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드라마 파친코 (Pachinko, 2022) 이야기2: 인물과 스토리에 대해 

 

2022년 5월 26일 이인엽

 


지난번 글은 드라마의 전반적인 소감에 대해 썼다면, 이번 글은 구체적인 스토리와 인물들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 하려고 한다. 워낙 인상깊은 드라마라, 자세히 쓰다 보니, 에피소드8편으로 구성된 시즌1의 내용을 거의 다 요약한 글이 되어 버렸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스포일러가 있음을 밝혀둔다. 

소설은 선자 부모(1대) - 선자와 백이삭(2대) - 노아와 모자수(3대) - 솔로몬(4대)로 이어지는 가족의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서술했다고 하는데, 각본가 수 휴는 과거(1920년대)와 현대(1980년대)가 계속해서 교차되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구성했다 (한수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7편을 제외). 이 점은 드라마의 긴장도를 높여주고,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탁월한 설정이었다. 

1. 전체 에피소드 요약 

1) 에피소드 1~3편: 이야기의 도입부  

 


코고나가 감독이 제작한 첫 3편은 전체 이야기의 도입부이다. 
먼저 드라마의 주인공인 선자의 이야기. 1920년대, 일제 치하의 조선에서, 가난했던 선자의 어머니 양진(정인지)은, 언청이에 휜 다리로 장가를 못가던 훈이(이대호)에게 시집을 오는데, 세번이나 유산을 하고, 무당에게 찾아가 치성을 드리고 어렵사리 선자를 낳게 된다. 아버지 훈이는 어린 선자(전유나)가 자맥질을 하면, 자기도 숨을 참고 애타게 그걸 지켜 보는 등, 귀하게 얻은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하숙을 치는 선자네 집에 머물던 아저씨가 일제에 불만을 이야기하다 잡혀가는데, 선자는 눈물을 삼키며 지켜 보고, 아버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선자를 지켜주겠다 약속 한다. 

결국은 선자라는 주인공이 가난한 조선인 여성임에도 차별과 억압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것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강인함과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의 힘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선자의 아버지는 권위주의적이거나 마초적인 남성상과는 거리가 먼, 딸에 대해 매우 다정다감한 모습인데, 아마도 자신이 장애가 있는 약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장에서 아저씨의 거래를 도와주고 용돈을 받아온 선자를 어머니는 나무라지만, 아버지는 “돈이 아니라 정이지. 세상에 정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아야 되는기다. 그래야 강하게 크는기다”라며 감싸준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을 엄하고 바르게 키우려 애를 쓴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은 사랑을, 삶의 희생과 헌신으로 보여주면, 자식이 언젠가 내 맘을 알아주겠지 하는 부모들이 많다.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어색하게 생각하는 문화도 있다. 하지만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식이 그런 부모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기 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을 못 받으면, 청소년기와 성인이 되서도 그 결핍은 쉽게 채우기 힘들다. 부모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하늘의 대리인이며, 꼭 필요한 어린 시절에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줄 유일한 존재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자녀에게 부모가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선자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어린시절 아버지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믿어주고 지켜준다는 기억은, 선자의 자존감과 안정감, 의지력의 뿌리가 되었다. 일본 순사들이 어시장에 나타나면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선자만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나중에 자신의 현지처가 되라는 한수(이민호)의  제의를 거절할 수 있는 힘도, 거기서 왔을 듯. 

 


선자와 어머니는 하숙을 치며 부산 영도에서 삶을 이어가는데, 어시장에서 한수(이민호)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며 아이까지 임신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수는 일본 오사카에 일본인 현지처와 딸들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다. 한수는 선자에게 호강시켜주겠다며 자신의 현지처가 되라고 설득하지만, 선자는 혐오감을 느끼고 그를 떠난다.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고생하며 나름 성공한 한수는, 한수는 관서지방 야쿠자의 데릴사위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돈과 권력은 가졌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공허함이 있는 복잡한 인물로 순수한 선자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평양 출신의 병약한 목사인 이삭(노상현)이 일본으로 건너가던 중, 하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영도에 도착한다. 그는 선자네 하숙집에서 결핵을 앓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선자 모녀의 극진한 간호로 회복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걸 알면서도 선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이민진 작가의 원작소설에서는 목사인 그가 선자와 결혼하라는 특별한 신의 계시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마리아가 결혼전에 예수를 임신한 걸 알면서도 아내로 받아들이는 요셉의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한 듯. 

