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오징어 게임 (2021)
: 승자독식 사회 비판 + 추억 마케팅, 한국적이고도 세계적인 서바이벌 드라마

2021년 10월 이인엽

장안의 화제, 아니 세계적인 화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을 완주했다. 전에 유튜브에서 소개 영상을 하나 봤는데, 그것만 봐서는 그냥 기존의 잔혹서바이벌극의 재탕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장르에 큰 흥미는 없어서 많이 보진 않았지만, 일본의 배틀로얄 시리즈가 대표적이고, 미국에는 헝거게임이 있다. 크게 보면 '로스트'나 '워킹데드' 처럼 극한의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드라마들도 유사성이 있는 듯. 그런데 막상 오징어 게임을 완주하고 나니,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왜 세계적으로 대박이 났는지 좀 이해가 갔다

이번 학기 IPE(국제정치경제)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데, 마침 이번 주가 맑시즘과 Critical perspective를 다루는 시간이라, 설국열차, 기생충, 그리고 오징어게임을 예로 들며 그 안에 있는 계급 갈등과 신자유주의 비판 메시지를 간단히 언급했다. 가끔 수업에서 영화 레퍼런스를 들 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해서 세대차이를 절감하곤 한다 (예를 들어 요즘 학생들은 매트릭스 1편이 개봉한 1999년에 태어나지도 않았음 ㅠㅠ). 그런데 물어보니 수업듣는 22명 중, 설국열차, 기생충은 5명 정도가 봤다는데, 오징어 게임은 벌써 열명 이상이 본 듯. 넷플릭스의 파워가 대단하다. 한국 감독이 만든 이런 영화들을 가지고 미국 학생들과 이야기 할 수 있다는게, 기분 좋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떡밥과 해석 가능성을 주는 이런 영화/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좋은 작품을 보면 굳이 꾸역꾸역 생각을 정리해 글을 써보게 된다. 안보신 분들은 스포일러 주의.

 

1. 오징어게임의 차별성

개인적인 생각으로, '배틀로얄'이나 '신이 말하는대로' 류의 일본식 생존극은, 피칠갑의 잔혹성에만 너무 집중하는 반면, 극단적인 상황과 대비되는 인간성이나, 갈등의 사회적인 의미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구조와 게임의 법칙을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꿈도 없고 희망도 없는(?)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자극적이고 잔혹한 폭력성만 반복, 심화 되어 피로감이 느껴져서, 점점 이런 류의 일본영화는 안보게 되는 듯. 어쩌면, 일본 사회의 모순에도, 대안이 될 야당도 없고, 시민사회는 쇠퇴해 가고, 자민당 독주라는 구조를 깨지 못하는 일본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미국식의 생존극 역시, 한계 상황에서 인물들의 영웅적인 행동이나, 캐릭터들의 관계와 드라마에 집중할 뿐, 구조적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성찰이 아쉽다. 역시 미국식의 낙관론, 개인의 '노오력'을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반영하는거 같기도.

