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매트릭스4 리저렉션 (2021): 오리지널 3부작 다시보기 + 4편의 추억마케팅

2021년 12월 이인엽 

1. 무려 18년 만에 돌아온 매트릭스  


매트릭스 3편 (2003)이 나온 지 무려 18년 만에 매트릭스 4편이 돌아왔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워쇼스키 자매는, 사실 매트릭스 이후 크게 흥행한 영화가 없다(원래 형제였는데, 매트릭스 트릴로지를 찍고 둘다 성전환수술을 해서 자매가 됨. 4편은 라나 워쇼스키만 감독). 브이 포 벤데타(2005)는 정치적인 메시지는 뛰어났지만 아무래도 매트릭스 수준의 액션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외면 받은 면이 있었고, 이 후 작품들은 모두 악평 일색이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감독이 잘 안 풀리다가, 과거 명성에 기댄 재탕을 해서 성공한 예가 사실 별로 없다. 하지만 매트릭스가 워낙 기념비 적인 작품이고, 키아누 리브스와 캐리앤 모스가 다시 출연한다는 것 만으로도 볼만한 가치는 있겠다 싶었다. 

 

2. 매트릭스 삼부작의 추억 (1999~2003)

​매트릭스 1 편(1999)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사이버 펑크의 전통과 공각기동대나 아키라 같은 재패니메이션, 그리고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같은 철학, 세기 말의 Y2K 공포나 인터넷과 온라인 세계에 대한 호기심, 불릿 타임이라 부르는 총알을 피하는 슬로모션과 360도로 돌아가는 카메라가 보여준 트리니티의 발차기 액션까지, 다양한 문화적 흐름이 매트릭스라는 작품에 집약 되었다. 무엇보다 인간은 매트릭스에 의해 사육되고 착취당하고 있고, 진실과 해방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전복적인 메시지 까지. 매트릭스 1편이 끝나면서 나오는 'Rage against the machine'의 음악 'Wake up’은 가사에서 체제 비판적 메시지를 설파하는데, 마틴 루터 킹과 말콤X 처럼 체제에 도전한 인물들과, 에드가 후버 FBI 국장으로 대표되는 지배 체제가 도전을 분쇄하는 과정을 이야기 하면서, 대중에게 깨어나라고(Wake up) 목놓아 외친다. 1991년 결성된 4인조 랩 메탈 밴드인 Rage against the machine은 1992년의 데뷰앨범에 실린 이 곡, Wake up을 비롯해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스트적인 성격을 곡들을 통해 정치적인 메시지를 설파해 왔는데, 팀 이름이 매트릭스의 주제와도 통한다. 
트리니티가 과거 IRS 를 해킹한 전설적인 해커라고 나오는데, 현대 신용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공격은, 파이트 클럽에서 신용카드 회사 건물을 줄줄이 폭파시키거나, 드라마 미스터 로봇에서 신용 기록(빚)을 없애서 사회를 리셋 하겠다는 생각등과도 연결된다. 

Rage Aainst the Machine의 노래 Wake up (영어 가사 포함)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기독교적 메타포가 영화의 주제에 강하게 버무려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세례 요한과 같은 모피어스, 삼위일체라는 뜻의 트리니티, 느부갓네살왕의 이름을 딴 네부카드네자르 호, 사이퍼가 배신 하는 장면은 가룟 유다를 떠올렸다. 메시야를 상징하는 네오가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다가, 자유의지에 의한 선책, 그리고 자신의 희생으로 오히려 메시야임을 증명하고 각성해서 하늘로 날아오르며, System Failure라는 메시지로 매트릭스에 균열을 일으키는 점 등에 개인적으로 열광 했었다. 진지하게 영화평이라는 걸 써본 최초의 영화들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 2000년대 초반에 쓴 영화평들이 이 블로그 안에 아직도 남아있다. 