 

선자의 이야기와 그녀의 손자인 솔로몬(진하)의 이야기가 교차되는데, 현재 배경인 1989년의 시점에, 솔로몬이 미국에서 돌아온다. 예일대에서 유학을 하고 미국의 다국적 은행에 취직했지만 소수인종에 대한 유리천장으로 계속 승진에서 떨어지자, 그는 일본에서 진행되는 재건축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겠다 장담하고, 대신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조건을 걸고 일본에 들어온 것. 1989년이 의미심장 한 것은, 일본의 경제버블이 정점에 이르러 터지기 직전이고, 일제의 식민지배와 태평양전쟁의 상징인 히로히토 덴노가 사망한 해이기 때문이다. 일본인 시청자가 봐도 80년대를 회고할 요소들이 많고,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솔로몬의 동료인 나오미의 대사를 통해 일본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도 언급한다. 

선자의 아들 모자수(박소희)는 파친코를 경영하는데, 새로운 점포를 열려고 계획하는 등 나름 안정된 삶을 보내고 있다. 소설과 드라마의 제목인 파친코는 그 자체로 자이니치들의 삶을 상징한다. 차별이 극심했던 일본에서 자이니치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세가지 정도가 있는데, 한수처럼 야쿠자가 되거나, 모자수 처럼 파친코를 운영하거나, 예체능계로 진출하는 것 정도였다고. 예체능계에는 특히 자이니치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프로레슬러 역도산이나 극진가라데의 최배달도 그런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솔로몬이 아버지의 파친코 점포에 도착하자, 티비에서 ‘쿠로하나 엔터프라이즈’의 ‘요시이’라는 사람이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가 연루된 범죄혐의에 대해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솔로몬이 저 사람 할아버지가 누구냐 묻자, 모자수는 이미 죽고 없는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이라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데, 여기서 할아버지는 아마도 한수가 아닐까 싶고, 선자가 낳은 한수의 생물학적 아들(노아)은 자신을 키워준 이삭과 선자, 그리고 형제인 모자수의 길에서 벗어나 한수를 따라간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요시이는 노아의 아들일 것이고. 
악마의 유혹이라 하면 너무 지나칠 지 모르지만, 한수의 제안을 선자가 거절 했는데, 한수의 손길은 이삭과 선자의 아들로 살고 있었던 노아에게 뻗쳐, 그는 한수에게 넘어갔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유혹은 솔로몬에게도 찾아온다. 드라마는 이삭과 모자수의 길, 그리고 한수와 노아의 길 사이에서 신세대인 솔로몬이 갈등하는 구도를 보여준다. 이런 설정 자체가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고, 스토리를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준다. 굳이 비교하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포스의 다크사이드로 넘어가 다스베이더가 되고, 그 유혹이 루크 스카이워커에게도 찾아오는 구도도 떠오른다. 

 

솔로몬은 1980년대 미국의 다국적 은행에서 근무하는 직원답게, 세계화로 국가의 경계는 점차 허물어질 거라 믿으며, 자신은 자신에게 월급 주는 사람에게 충성한다고 말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일본에서는 경계인으로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자이니치로서의 민족적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미국의 유리천장을 뚫고 성공하는 것이 목적인 그는, 끝까지 땅을 팔지 않겠다며 재건축 프로젝트를 가로막는 자이니치 할머니 한금자/마쓰다 소노코 (박혜진)를 설득하려 노력한다. 심지어 같은 자이니치인 자신의 할머니 선자(윤여정)와 함께 방문해 설득을 해 보려 할 정도. 한금자와의 대화에서 자극을 받은 선자는 동서인 경희의 유골을 갖고 수십년 만에 고향인 부산 영도를 방문하기로 마음 먹는다. 

솔로몬의 캐릭터에 유명한 일본의 자이니치 기업인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일본명 손 마사요시)를 참고한 것 같다는 이야가 있다. 파친코로 돈을 벌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미국 명문대인 UC버클리로 유학을 왔다가 일본에 와서 사업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배경 등이 유사하다. 손정의는 일본으로 귀화하면서 일본어 성도 있었지만, 손이라는 성을 고집했고, 기존에 손이라는 성이 없어 등록이 안되자, 외국인과 귀화한 여성은 성을 바꿀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이용해, 자기 아내 성을 먼저 손으로 바꾸어서 일본어 성을 만든 후, 자신이 손 마사요시라는 이름을 등록했다고 한다. 