반면에, 오징어 게임은, 잔혹한 승자독식의 사회를 그리면서도, 뭔가 인간적이었던 과거 유년시절과 공동체에 대한 향수,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인간애와 정을 보여주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성찰과 비판을 던진다. 한국 감독이 만들어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설국열차, 기생충, 그리고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들은, 미국 못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계급화가 도래한 한국사회의 고민과 성찰이 담겨있는 동시에, 적어도 이런게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지 않냐, 구조의 변혁은 가능한가 등의 질문을 던지고, 그런 점이 세계적인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배틀로얄이나 헝거게임 등에서, 참가자들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서로를 죽고 죽여야 하는 약육강식의 게임을 강요받는다. 반면에 오징어게임의 설정에 차별성이 있는 것은, 참가자들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자신들이 투표로 게임을 끝내고 빠져나갈 수 있는데도, 게임에서 나갔다가 '자발적으로' 게임에 다시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프론트맨과 진행자들은 겉으로 '공정'을 내세우며, 자신들은 참가자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주장한다. 이는 오늘의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빚과 절망에 빠져 있는 참가자들의 일상에는 오징어게임 같은 매우 낮은 가능성 조차 찾을 수 없다. 다른 대안이 없고 협상력을 갖지 못한 대중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의 대상으로 내어 놓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신자유주의나 신식민주의의 현실과 연결된다고 하겠다. 과거와 같은 노예제, 식민주의는 아니지만, 결국 소수 지배자들의 다수에 대한 착취는 더욱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물론 오징어게임이 제공하는 가능성은, 일종의 복권과 같이, 성공의 '환상'일 뿐이다. 잘하면 나도 저 돈을 따서 흙수저를 일거에 벗어날 수 있다는 이루어 질 수 없는 환상. 위애 대롱대롱 매달린 돈다발을 보면,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에도 둔감해 진다. 이 상황에서 이웃과의 연대는 불가능해지고, 자신의 비인간적 행위도 합리화 하게 된다. 결국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는게 아니라,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그것을 지지하게 된다. 이를 내려다 보는 소수의 게임주최자들은 다수의 참가자들이 살려고 몸부림 치며, 서로 짓밟는 모습을 일종의 게임, 경마처럼 보고 즐긴다.

2. 황동혁 감독, 그리고 '국민학교' 세대를 위한 추억마케팅

 

계단으로 구성된 핑크색, 노란색, 청록색의 공간은 유치원 같은 느낌


황동혁 감독은 흥미롭고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회 고발성 영화 '도가니(2011)'의 감독이고, 역사 고증에 철저 했지만 흥행이 어려운 암울한 내용의 '남한산성(2017)', 그리고 전혀 다른 유쾌한 상업영화 '수상한 그녀(2014)'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감독의 전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도 몇명 있는데, 조폭 장덕수로 나온 허성태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의 용골대 역으로 만주어를 구사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었고, 도가니의 공유는 딱지치기 게임으로 성기훈을 끌어들이는 역으로 우정출연,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 한미녀(김주령)도 도가니에서 선생님으로 출연했었다.

오징어게임의 각본을 거의 2009년 경 완성했는데 제작사를 못 찾다가 넷플릭스를 만나 제작하게 되었다 하는데, 그만큼 많은 고민이 담겨있고, 설정이 탄탄하다. 코멘터리를 들으면, 본인이 서울대 출신(신문학과)이라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조상우(박해수)의 설정과 연결되고, 쌍문동에서 어머니가 장사를 하셨다는 배경은 상우와 기훈(이정재) 둘 다 연결된다. 두 사람이 감독의 상반된 페르소나라고.

 

황동혁 감독

황동혁 감독이 71년생인데, 7, 80년대 생이 공감할 만한 추억의 아이템들을 매우 디테일하게 깔아 놓았다. 김영삼 때 '초등학교'로 바뀐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1941~1995년 까지 쓰였는데, 이들을 '국민학교' 세대라 불러도 적당할 것 같다. 처음 게임장에서 참가자들이 깨어날 때 배경음악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으로 유명한 장학 퀴즈의 배경음악이다. 소위,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나가서 실력을 뽐내던, 대표적인 경쟁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또 중간 중간 배경음악은 리코더 소리 같은데, 국민학교 시절 가장 먼저 배운 악기중 하나이기도 하다. 게임 중에 나눠주는 음식도 난로에 데워먹던 양은 도시락, 사이다와 삶은 계란,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몽둥이 소시지(?)등 딱 그 세대가 먹던 음식들이고, 게임을 위해 이동하는 계단으로 구성된 핑크색, 노란색, 청록색의 공간은 유치원 같은 느낌을 주고, 설탕 뽑기를 하는 공간은 거대한 놀이터이다. 드라마에서 오징어게임 첫회가 개최된 것이 88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라는 것도, 이 세대에게 가장 인상깊은 기억일 것이고, 한국이 세계 무대에 극적으로 등장한 순간이기도 하다. 오징어게임이 처음 열린것은 1988년이고 지금까지 34회째 열리고 있다는 설정이다.