반면 2편(리로디드, 2003년 5월)과 3편(레볼루션, 2003년 11월)으로 가면서 영화는 구조를 바꿔 버리는데, 선형적인 기독교 세계관에서 순환적인 힌두교적 세계관으로 변형(진화)된다. 2편에서는 오라클의 예언이나 네오의 자유의지, 메시야성 등을 모두 부정하는데, 결국은 1편의 완결적이고 선형적인 기독교 세계관 자체가 하나의 '매트릭스' 였다고 치부되고, 힌두교가 그것을 초월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3편에서는 힌두교의 상징이 대거 등장하는데, 네오가 자신을 희생시킬 때는 기독교의 십자가가 힌두교 상징 안에 들어있다가 녹아 없어지기도 하고, 네오가 매트릭스에 찾아가서 뱀 머리를 한 침대에 눕는 장면은, 뱀 머리를 후광처럼 두르고 있는 비슈누신을 상징한다. 

 


힌두교를 대표하는 것은 3대 신인데, 창조신인 '브라흐마'는 우주를 생성하되 개입하지 않으며, '비슈누'는 우주를 유지하고 보호하며, '시바'는 우주를 소멸시킨다. 비슈누는 파란색의 띄고 있고 아바타라는 자신의 분신으로 세상에 개입하는데(나부 행성에 사는 파란 색의 종족이 나오는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도 여기에서 따옴), 세상이 파괴되고 재생되는 10번의 주기 동안 이미 9번 내려와 세상을 구했고, 10번째는 칼리 아바타라는 이름으로 온다고 되어 있다.  

매트릭스 3편에서 스미스 요원과 마지막 대결을 펼칠 때에는 합창으로 장엄한 노래가 울려퍼지는데, 그 가사가 바로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를 가사로 한 합창곡인 것. 3편의 엔딩 OST곡인 '나브라스'에는 노골적으로 "비슈누여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시요"라는 가사가 나온다. 

 


​1편에서는 네오의 선택과 자유의지가 강조되는데, 이 또한 결정론적 세계관으로 대체된다. 오라클이 예언을 통해 네오를 돕는 줄 알았는데, 매트릭스는 아키텍트와 오라클 두 사람의 작품이었고, 결국 네오의 선택은 환상이었고, 프로그램이 정해준 길을 따라 온 것이었다. 위에 언급한 힌두교의 윤회론적 순환론적 세계관과 유사하게, 매트릭스의 창조자인 아키텍트는 네오와 시온은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여섯번 째이며, 그 때마다 과거의 네오는 사랑과 시온의 생존 사이에서 후자를 결정했고, 시스템이 리셋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결국 네오와 시온의 존재도, 전체 시스템의 유지를 위한 장치에 불과했던 것. 이와 관련해서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메로빈지언'은 과거의 네오 중 한명이었다는 설정. 

​아키텍트와 네오의 대화 (Ehglish)

 

여담으로 '메로빈지언'이란 이름은,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의 후예라는 뜻인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성혈과 성배(다빈치 코드는 이 책을 표절해 대중화 시킨 것)' 등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살아남아 프랑스로 도망쳤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살다 죽었으며, 그 후손이 메로빙거 왕조가 되었다는 황당한 음모론이 있는데, 이를 따 온 듯. 결국 메로빈지언은 과거에 존재했던 네오(메시야) 중 하나였다는 설정인데, 그는 자유의지를 믿는 모피어스와 네오를 비웃으며 인과율/결정론을 설파하고, 이제 아무런 믿음이 없는 그는 타락한 색마(?)가 되어있다. 이에 따르면 페르세포네(모니카 벨루치)는 과거의 트리니티 였을 수 있는데, 그녀가 네오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키스를 해달라고 조르는 것도 이런 배경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꼬다 보니 1편의 설정들이 길을 잃고 제대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1편의 적은 인간을 억압하며 착취하는 매트릭스였는데, 그 시스템의 일부였던 스미스 요원이 매트릭스에서 독립해 새로운 위협 세력이 되고, 스미스는 매트릭스와 시온을 둘다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클론 군단'이 되어 나타난다. 그러자 엉뚱하게도 네오가 매트릭스를 찾아가 스미스를 없애는 대신, 시온을 살려달라는 '빅딜'을 한다. 

