아라키스 행성을 맏으라고 해서 이주시킨 다음, 불시에 공격하여 궤멸시키려는 것. 이 과정에서 폴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멸문 수준의 화를 입는다. 폴은 어머니와 겨우 탈출해 프레멘족에 합류하는 것으로 이번 2021년 작은 끝난다. 앞으로 폴은 프레멘족의 지도자가 되어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와 하코넨 가문과 맞서 승리를 거두어 그 자신이 우주의 황제가 될 예정이다.

 

2021년 작의 주요 등장 인물들

1984년과 2021년 작의 주요 배역들 비교 


5.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대 향연?

비판적으로 보자면, 아무래도 원작이 1965년 소설이라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다. 먼저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아트레디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은 아버지의 정치적 권력과 어머니의 정신 능력을 이어받은, “잘 나가는 명문가 2세, 금수저 백인 남성”이다. 모든 걸 다 가진, 만렙(?)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해서, 백인 남성 메시야의 중동 모험 서사라는 익숙한 스토리가 시작되는 것.
하코넨 가는 음흉하고 사악하며 가혹하게 프레멘을 착취한다. 반면, 아트레디스 가는 명예를 중시하며 신의로 뭉쳐있고, 아카리스 행성을 맡으면서도, 하코넨의 정책과 달리 프레멘과 동맹을 맺어 협력관계를 추진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두 가문 모두 유럽/백인 문명을 상징하며, 스파이스 채굴, 즉 자원 착취를 위해 아카리스에 온 것은 다를 바가 없다.

스파이스(Spice)’라는 물질은 대항해 시대의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떠올리게 하는데, 서구 세계가 무역, 혹은 전쟁과 식민주의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비서구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동양의 향신료가 서양에 전달된 것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고기나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주고 저장을 도와주어서 음식 문화를 바꾼 것. 당시 먼 항해 때문에 향신료는 엄청난 가격에 팔렸고, 원산지인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으로 서구 제국들이 진출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오스만 제국이 강성해지고 중계무역을 장악해 폭리를 취하자, 이를 우회하기 위해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발하고 해안 가 중심으로 식민지를 만든다. 스페인은 더 나아가, 지구를 반대로 돌아가면 인도에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항했다가 아예 신대륙을 발견해 버린다.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대체하는데,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화 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향신료의 원산지라는 점이기도 했다.

이후 석유가 발견된 후로는, 산유국들인 중동에 서구의 개입이 집중된다. 듄의 배경인 아라키스 행성은 노골적으로 중동의 자연 환경을, 프레멘 족은 중동/아랍인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들은 척박한 사막에 살고 있는데, 석유와 유사한 스파이스라는 ‘자원의 저주’ 때문에 외부의 백인 문명에게 끊임 없이 침략과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
폴이 프레멘에 합류할 때, 프레멘들이 저 사람이 우리의 ‘마디’인가 이야기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디(Mahdi)’라는 단어는 구세주, 메시야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라고. 프레멘에 합류하면서 폴이 선택하는 이름인 ‘무아딥(Mu'addib)’은 아라키스의 사막에 서식하는 캥거루쥐의 이름이자 ‘교육자’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이기도 하다. 캥커루 쥐 무아딥은 큰 귀로 수분을 모아 스스로 물을 만들기에, ‘지혜로운 자’라는 의미와 교육자, 즉 지도자라는 뜻도 있는데, 폴이 그 이름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을 구원자로 자리매김 하려는 복선을 깔고 있다. 듄의 세계에서는 과거 인공지능 기계가 인간을 위협하자 그에 맞서 기계를 파괴한 ‘버틀레리안 지하드’의 역사를 언급하는데, 잘 알려진 대로 ‘지하드’는 이슬람의 성전을 의미한다. 9/11 사태 이후 지하드 라는 용어는 보편화 되었고 공포를 자아내지만, 원작이 나온 60년대에는 생소한 용어였을 것이고, 여기서는 인류가 기계에 맞서 일어난 중립적 혹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듯.

결국 듄의 스토리는 ‘백인 남성 주인공’의 ‘중동(제3세계) 모험 서사’라는 틀을 반복하고 있다. 서구의 제국주의/식민주의는 피지배 국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서구의 정신구조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다. 서구의 문학과 영화 등을 보면, 제3세계를 서구 백인 남성의 모험장으로 설정하고, 거기서 탐험, 갈등, 전쟁의 과정을 겪지만 결국 승리하여 부나 보물 명성을 획득하고, 그 과정에서 현지인/원주민 여성과 로맨스를 경험하는 스토리가 무수히 반복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백인 남성의 관점에서 비백인/비서구 세계를 타자화/대상화 하고 있으며, 그들의 일부는 ‘악마’화 되어 타도, 정복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여성’화 되어 역시 탐험/획득/정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시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개념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이러한 서사 구조의 예는 정말로 많다.
실제 인물인 포카혼타스(1596~1617)의 이야기는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도착해 미국 원주민(인디언)들과 접촉하면서, 여성 원주민인 포카혼타스가 유럽인 남성 존 스미스를 구해주고 시작되는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이 둘은 실제 인물이긴 하지만, 그들은 서로 안면이 있을 뿐, 사랑에 빠진 관계는 아니었고, 로맨스 스토리는 나중에 출판업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낸 내용이라 하는데, 서구인들에게 인기 있는 내용이어서라고.