 

뽑기의 최고 난이도, 우산 모양을 뽑으셨네요. "X 됐다"는 한탄이 절로 나옴. 


가장 대표적인 소재는 역시 어린시절의 놀이들을 주요 게임으로 가져온 것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설탕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게임 등 여섯 가지 게임 중에, 징검다리 건너기를 빼면 모두 국민학교 세대들에 익숙한 게임들이다. 이런 가장 한국적인 게임들이라는 소재가 세계적인 반향을 얻는다는게 신기하다. 아무래도 어린이들의 게임이라는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개인적인 기억들도 난다. 오징어게임으로 들어오게 되는 계기는 공유와의 딱지치기인데, 어렸을 때 열심히 접어서 동네 아이들과 했던 기억이 난다. 딱지는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야 힘으로 상대 딱지를 넘길 수 있다. 그런데 너무 뚱뚱하거나 울퉁불퉁 하면 잘 넘어가기 때문에 가능하면 판판하게 접어서 만들어야 한다. 가끔 표창을 날리듯 옆에서 던져서 딱지를 넘기는 고급 기술(?)을 구사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가기 전, 집 앞에서 딱지를 치고 있는데, 더운 여름날 오후 반에 가던 동네 살았던 사촌형이 중간에 한번 대신 딱지를 쳐주기도 했고, 고모인 우리 엄마에게 50원인가 달라고 해서 쮸쮸바를 사먹으며 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학생이 많아서 공립학교들은 오전반, 오후반을 운영했는데, 오후에 학교가는게 안쓰럽다고, 우리 어머니는 나를 어렵게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시기도 했다. 설탕뽑기는, 그냥 '뽑기'라고 했던 기억인데, 놀이터 같은데 가면 아저씨가 작은 천막을 치고 (바람이 불면 불이 잘 꺼져서 그랬을까). 거기 아이들이 옹기종기 들어가서 50원인가 주면, 아저씨가 능숙하게 설탕을 녹이고 소다를 첨가해 순식간에 보기 좋은 노란색의 뽑기를 만들고, 너무 세게 찍으면 모양 따라 떼기가 너무 쉬우니까 아주 '살짝' 모양을 찍어서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에 제일 흔했던 모양이 '모자' 같은데, '별' 같은 모양은 난이도가 높았던 듯. 우산 모양 같은건 본 기억이 없는데, 뽑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기훈이 우산 모양을 받고 하는 "X 됐다"라는 탄식에 바로 공감할 것이다. 모양을 맞춰서 떼어서 가져가면 아저씨가 하나를 더 해줬던가 그랬다. 그런데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이 단순한 사행심리(?)가, 아이들에게 기가막히게 먹혔다. 그냥 50원 주고 하나 사먹으면 끝일텐데, 이걸 맞춰서 하나를 더 먹어 보겠다고 온 정신을 집중해 뽑기를 떼다가, 안 되면 또 사고, 이런식으로 뽑기 하는 아저씨들은 코묻은 돈을 꽤 긁어 모았을 것 같다.