2편에서 차가운 과학자 같은(프로이드를 연상시킨다)이미지로 나왔던 아키텍트는, 3편에 마음씨 좋은 노 신사처럼 등장해, 너무나 쉽게 '이제 매트릭스에 갇힌 인간들을 풀어주겠다'고 한다. 1편에서 기계들이 인간을 건전지로 만든 건, 오염으로 태양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고 그래서 자신의 생존이 불가능하게 되어서 였는데, 그새 대체 에너지라도 개발 했던 건지? 인간을 건전지로 만들기 위해 매트릭스를 만들어 인간을 속이고 사육했고, 그걸 폭로 하는 자유인들의 마지막 거점인 시온을 멸종 시키려고 죽을힘을 다했던 건 어떻게 된 건가? 

​굳이 3부작의 의미를 부여하자면, 메타 인지나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여러가지 생각 거리를 던져 주었다는 점이라 하겠다. 감독은 힌두교를 기독교를 초월하는 것 처럼 제시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에서는, 힌두교야 말로 무지막지한 억겁의 논리로 인간을 압도하는 결정론적 세계관, 무자비한 매트릭스가 되기 쉽다는 느낌이다. 역사적으로 힌두교 자체가 외부의 지배자인 아리안족이 피지배 계층(인도의 원주민)을 지배하는 계급구조를 정당화하고 영속화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경이 있다. 윤회설과 카르마의 논리는, 수많은 민중에게 현실의 모순과 착취, 계급사회에 순응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현실의 기독교 역시 또 하나의 매트릭스가 되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다른 고대 종교들과 비교해, 기독교가 가진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강조와, 이에 기반한 희망과 변혁의 메시지는 상당한 차별성을 가진다는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상징주의와 흑백논리에 집착하는 기독교인들은, 사실 기독교가 가진 가치 자체에 대해서도 별 이해가 없이, "어머 매트릭스가 힌두교 영화였어? 악마의 영화였구만" 정도의 유치한 반응에 그치지 않을까 싶지만..

2편과 3편은 액션과 스케일의 규모가 더 커졌는데, 내용에 공감이 안 가니 사실 1편보다 훨씬 별로 였다. 네오가 스미스 요원과 폭풍 속에서 죽자 살자 싸우는 장면은 좀 지루했고, 지겹도록 몰려드는 센티넬과 기갑보병(APU)과의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은, 스펙타클 하긴 하지만 좀 피곤한 느낌이었다. 


1편은 친한 친구와 가서 봤는데, 영화에 너무 압도되고 열광해서, 이것 저것 메모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2편은 내용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나오자 마자 조조로 가서 봤었고. 현실에서도 네오가 초능력을 쓸 수 있게 되자, 현실도 하나의 매트릭스고 수직적으로 다층적으로 구성된 방식으로 세계관이 진화하려나 예측을 해 보았었다. 그런데 영화는 시간적/선형적으로, 즉 여러 번의 시온과 네오의 선택이 있었다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3편은 연애를 시작할 때 쯤에 아내와 가서 봤었던 기억이 나는데, 사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별로였지만 행복한 기분으로 영화를 보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매트릭스 트릴로지는 허망하게 끝났지만, 내 인생엔 행복이 시작된다, 이런 마음이었던 듯.  

사실 이미 트릴로지도 하향세로 끝났는데, 4편을 굳이 만들다니, 역시 하한가를 치고 있는 감독이, 과거의 추억 팔이로 마지막 수익을 짜내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제발, 더 이상 망치지 말아줘..." 속으로 이렇게 부탁을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영화 개봉 후 평가는 대체로 졸작이라는 분위기. 

어쨌든,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봤고, 그래서인지 생각만큼 그리 나쁘진 않았다. 영화 예고편은 꽤 잘 만들었는데, 가장 스릴 있는 장면만 모아 놓았고, 대체로 영화의 흐름은, 전작들처럼 긴박하게 짜여진 느낌이 없이, 중간 중간 늘어지는 장면이 많다. 아무래도 예전 만큼 돈을 못 들였는지, 볼거리나 액션도 아쉽고. 