 


2) 에피소드 4편: 응축된 감정과 긴장의 폭발 

저스틴 전 감독이 만든 4편은 하나의 독립된 영화라 해도 좋을 만큼, 시즌 1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드라마틱한 에피소드였다. 코고나가 감독이 3편까지 소개한 배경 위에, 그동안 쌓인 감정과 긴장이 말 그대로 ‘폭발’ 한다. 4편의 구성과 스토리 상당 부분은 원작 소설에 없었던 새로운 내용이라고. 

이삭과 선자는 결혼식을 올리고,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어머니 양진은 선자와 헤어지기 전에 우리 나라 쌀로 밥을 해 먹이고 싶다는 간절한 부탁으로, 조선인에게 잘 팔지 않는 쌀을 어렵게 구해 온다. ‘산미증식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쌀을 수탈하던 일제의 정책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선자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불만인 한수는 이삭을 만나 시비를 걸어보지만, 이삭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자존심을 지킨다. 
이삭과 선자는 도쿠주마루호라는 배의 허름한 밑바닥 칸에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거기에는 일본 광산으로 일하러 가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타고 있다.  선자는 배멀미를 심하게 앓으며 힘든 여행을 한다. 배를 타면서 선자는 한 조선인 여가수(이지혜) 가 흘린 숄을 주워주고, 가수는 소중한 사람이 선물한 것을 잃어버릴 뻔 했다며 감사를 표하며, 저녁 공연에서 선자를 위해 노래하겠다고 한다. 잘 차려 입은 일본인들이 고급 음식을 먹으며 여가수의 노래를 듣는 위층과, 물도 없이 멀미를 하며 노동자들이 꽉 들어찬 아래층이 대비된다. 

현재 솔로몬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결국 호텔 프로젝트를 위해 한금자는 은행에 와서 집을 팔겠다는 서명을 하기로 한다. 그런데 한금자는 솔로몬과 대화 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먼저 치쿠호 광산에 일하러 왔고, 어머니와 자신도 따라왔으며, 그곳의 여건은 끔찍해서 아버지와 400여명의 한인 광부들이 파업을 할 정도였다고 이야기 한다. 즉, 과거의 이삭과 선자가 건너오던 배에 한금자의 아버지가 광부로 건너왔을 수 있는 것. 

과거 선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여가수는 배 위층 일본인들을 호화로운 파티장에서 울게하소서라는 가곡을 부르다, 갑자기 ‘갈까부다’라는 애절한 조선의 노래를 부른다. 일본인들은 화를 내며 그녀를 끌어내려 드는데, 아래칸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들을 우리 노래가 들린다며 반가워 하며 장단을 맞춘다. 그리고 여가수는 칼을 꺼내 자살을 한다. 춘향전에 나오는 ‘갈까부다’는 이몽룡을 따라가고 싶으나 변학도에게 수청을 강요받는 춘향이가 부르는 노래라는데, 그 노래처럼 자신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잃고, 일본인들을 위한 노리개가 되어가는 상황에, 처절하게 저항한 것었다. 

참고로 여가수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일제시대 실존인물인 윤심덕이라는 의견이 있다.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 소프라노 가수로, 일본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사의 찬미’라는 곡으로 알려졌는데, 일본에서 음반취입을 하면서 김우진이라는 극작가를 만나 함께 배를 타고 귀국 하던 중 실종되었다. 두 사람은 배를 탔으나 선실의 문은 열려있었고 가방만 남아 있었는데, 확인 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자살을 택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사의 찬미라는 노래와 연관되어 비극적이고 허무한 일제시대의 한 에피소드로 남았다고. 

 


여 가수의 자살 장면이 오버랩 되며, 현재의 한금자 할머니는 솔로몬에게 자이니치들이 겪은 차별과 설움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너희 할머니에게 그 몸속에 한 맺힌 피가, 그 핏방울 하나 하나가 이걸 못하게 막는다 하면 뭐라 말씀드릴거냐?”라고 질문한다. 충격을 받고 혼란을 느낀 솔로몬은 자신도 모르게 “하지 마세요”라고 이야기 해버리고, 한금자 할머니는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서명을 거부하며 떠나고, 은행은 난리가 난다. 

 

이 순간은 솔로몬이 자이니치들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각성/회심과 같은 순간인데,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회사를 뛰쳐나가 값비싼 넥타이와 양복 재킷을 벗어 던지고, 길에서 노래하는 밴드의 음악에 맞춰 미친듯이 춤을 춘다. 선자는 아들 모자수와 경희의 유골을 가지고 수십년 만에 고향인 부산 영도의 해변에 서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4부가 끝난다. 