이걸 모양따라 떼는게 쉬워 보이는데, 중간에 너무 잘 깨졌다. 근데 옆에 있던 애가 이걸 정말 잘하는 사람은 '침'으로 한다고 얘기 해줬던게 기억이 난다. 근데, 그때 그게 뾰족한 '침'으로 하는건지, 아님 입 안의 '침'으로 하는건지, 아니면 뾰족한 '침'에 입안의 '침'을 뭍혀서 하는건지 정확히 이해를 못했던거 같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을 보니, 참가자에게 뾰족한 침을 나눠주고, 한미녀는 머리를 써서 라이터로 침을 달궈 뽑기에 성공하고, 기훈은 우산모양이라는 최고난이도 뽑기를 받고, 반대쪽 면을 미친듯이 핥아서 '침'으로 녹인 후 성공하는데, 결국 두개의 '침'이 다 가능했던게 아닌가 한다.
미국 아마존에서도 뽑기를 할 수 있는 키트를 10불 정도에 팔아서 한번 사서 해봤는데, 소다 때문인지 너무 많이 먹어선지, 목이 엄청 말랐다. 중국이나 유럽에서도 뽑기 바람이 불었다니, 참 신기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6가지 게임들

 

7, 80년대 생들은 이런 게임에 엄청난 향수를 느낄 것이다. 순수한 어린시절 즐겁게 놀았던 추억들. 추억 보정(시간이 지나면 과거를 좋게 기억하는)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과거에는 사람들도 더 순박했고 공동체가 살아있었으며, 사회의 경쟁이나 빈부격차도 지금 만큼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 노는거나 생활 수준이 그냥 엇비슷 했었다. 월요일이 되면, 주말에 TV에서 본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 영화를 다 같이 이야기 하기도 했고, 무슨 놀이나 장난감이 유행하면 다 한번씩은 해보는 그런 분위기. 또 웬만하면 사이좋게 어울려 노는 분위기도 있었다. 짝이 안맞거나 약하거나 어린 애들이 있으면, '깍두기'라고 해서 좀 봐주면서 같이 놀던 룰이 그런 분위기를 상징한다. 오일남과 성기훈이 맺은 '깐부'는 구슬이나 딱지를 공유하는 건데, 친구끼리는 니꺼 내꺼 없이 나눠쓰자는 그런 마인드이다.

상징적인 것은,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그런 과거의 '공동체'를 상기시키는 게임을 하면서, 이제 서로를 죽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순수했던 우리가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3. 쌍문동 성기훈 (이정재)

 

드라마의 주인공인 성기훈. 초반에 이 드라마가 약간 불편했던건 40대 남성이 처할 수 있는 거의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회사에서 노동자로 일했으나 해고를 당하고, 치킨/분식집을 하다가 망해서 빚을 떠안고, 아내랑 이혼하게 된다. 기훈이 아끼는 딸 가영이는 재혼한 엄마, 양아버지, 남동생과 살고 있고, 생일 선물 하나 제대로 못 사주고 있는데, 이제 아예 딸네가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기훈은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늙은 어머니와 살면서 대리운전을 하는데, 사채빚에 시달리고 있고, 그런데도 어머니의 돈을 훔쳐서 경마에 꼬라박고 있는, 거의 '잉여 인간,' '인간 쓰레기'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기훈은 지하철에서 만난 의문의 남자와 딱지치기를 하다가 오징어게임에 참가하지만, 참가자들의 동의로 빠져 나오는데, 어머니가 당뇨로 심각한 상황임을 알게 되고, 다시 게임에 들어간다. 그런데 게임이 진행되면서 초반의 극 찌질한 모습과는 달리, 그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부각된다. 상우가 승리만을 위해 팀을 구성할 때도, 기훈은 소외된 이들을 받아주자 하는데, 자기 돈을 소매치기 했던, 탈북자 출신 강새벽을 받아 주고, 뇌에 종양이 생기고 치매를 겪고있는 1번 할아버지 오일남을 돌봐주고, 나중에 2인1조 게임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와 파트너가 되어 준다. 상우의 수식어가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입학' 이라면, 기훈은 자신을 꼭 '쌍문동'의 성기훈이라 소개하는데, 고향과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느낌을 준다.