(이후 스포일러 있음) 

3. 이제 매트릭스 4편


제일 반가운 건, 나이든 네오와 트리니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 이것 만으로도 상당한 팬 서비스이긴 했다. 반면 원년 멤버인 모피어스의 로렌스 피시번과 스미스 역의 휴고 위빙이 빠져서 아쉬웠다. 새로운 모피어스는 카리스마도 약하고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얼빵한 느낌. 스미스도 새로운 배우가 맡았는데, 네오와 대립하다가, 난데없이 나중에 네오를 도와 정신분석가를 공격하는데, 3편에서 그 난리 부르스를 추고 스미스와 대결했던 건 대체 뭐란 말인가. 과거에 네오가 매트릭스와 손잡고 스미스를 타도했다면, 이제 스미스가 네오와 손잡고 매트릭스를 공격하게 된 셈인데, 개연성이나 설명조차 없고 그냥 매우 뜬금없는 설정. 

2편에서 나왔던 모피어스의 옛 연인이자 시온 저항군의 리더 중 하나였던 니오베(제다 핑켈 스미스)는 나이 먹은 할머니가 되어 나왔는데, 굳이 왜 나왔나 잘 모르겠고 분장이나 설정이 어색한 느낌. 과거 니오베는 네오에게 자기의 함선을 빌려주는 등 모험을 했는데, 이번에는 보수화 되어 네오를 감옥에 가두는 등, 매사에 몸을 사리고 제동을 거는 역할이다. 새로 등장한 벅스(제시카 헨윅)의 비중이 큰데, 보수화 된 니오베와 대립하며 모험을 하는 모습은 세대간의 대립을 그리는 듯.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프로그램으로 어린 소녀였던 사티도 자라서 성인이 되었고 네오를 돕는데, 최근 아주 흥미있게 본 인도영화 ‘화이트 타이거’에서 나왔던 프리앙카 초프라가 연기했다. 요즘 잘나가는 배우인 듯. 사티는 매트릭스 안에서 네오가 자주 가는 가게의 뿔테안경을 쓴 종업원으로 가장해 네오를 관찰해 왔는데,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이 매트릭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메로빈지언은 망명자라고 불리는 부랑자의 리더로 다시 등장해, 과거가 더 좋았다며 네오와 매트릭스 영화를 비난하는 발언을 퍼붓는다. 

전반적으로 매트릭스에는 흑인, 라티노, 동양인 등, 다양한 인종적 배경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점은 인상적이다.벅스로 출연한 제시카 헨윅은 중국계와 영국계 혼혈이라고.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키아누 리브스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하와이 원주민, 중국 등 다양한 인종이 섞인 혼혈인이기도 하다. 


주요 스토리는 “만일 네오가 빨간 약을 먹지 않고 파란 약을 선택해 일반인으로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한다. 사실 1~3편의 사건이 벌어진 후, 네오와 트리니티 둘다 죽었는데, 매트릭스는 그 둘을 살려냈고, 다시 매트릭스에 집어 넣어 실제 신체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 사람이 합쳐지면 매트릭스가 끝나는데, 둘을 떼어 놓고 네오를 괴롭히면 감정적 반응에서 더 강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설정. 

이제  두 사람은 과거의 기억이 희미해진 채, 네오는 게임 디자이너인 토마스 앤더슨으로, 트리니티는 결혼해서 티파니라는 이름으로 남편과 두 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그나마 트리니티는 오토바이 광이라는 것이 과거의 기억의 잔재라는 설정. 트리니티는 참 독특한 캐릭터였는데, 온몸을 감싸는 가죽 의상을 입어도 천박한 느낌이 들지 않았고, 점프해서 발차기 하는 장면과 오토바이 주행신 등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동시에, 네오와의 지고 지순한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네오는 자신의 기억을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상상이라 생각해 매트릭스 1~3의 내용을 게임으로 만들어 성공하는데, 웃기게도 스미스 요원(조나단 그로프)를 상사로 두고 있고, 스미스는 모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에서 매트릭스 게임 4편을 만들라고 했다고 독촉한다. 이 장면이나, 매트릭스4 개발팀원들이 매트릭스 시리즈 이야기를 하는 장면, 네오와 매트릭스를 까대는 메로빈지언의 대사 등, 영화 내에서 영화 시리즈를 논하는 메타 발언 (창작물의 인물들이 작품을 이야기하거나, 독자나 시청자에게 말하는 대화)이 많이 나온다. 매트릭스 자체가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는 걸 이용한 감독의 유머. 어쩌면 감독이 4편을 만들면서 느끼는 워너브라더스와의 갈등을 스미스와 네오의 관계로 돌려까기 했을 가능성도 있다. 