 


사실 집을 팔지 않는 것을 소재로 했지만, 이 장면은 한미일 간의 역사갈등을 상징하고 있다는 해석이 있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일본에서 중요한 거래를 하는데, 한 자이니치 ‘할머니’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은, 위안부 문제등 역사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솔로몬의 상사로 미국 다국적 기업의 일본 책임자 이름이 ‘아베’ 상인것도 그렇다. 중국의 부상에 맞서 미국은 한미일 삼각 동맹을 구축, 강화하기 원했는데, 그 걸림돌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갈등이었다. 특히 오바마 정부는 한일에 역사문제를 해결하라 압력을 넣었고,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정부가 위안부 졸속합의를 추진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제대로 된 사죄와 국가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으로 위안부 문제를 끝내려고 시도했고,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 박정희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첫 단추를 잘못 꿴 이후 정확히 50년 만에 다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상의도 없이 졸속 합의로 이 문제를 끝내려 시도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금자 할머니가 끝까지 저항하는 것은 역사를 기억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상징이며, 드라마는 솔로몬이 순간 자신이 하는 짓을 깨닫고 거래에 파토를 내는 것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기억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으라고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3) 에피소드 5~6편: 일본에 온 선자, 솔로몬과 하나의 이야기. 

오사카에 도착한 이삭과 선자는 이삭의 형인 요셉(한준우)과 경희(정은채) 부부와 함께 지내게 된다. 경희는 부잣집 딸 출신으로 주저하는 게 많지만, 마음 착한 여인으로 선자와 좋은 친구가 된다. 요셉과 경희 부부는 자녀가 없는데, 이삭과 선자 부부와 함께 살면서 조카들을 자식처럼 키우고, 현재의 시점에서 나이든 경희(펠리스 최)는 선자에게 간호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다. 요셉이 동생 부부의 배편을 구하기 위해 사채를 썼다는 걸 알게 되고 빚 독촉을 당하자, 선자는 조선에서 한수가 준 회중시계를 팔아서 빚을 갚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는 한수가 선자의 살림이 어려울 것을 예상해 전당포 사장에게 시계를 사달라고  부탁한 거였다. 선자에 대한 집착인지, 태중의 아이 때문인지, 그는 선자를 은밀하게 지켜보며 주위를 맴돈다. 

현재 시점의 나이든 선자는 한금자와의 대화에 자극을 받아 부산 영도를 돌아보며 아버지의 묘를 찾는데, 그 와중에 하숙집에 함께 살던 복희 언니(김영옥)가 아버지의 묘를 챙겨준 걸 알게 되고 그녀와 재회한다. 복희 언니는 선자가 떠난 후 “언젠가 어떤 아재가 찾아와가 만주 공장에 좋은 일거리 있다고 우릴 소개시켜 준다카데”라고 하며, 돌아온 후 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자신과 동생이 속아서 일본군 ‘위안부’로 갔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솔로몬은 땅을 사는 거래에 실패하면서 회사에서 어려운 처지가 된다.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좋아하는 사이였던 하나(야마토모 마리)에게서 연락을 받게 되어 그녀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녀는 아버지 모자수의 애인인 에츠코(미나미 카호)의 딸로, 솔로몬과 좋아하는 사이였지만,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 방황하다 매춘까지 하게 되고 결국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처지로 가족에게 돌아온다. 간호를 받던 하나는, 과거 선자가 자신이(하나가) 솔로몬을 망칠 수 있다고 걱정하며 집을 나가길 원해서 가출했다고 원망하는데, 선자는 그것이 하나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다며 해명한다. 선자는 과거 아들 노아가 잘못된 길을 가게 된 것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는지 죄책감을 가졌던 것이고, 솔로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국으로 가길 원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비자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솔로몬에게, 뉴스에서 봤던 요시이 마모루 상(루이스 오자와)이 찾아와 동업 제안을 한다. 아마도 그는 한수의 손자이자, 노아의 아들로 추측되는데, 할아버지가 불법적인 사업에 연루 되었었고, 아버지 노아는 마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요셉은 선자가 시계를 팔아 빚을 갚았다는 것에 자존심 상해하며 화를 낸다. 이삭은 목회를 하며 노동자로 일하는 청년과 대화를 하는데, 그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자이니치들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데, 이삭은 화를 내며 술집에 가버린 요셉을 찾아 대화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산통을 하던 선자는 아들을 낳았다. 이삭과 선자는 요셉에게 아들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는데, 요셉은 아무도 믿지 않을 때, 새로운 세상을 열어낸 사람, ‘노아’라고 하자고 말한다. 갈등하던 가족이 노아의 탄생을 계기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4) 에피소드 7편: 한수의 이야기 