드라마 중반부의 중요한 반전으로 그가 우리가 잘 아는 쌍용차 사태에서 해고와 폭력을 겪은 노동자라는 설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초반에 이혼한 아내가 "내가 가영이 낳을 때도 당신은 옆에 없었다"고 비난할 때, 기훈은 동료가 내 앞에서 죽었다고 한 말도, 결국 쌍용차 사태에서 벌어진 일임을 추측할 수 있다. 딱지치기를 하는 공유가 그를 만났을 때 "전직 드래곤 모터스 조립 1팀 직원"이라 그의 과거를 말하는데, 드래곤 모터스는 당연히 쌍용 자동차를 연상시킨다. 자신이 그런 해고와 가난, 이혼의 아픔을 겪어서였을까? 그가 유독 약자들에 관심을 보이고 그들을 돌봐주는게 인상적이고, 그런 그가 최종 승자가 된다는 건 좀 비현실적이지만 의미가 있다.

물론 그도 나중에 오일남과 1대1 구슬치기에서 패배해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오일남의 치매를 이용해 구슬을 빼앗고, 최종 게임에서는 상우와 죽기 살기로 싸운다. 결국 니가 죽냐, 내가 죽냐 하는 생존의 상황에서, 맘씨 좋은 성격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적어도 끝까지 그는 인간성을 놓지는 않는다. 게임에서 최종 우승을 하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오는데,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이미 혼자 죽음을 맞은 상태였다. 드라마 첫 회 제목이 현진건의 1924년 단편 소설 "운수좋은 날"이었는데, 경마에서 돈을 딴 것도 연결되지만, 결국 어머니의 죽음은, 소설의 결말과 유사하다. '운수좋은 날' 역시, 국민학교 세대가 교과서에서 읽어서 익숙한 내용이기도 하다. 기훈은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참가자들의 목숨값이라는 생각에선지, 4백억이 넘은 엄청난 상금을 쓰지 않고 노숙자 처럼 지내는데, 오일남을 만나고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새벽과의 약속을 지켜 동생을 상우의 어머니에게 부탁한 후, 딸을 만나러 미국으로 가던 중, 누군가 다시 오징어 게임에 들어가는 걸 보고, 프론트맨에게 전화를 걸어 너희들과 싸우겠다고 선전포고를 한다.

생각해 보면 배우 이정재는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에 나올 때는, 검도 액션을 하고 대사가 없이 침묵할 때가 제일 낫다고 할 정도로 연기력 논란이 있었는데, '신세계'나 '관상' 같은 영화에서 상당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번 오징어게임에서는 매우 찌질하다가도 인간미가 있는 캐릭터를 아주 잘 연기한 것 같다.

4. 쌍문동이 낳은 수재,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입학 조상우(박해수)

기훈과 상우는 어린시절 쌍문동의 한살 차이 동네 형동생으로, 기훈은 상우를 챙겨주었고, 두 사람의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것도 비슷하다. 둘다 흙수저 출신이지만, 상우는 공부를 잘해 서울대 경영학과에 수석 입학했는데, 고객들 돈까지 써서 선물에 투자했다가 60억의 빚을 지게 된다. 빚쟁이들에 쫒기고 수배까지 당하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어머니한테는 미국 출장이라 속인 상태이다. 상우는 게임의 규칙을 잘 이해해, 조기 중단 여부를 투표에 부쳐 게임을 끝내지만,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다시 오징어 게임에 들어온다.