유명한 드라마 시리즈인 ‘스타트렉(1966~)’은 과거 서구의 함포외교(Gun Boat diplomacy)를 우주 탐험이라는 메타포로 표현한 듯 하다. 발달된 과학기술과 민주적 체제를 갖춘 지구인들은 엔터프라이즈호(이름 자체가 ‘기업’, ‘회사’라는 뜻)를 타고 우주를 항해하며 외계 종족 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대부분 특이한 외모를 갖고 있으며, 왕정, 부족제 등의 후진적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문명과 과학기술이 열등하다. 지구인들은 무역과 교류를 원하지만, 호전적인 외계 종족의 일부는 이들을 적대시 하며 공격하려 하고, 다른 일부는(주로 포카혼타스 같은 포지션의 여성 캐릭터) 지구인들과 협조관계를 형성해, 함께 호전적인 세력을 몰아내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식의 서사가 반복된다. 결국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나 미국이 비 서구 세계와 조우하여 경험했던 것을 배경만 미래의 우주로 바꿔서 묘사한다고 보인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특히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1984)’은, 인도에서 벌어지는 백인 고고학자 주인공의 모험으로, 오락영화이긴 하지만 최악의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준다. 영국 식민통치 하의 인도의 한 지역이 배경인데, 인도인들은 벌레와 눈알 스프, 원숭이 골 등을 먹는 미개한 인종으로 묘사되며, 토착 종교는 사람의 심장을 파내서 제물로 바치고 있다.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영국의 식민지배가 아닌, 인도의 토착 종교와 지도층으로 묘사되고, 이들은 영국에 대한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 인디애나 존스는 이들과 맞서 싸우는데, 위기의 순간 영국군이 와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질서를 회복한다. 인도의 유구한 역사나 문화는 기괴함으로 인식될 뿐이며, 이들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서구 국가들의 지도가 필요한 미개 종족으로 그려진다. 식민지를 착취했던 서구 국가들의 폭력과 위선, 그리고 간디가 추구했던 인도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 등은 이 영화에서 설 자리가 없다.

물론 조금 리버럴한 형태의 서사 구조도 있다. 백인 주인공이 원주민에 공감을 느끼며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이다. 영국군 중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의 자전 소설으 영화화 한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는 중동 모험 서사의 원조격이다. 로렌스는 한때 유럽을 위협하던 오스만제국을 약화시키려는 영국을 대표해,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던 아랍 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하고 봉기를 유도하며, 이들을 규합해 오스만의 수도인 다마스커스를 향해 진격하고 제국을 붕괴시킨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철저하게 국익에 따라 아랍세계를 마음대로 분할해 버리고 독립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으며, 아랍 민족들은 분열한다. 결국 로렌스는 좌절하고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다. (여담으로 1984년 작 사구에 아트레디스 가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샤담 황제로 출연한 배우 호세 페레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터키군 장관으로 출연해서 로렌스에게 시련을 준다. 두 영화의 평행이론?)
늑대와 춤을(1990)’ 같은 영화도, 유사하다. 남북전쟁시 북군의 일원이었던 주인공이 병력이 흩어지고 고립되자 미국 원주민인 수족(Sioux)에 동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영화 ‘아바타(2009)’도 비슷한 구조를 따른다. 지구인인 제이크는 군인으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나비족의 몸을 입고 외계행성의 나비 족 공동체 속에 들어간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서, 지구인들이 원하는 희귀 자원 ‘언옵타늄(Unoptanium)’을 채굴할 수 있게, 나비 족을 타 지역으로 이주 시키는 것이 목표. 그러나 나비족과 어울리게 된 그는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공감하고, 자신을 훈련시켜준 나비족 여인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져서 오히려 이들의 일원이 되고, 지구인과 맞서 싸우게 된다. 나름 외계인으로 묘사된 비서구 세계에 공감을 하는 면이 있지만, 그 한계는 역시 외부인인 제이크가 이 과정에서 일종의 백인 메시야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래 부족의 리더 격이었는 인물을 대체하고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프리카 풍의 음악들과 광활한 자연 풍광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파워 오브 원(1992)'이라는 남아공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영화가 있는데, 여기서도 백인인 주인공이, 흑인들 안에 예언으로 전해져 온 레인메이커(일종의 구원자)로 선택 받는 황당한 장면이 나온다. 흑인 리더와 권투시합에서 그를 꺾자, 그는 주인공을 손을 들어 레인메이커라고 선포하는 것.