7편은 한수의 과거를 묘사한다. 제주도 출신의 한수 아버지(정웅인)와 한수는 오사카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 나가는데, 아버지는 야쿠자의 돈을 관리해주며 살고, 한수는 부유한 미국인 가정의 응석받이 아들의 수학 과외 교사로 일한다. 미국인 가정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한수를 데려가겠다고 제안하고, 한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좋아하던 일본 기생에게 자신이 관리하던 야쿠자의 돈을 빌려주었다가 회수를 못하게 되고,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 아버지는 한수에게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라 윽박지른다. 

이 와중에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1923년)이 발생하고 한수는 모든 것을 잃는다. 아버지가 죽고,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가려던 가족들도 죽고, 그들이 소유하던 회중시계 만을 기념품으로 간직하게 된다. 돈을 몰래 썼다가 날린 한수 아버지를 벌하려던 야쿠자 두목이 오히려 한수를 돌봐주고, 학살에서 구해준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관동대지진의 와중에 '탈옥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죽이고 약탈한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등의 거짓 소문이 퍼지고, 자신들의 공포와 분노를 약자인 조선인에게 풀려는 일본인들이 무장하고 학살을 시작한다. 한수는 끔찍한 학살을 목격하고 겨우 목숨을 건진다. 

일단 이번 에피소드의 가치는, 미국과 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원작 소설도 다루지 않았던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을 주요 소재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어 단어 ‘15円 50銭(15엔 50전)’을 발음해 보라고 하고 조선인을 구별해 학살한 것 등 (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십볼렛’ 이야기와 같은 상황), 인간으로서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은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드라마가 학살의 잔혹성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게 아쉽지만, 미국 드라마이고 여러가지 상황상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7편은 여러모로 다른 에피소드들과 좀 다르고 전반적으로 실망스럽다. 일단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긴장감 있게 진행되던 다른 편들과 달리, 한수의 과거만을 느리게 묘사한다. 무엇보다 한수 역의 이민호 배우는, 미남에 키도 훤칠 한데, 연기력이 정말 아쉽다. 드라마에 많이 출연한 걸로 아는데, 예전에 유하감독의 ‘강남1970’에 주연으로 출연했을 때, 연기력이 너무 부족하다 싶었고, 이번 파친코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다른 인물들을 맡은 배우들이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두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에 비해, 이민호 배우만 나오면 리얼리티가 급 하락한다고 느낄 정도였다. 일본어 연기도 매우 어색한 느낌.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작품에 나오면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은데 안타깝다. 그런데 7편은 이민호가 맡은 한수의 이야기를, 시점 전환없이 쭉 풀어내다 보니, 전반적으로 긴장감 없이 늘어지며 흡인력이 약했다. 제주도 출신인 한수 아버지와 한수의 배경을 보여주려 노력한 건 좋았는데, 제주도 방언 연기가 탁월한 것도 아니고, 대사 전달만 잘 안된 느낌. 생존과 현실을 강조하던 아버지가, 어이없게 좋아하던 일본 기생에게 돈을 빌렸다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한수에게 미국으로 떠나라 윽박지르는 것도 황당한 전개였다. 모든 것을 잃고 한수가 냉혈한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는 있지만, 다른 에피소드와 연결되지 않고 붕 뜬 느낌이었다. 