처음에 게임에서 풀려났을 때, 파키스탄 출신 알리에게 라면을 사주고 핸드폰도 쓰게 해주고, 안산까지 걸어간다는 그에게 차비도 건네주는 등, 겉으로는 괜찮은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되면서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데, 설탕뽑기 게임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고도, 가장 어려운 '우산모양'을 고른 기훈에게 고민하다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게임 승리를 위해 멤버들을 강한 사람을 중심으로 구성하려 한다. 결정적으로 승리를 위해 힘이 센 알리와 2인일조를 했는데, 구슬치기에 밀리자 인간적인 말로 알리를 속여 그의 구슬을 돌멩이들과 바꿔치기 해 살아남는다. 그를 믿었던 알리는 속은걸 알고 죽음을 맞는데, 드라마에서 가장 비정한 장면중 하나. 심지어 징검다리 게임에서는 나가기 주저하는 앞 참가자를 밀어버리고, 셋이 남았을 때, 피를 흘리는 새벽을 죽여 버리고, 마지막에 기훈도 죽이려 하는 등, 가장 비인간적으로 목표를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그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한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상우의 설정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국의 입시문화 자체가 엄청난 경쟁 과정이기에, 이기적으로 살지 않으면 통과하기 힘들다. 결국 청소년기에 입시지옥, 학벌중심의 규칙에 가장 잘 적응해서 명문대를 들어갔고, 승자독식, 위계질서의 문화를 체화한 사람이기에, 시스템이 부과한 규칙에 잘 적응해 승자가 되고, 그것을 공정이라 믿는 성향이 강하다. 동시에 시스템의 불공정성이나, 자신에게 주어졌던 유리한 상황들, 타인의 노력과 도움 등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만을 강조한다. 자신의 형편이 좋을 때는 체면을 지키며 아량을 베풀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인정사정 없이,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고, 패배자들은 하찮게 여기며, 목표를 위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돌아보면 수재, 천재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용인되고, 서울대 갔다는 것이 마치 무슨 암행어사 마패같은 경탄을 자아내던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인간미가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는게 오히려 이상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엘리트들이 만들고 유지해 온 것이 우리 사회 수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아닌가 싶기도. 우리 사회 적폐의 핵심에, 가장 공부를 잘한 검사, 판사, 변호사들이 있다는 것. 학생 때는 모범생의 모습으로 공부만 하고 살다가, 돈과 권력과 쾌락의 기회 앞에서, 주저 없이 부패에 영합해 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상우와 오버랩 된다. 문과에 법대가 있으면 이과에는 의대가 있다. 최근 부패하고 타락한 의사들이 보이는 충격적인 모습들도 유사한 현상이 아닐까.

예전에 서울대 생들의 상당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일부는 당장 입원해야 할 수준이라는 말을 들은적 있다. 서울대를 다녔던 개인적인 기억을 돌아봐도, 대학시절에 다들 공부잘하는 애들만 모아 놓으니, 차갑고 이기적인 똘똘이 스머프같은 친구들이 많았던 기억. 물론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기억할 수도 있지만 . . . 생각해보면, 한국사회의 학력주의에 중고등학교 때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은연중에 학벌로 사람을 판단했었던것 같다. 인간의 가치를 어떤 외적인 조건으로 차별 하는게 얼마나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일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상우가 주장하는 논리는, 20대 사이에서 통용되는 '공정'이라는 가치와도 연결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같은, 성과에 의한 차별이 곧 '공정'이라는 믿음. 국힘당의 이준석 같은 인물이 이런 가치를 대변하고 있는데,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같은 책은 이를 비판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스템과 게임의 규칙이 불공정할 수 있다는 점, 성공을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 외에도 사회적인 요인들과 타인의 노력, 출발점의 차이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논리를 설파하는 상우의 운명도 결국 다르지 않은 것은, 어쩌면 결국 '개천 용의 신화' 자체도 끝난버린 현실을 반영하는 듯 하다. 결국 서울대를 갔어도, 게임에서 몸부림치고 올라가도, 그는 개미지옥에서 흙수저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예전에 '양자물리학'이라는 영화에서 박해수 배우를 처음 보고 인상 깊었는데, 연극무대에서 다져진 연기력과 발음이 매우 뛰어니다.