결국은, 이런 서사 구조나 공감과 동조의 여부는 차이는 있지만, ‘백인 남성 메시야’의 ‘중동(비서구 세계) 모험서사’라는 틀을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백인 남성이 원주민의 구원자가 된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한계와 황당함이다. 영화 듄에서도 프레멘들은 그들 안에 퍼져있는 메시야 설화에 따라 폴이 도착하자마자 그를 숭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6. 원작의 메시지는 정 반대?

그런데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 소설의 주 메시지는 헐리우드 식 초인 숭배 영화로 끝난 1984년작과 달리, 초인 숭배 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흥미로웠다. 심지어 원작자인 허버트는 "초인(슈퍼 히어로)은 인류에게 재앙이다"라고 믿었다고.
영화의 중요한 설정이, 일견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다이 기사단과 유사해 보이는 베네 게세리트라는 초인 집단이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수녀회 (혹은 마녀회?)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들은 뛰어난 정신적 능력으로 상대를 최면으로 조작할 수도 있고, 버틀레리안 지하드 이후,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각종 정치적 종교적 음모와 인류 개량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설정. 이들은 자녀의 성별도 결정할 수 있는데, 특히 무려 1만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전자를 개량해 왔고, 적절한 시점에 일종의 메시야인 ‘퀴사츠 해더락’을 배출할 계획이었다고.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도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인데, 문제는 교배 계획상 폴은 여자로 태어나야 했으나, 본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원했던 레토 아트레디스 1세를 위해, 그를 사랑한 레이디 제시카가 교단의 명을 어기고 아들인 폴을 낳아 퀴사츠 해더락으로 만든 것. 베네 게세리트는 각 민족을 조작하기 위해 각종 종교적 신앙을 심어 놓고 이를 이용한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결국 폴이 메시야가 되는 것은 베네 게세리트들이 과거 아라키스 행성의 프레멘들에게 무아딥이라는 메시야 신앙을 심어놓았기 때문이고, 폴이 이를 이용한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결국 프레멘 들은 가짜 신앙에 경도되어 폴을 따르게 되는 것.

문제는 폴 조차도 이러한 맹목적 신앙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전반적으로 주인공인 폴의 고난과 성장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이번 2021년 영화에서, 짧지만 폴이 불길한 미래를 예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자신이 본 공포스러운 미래에 압도되어, 그 단초를 놓은 어머니에게 분노를 쏟아 놓으며 말한다.

I see a holy war spreading across the universe like an unquenchable fire,
저는 보여요, 꺼지지 않는 불처럼 우주를 뒤덮는 종교 전쟁이,
A warrior religion waves the Atreides banner in my father's name,
제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트레디스 가의 깃발을 휘날리는 전사 종교가,
Fanatical legions worshipping at the shrine of my father's skull.
아버지의 두개골을 신전에서 숭배하는 광신도 군단이.
A WAR IN MY NAME! EVERYONE SHOUTING MY NAME!
제 이름을 건 전쟁! 모두가 제 이름을 외친단 말이에요!

 

문제의 장면


그 장면에서 엄청난 학살이 벌어지고 폴이 그것을 주도하며, 황제와 황후가 된 폴과 챠니는 냉정하게 대 파국을 내려다 보는 장면이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무아딥에 대한 신앙은 베네 게세리트가 심어 놓은 것인데, 그것이 폴 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광신적 종교가 되어, 우주를 종교 전쟁으로 밀어 넣는다는 것. 이후 폴이 최종 적수인 페이드 로타 하코넨과 결투를 할 때는, 자신이 이기면 프레멘들은 무아딥이 무적이라 믿고 계속 싸울 것이고, 자신이 패배하면 자신을 순교자로 모시며 싸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고. 폴은 결국 황제가 되지만 폴의 아들은 폭군이 되고, 허버트가 완성하지 못한 듄 7부의 노트를 보면, 막판에는 제정이 붕괴하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린다는 결말이 있다고.

이렇게 되면 듄이 2부작 혹은 3부작으로 제작될 경우, 매트릭스와 유사한 구조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매트릭스도 1편은 기독교의 메시야적 세계관을 제시했다가, 2편과 3편에서 그것을 부정하고 힌두교적 순환론적 세계관으로 변형되는 방식을 따랐다면, 폴이 메시야적 성장 과정을 겪는 1편과 달리, 후편은 무아딥 신앙이 베네 게세리트가 심어준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것이 광신적 종교가 되어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반 종교적, 반 메시야적인 방식으로 진화해갈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듄이라는 방대한 원작 소설이 드니 빌뇌브 감독에 의해 고급스런 SF 영화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발을 떼고, 앞으로도 후편이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다. 후편들을 기대해 보자.

마지막으로 아래는 여러가지 듄의 컨셉 아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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