5) 에피소드 8편: 다음 시즌들을 예고하는 시즌 마무리 에피소드 

어느 덧 과거의 선자 시점에도 시간이 흘러 노아는 어린이가 되었고, 둘째인 모자수도 태어났다. 돌잔치를 하는 모자수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노아의 모습은, 씨가 다른 두 형제의 길이 다르게 진행될 것을 암시한다. 성경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 두 형제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 떠오른다. 흥미롭게도, 백이삭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서 따온 것인데, 이삭의 아들이 바로 에서와 야곱으로, 노아와 모자수와 대칭되는 면이 있다. 그 와중에 이삭이 누군가의 밀고를 받고 갑자기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선자와 요셉은 그를 찾으러 애를 쓴다. 요셉은 사장에게 도움을 받으려다 오히려 불령선인의 가족이라 찍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선자는 경찰에 찾아갔다가 이삭이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채, 조선인 노동자들과 일본인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천황에 반대하며 노동운동에 관여 했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현재 시점에서 하나는 결국 죽음을 맞는데, 솔로몬에게 자신들을 이렇게 대우한 그들이 한 짓을 잊지 말고 성공해서 복수를 하라는 말을 남긴다. 은행에서 잘린 솔로몬은 자신에게 동업을 제의한 요시이 상과 일을 시작하려 하는데, 아버지 모자수는 과거 한수가 자신에게도 그런 제안을 했었다며 솔로몬의 선택을 말리려 한다. 모자수는 선자와 이야기 하며, 솔로몬이 노아의 길을 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경찰서에 있던 이삭은 선자와 노아가 보는 앞에서 이송되어 버리고 노아는 아버지를 애타게 부른다. 이후 학교에 가는 노아에게 한수가 나타나, 회중시계를 건네주며, 이삭의 가르침과는 다른, 성공과 목표 중심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준다. 이삭이 잡혀가고 요셉은 직장을 잃은 상황에, 선자는 일본인들의 눈치를 받으면서 김치를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게 된다. 처음에 주눅이 들어있던 선자가, 어머니에게 배운 오사카 최고의 김치라며 열심히 손님을 부르는 모습을 줌 아웃 한다. 마지막으로 드라마는 실제 자이니치 할머니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는데, 드라마의 내용이 실제 역사에 기반한 것임을 알려주고 시즌 1이 끝난다. 인상깊은 마무리였다. 

2. 배우들에 대해 

 


아무래도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연기자가 수준급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인 선자를 맡은 배우는 총 세명으로 어린시절을 연기한 전유나 아역배우, 젊은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 배우, 노년의 선자를 연기한 윤여정 배우이다. 초반부에 전유나 아역배우는 너무나 똑부러진 모습으로 어린 선자를 연기해 냈고, 오프닝 크레딧에서 춤추는 모습도 정말 귀엽다. 김민하 배우는 젊은 신인인데,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사투리도 매우 자연스럽고, 선자가 가진 의지력과 단호함, 따듯함을, 너무나 생생하게 표현해 냈다. 윤여정 배우는 이미 미나리로 오스카 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배우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이 작품에 출연한 것 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고, 극에 안정감은 준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윤여정 배우가 연기한 노년의 선자 캐릭터는, 젊은 선자의 강한 의지력 보다는, 엄혹한 역사를 어렵게 살아낸 생존자의 모습, 그리고 아들인 노아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손자 솔로몬이 노아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려 등에 집중한 것 같다. 오히려 젊은 시절의 선자가 그대로 나이를 먹었다면, 집을 팔지 않겠다고 하는 한금자의 캐릭터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조연이었지만, 한금자 할머니를 맡은 박혜진 배우의 연기력은 역대급이었다. 찾아보니 연극 배우 출신으로 여러 영화,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동하셨고 얼굴도 익은데, 오징어게임에서 서울대 출신의 아들 조상우(박해수)를 자랑스러워 하며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어머니로 출연하기도 했다. 박혜진 배우는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인 4편에서 엄청난 연기 내공으로 극의 주제를 잘 살려 주었다. 
각본과 제작을 맡은 수 휴에 따르면 솔로몬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할 수 있으면서, 부산 사투리와 간사이 사투리까지 구사할 수 있어야” 해서 유니콘(세상에 없는 존재)을 찾는 것 같았다는데, 솔로몬을 맡은 미국 교포 배우 진하(한국식으로는 하진)는 여러 언어 구사가 매우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경계인으로서 자라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표현해 주었다. 과거 개인 텀블러 블로그에 한국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도촬한 사진을 업로드하고, 옷차림이나 외모를 조롱하는 멘트를 올린게 뒤늦게 발견되며 논란을 일으켰었고, 본인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고. 
백이삭 역을 맡은 노상현 배우는 모델 출신의 신인이라고 하는데, 매우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고, 백이삭의 모범적이면서도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모자수를 맡은 박소희 배우도 안정적인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데, 배우 자신이 자이니치 출신으로 이 드라마에 출연한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모자수의 애인인 에츠코를 맡은 배우 미나미 카호 역시 자이니치 2세 출신이라고. 

역시 글이 너무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글에서는 파친코에서 보는 기독교의 유산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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