게임에서 지면 죽음을 당하는 충격적인 상황이지만, "밖이라고 다르지 않아. 심지어 밖은 (아예 벗어날 가능성 자체가 없는) 지옥이야," 이런 표현이 반복되는데, 드라마 '미생'에서 나온 표현과도 유사하다. 즉 우리 사회의 모습이 오징어게임이라는 메시지. 조폭 장덕수가 사람을 때려죽이자, 기훈은 "사람이 죽었어요"라고 진행요원들에게 호소하는데, 살인도 게임의 일부고, 경쟁자가 적어지면 자기 몫의 상금이 더 커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천정에 매달린 돈다발들을 보며 사람들은 인간성을 상실해 간다.

5. 개성있는 조연들

 

 

드라마는 탈북자 출신인 강새벽(정호연)의 이야기, 새벽을 데리고 있었던 악질 조폭 장덕수(허성태), 창피함을 모르고 생존을 위해 여기저기 붙었다가 나중에 장덕수에 대한 배신감으로 복수를 택하는 한미녀(김주령), 파키스탄 출신 외국인 노동자 알리 압둘(아누팜 트리파티) 등 개성있는 조연들이 나온다. 지영(이유미)은 교도소에서 나온 어려보이는 참가자인데, 조금 너무 전형적인 캐릭터로 보이는 광신도 개독교인이 줄다리기를 이긴 후, 하나님이 도와줘서 살았다며 기도를 하자, 유난하게 그의 말에 각을 세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영의 아버지는 아내를 학대하고 친딸인 자신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목사였다. 아버지는 엄마까지 죽였고, 결국 자신은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다녀온 것. 이는 실제로 있었던 몇가지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위선적인 목사 아버지에 대한 지영의 반감이, 팀의 광신자에게 이어진 것임을 추측 할 수 있다. 지영은 당연히 신앙을 버린듯한 모습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타인을 위해 희생적인 죽음을 맞는 유일한 캐릭터이다. 그녀는 자기를 팀으로 데려와준 새벽과 인간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자신은 살 이유가 없지만, 새벽은 가족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기에 살 이유가 있다며 대신 죽음을 선택한다. 몇몇 목사들은 이런 설정이 불편한 모양인데, 목사들이 직군별 성범죄 1, 2위를 달린다는 사실을 먼저 부끄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목사들과 교회를 왜 이렇게 보고 있는지 부터 깊이 성찰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오징어 게임은 VIP라 불리는 이들의 유흥을 위해 조직된 것으로 보이는데, 기훈이 경마장에서 말에 돈을 걸고 도박을 하듯, 이들은 참가자들이 생명을 걸고 경쟁하는 것을 관람하며 돈을 걸고 도박을 한다. 초국적 엘리트들은 주로 백인 남성들이고 중국인도 한명 포함되어 있다. 사실 좀 너무 전형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이들은 엄청난 부를 갖고 온갖 쾌락을 누려온 이들로, 오일남이 말하듯 웬만한 자극에는 감흥을 못느끼는 존재들이다. 자신들이 쓴 짐승의 가면처럼, 인간성이 거의 사라지고 괴물화 된 존재들이라 하겠다.

 

초국적 엘리트인 VIP 들이 쓰는 동물 모양의 가면들

 

6. 오일남(오영수)

 


막판 주요 반전인물. 뇌종양이 있고 치매로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1번 할아버지. 힘도 없고 소외될 수 있는 그를 기훈이 챙겨주고 팀에 넣어준다. 오일남의 이름은 '오징어게임의 일번 남자'를 줄인 말이 아닌가 추측하는 분도 있었음. 기훈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기훈 어머니와 같은 오씨라는 점에서, 기훈의 외삼촌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고. 부분적으로 나온 대사들을 보면 그는 평범한 배경을 가지고, 구슬게임을 하는 옛날 동네 골목 같은데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았던 과거가 있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엄청난 부를 갖게 되고 지금은 가족이 없이 살면서 오징어게임의 개최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게임 장소는 섬이지만, 마취된 이들이 풀려나는 곳, 그리고 기훈이 일남을 찾아가는 곳도 금융의 중심 여의도인데, 마지막에 자신은 '돈을 굴리는 사람'이라 설명한다. 돈이 너무 많아지면 재미있는게 없어진다고 설명하는데, 그는 보는 것보다 실제 참여하는게 더 재미있다는 생각, 그리고 인간성이 살아있었던 과거를 다시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참가자로 위장해서 들어온 거였다. 자세히 보면, 무궁화꽃 게임이나 줄다리기 등 게임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는데, 오일남 혼자 웃고 있다. 그는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기훈에게서 과거의 추억과 잊어버린 인간성을 다시 느낀 듯 하다. 죽기전 크리스마스 이브날 기훈을 불러 얼어죽어가는 길거리의 노숙자를 보며,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고 물으며 자신의 배경을 단편적으로 이야기 하는데, 일남의 과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마 시즌2에서 다뤄질 것 같다.

오영수 배우는 연극에서 잔뼈가 굵은 원로 배우인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같은 영화나 선덕여왕 같은 드라마에 주로 주로 머리가 짦은 고승 역할로 출연했다고 하는데, 연기가 후덜덜한 수준이다. 구슬따먹기 게임을 하면서 치매 연기를 하다가, 순간적으로 "그럼 자네가 나를 속이고 구슬을 가져간 것은 말이 되고?"라고 묻는 장면의 카리스마는 소름 끼친다.

7. 프론트맨(이병헌)


막판 주요 반전인물 두번째. 주최자인 일남이 게임에 들어가고, 실질적으로 게임을 주관하는데, 늘 가면을 쓰고 있다. 규칙을 어기면 진행요원도 바로 즉결처분 해버리고, 영어에도 능숙해 초국적 엘리트들을 접대한다. 마지막에 가면을 벗을때, 배우가 '이병헌'이라는 사실 자체가 반전이기도 한데, 굳이 말하면 지영이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이라는 영화 '내부자들' 대사를 인용하는 것도 이병헌에 대한 복선이라 하겠다. 더 큰 반전은, 형을 찾으러 게임에 들어온 경찰 황준호(위하준)이 찾던 형, 황인호가 바로 바로 '프론트맨'이었던 것.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동생 황준호가 발견한 서류에 따르면 형인 황인호가 28회 게임인 2015년에 참가해 우승자가 되었었다는 사실이다. 막판에 황인호는 동생을 살리려고 설득하다가 총까지 맞고 결국 동생의 어깨를 쏴서 절벽에서 떨어뜨리는데, "형이, 왜..."라는 동생의 말에 갈등하는 표정을 보면 최소한의 인간성은 남아 있는 듯.

결국 시즌2에 대한 큰 떡밥은, 과연 경찰간부였던 황인호가 왜 오징어게임에 참가해 우승자가 되었고, 또한 지금은 왜 프론트맨으로 일하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굳이 추측해 보면, 어떤 약점을 잡혀서 협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 아니면 거악인 오징어게임 주최자들을 잡기 위해 위장 침입해 있을 가능성 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동생 황준호도 죽지 않았을 것 같고, 시즌2에서는 기훈과 황준호가 힘을 합쳐, 오징어게임의 주최자들과 맞서는 구도가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8. 마치며

중간 중간 잔혹하고 보기 힘든 내용도 있었지만, 매우 디테일한 설정들과 사회비판적 메시지들로 빨려 들어가듯 정주행한, 오징어게임 시즌1. 현재 프랑스에서 넷플릭스 체험관을 열었는데 약 3천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그 앞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뽑기를 한다니 참 신기한 상황이다. 미국의 지미 팰런 쇼에 오징어게임의 참가자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BTS와 기생충에 이어 세계적인 반향을 얻고 있는 이 드라마가 다음 시즌도 잘 되면 좋겠고, 앞으로도 한국형 컨텐츠가 세계에 의미있는 메시지들을 던져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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