 


과거 기억에 대한 혼동은, 자신의 정신적 문제라 생각하고, 상담사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데, 정신 분석가(닐 패트릭 해리스)는 파란색 안경을 끼고, 네오에게 파란색 알약을 계속 처방해 주고 있다.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 알약을 계속 선택하면서 현실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설정. 

3편 이후 시온은 붕괴되었지만 니오베(제다 핑켓 스미스)를 중심으로 IO라는 새로운 곳을 기점으로 저항군이 활동하고 있는데, 3편에서의 네오의 희생 이후, 일부 기계들이 시온의 저항군 쪽으로 돌아서서 이들을 돕고 있기도 하다. 저항군의 일원인 벅스(제시카 헨윅)가 먼저 모피어스 (야히야 압둘 마틴2세)를 깨우고, 두 사람은 네오를 깨어나게 해서, 네오는 자신의 기억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트리니티를 매트릭스에서 구해내려 노력하는게 주요 스토리. 
 


이번 편에서 비중이 가장 큰 인물은 벅스(Bugs)인데, 매트릭스 1편 초반에 나온 것 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 문신을 팔에 하고 있는데, 네오를 진실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이름은 프로그램의 오류를 말하는 버그(Bug)를 뜻하기도 하고, 미국 만화의 유명한 토끼 캐릭터인 벅스 버니(Bugs Bunny)도 연상시킨다. 그녀는 과거 유리창 청소부로 일하다가 네오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려다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각성했다고 소개된다. 네오를 구한 벅스가 타는 함선의 이름은 므네모시네인데,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기억의 신의 이름이다. 죽은 사람이 '레테' 강의 물을 마시면 환생할 때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잃고, 반면 '므네모시네'의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하는데, 4편에서 네오가 잊었던 자신의 기억을 찾게 되는 것을 의미 한다. 

영화 뒷 이야기를 찾아보면 1편에서도 네오가 상사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유리창 청소부가 나오는데, 거울과 유리창 등은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타포이고, 이 유리창 청소부 역에 감독인 워쇼스키가 출연하려다 안전 문제로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름 추측 하자면, 이번에 나온 벅스는 워쇼스키 감독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한다. 유리창 청소부 출신이었다는 것도 그렇고, 트렌스젠더로 성전환수술을 하고 요란한 머리를 한 감독 처럼, 벅스도 화려한 머리 염색을 하고, 다소 중성적/레즈비언스러운 느낌을 준다. 

 


알고 보니 바로 정신분석가(Analyst, 우리에게는 드라마 '천재소년 두기'로 잘 알려진 배우인 닐 패트릭 해리스)가 아키텍트에 이어 매트릭스를 통제하는 인물이었고, 그는 시간을 초월해 네오와 트리니티를 위협한다. 네오가 마지막으로 트리니티의 선택에 모든 걸 맡기겠다고 하자, 정신분석가는 이를 받아들이고, 트리니티는 빨간 약을 선택해 두 사람은 탈출한다. 과거 매트릭스의 프로그램 부부에게서 탄생한 인도인 여자아이 사티는 자라서 네오가 트리니티를 구해주는 걸 돕는다.


4. 나를 먹어주는 추억 마케팅 

​전반적으로 매트릭스의 철학은 사라진 편이고, 나이든 네오와 트리니티의 모습과 선택에 집중한 스토리이다. 나이가 든 탓인지, 개인적으로 이런 추억 마케팅이 꽤 먹히는 느낌이었다. 20대 매트릭스를 접하고 40되가 되서 다시 보게 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매트릭스가 보여준 혁명성에 열광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희망을 가졌던 20대의 기억. 사실 네오와 트리니티가 나이 들어 일상을 살고 있듯이, 나나 많은 관객들도 그럴 것이다. 파란 색 알약을 먹으며 일상을 버텨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데 현실의 무게 속에 잊고 있었던 가능성과 변화에 대한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매트릭스 안에서 쫒기던 두 사람은 네오의 장풍(?)과 방탄 능력으로 버텨보지만 한계가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네오의 비행 능력은 발휘되지 못한다. 이제 매트릭스는 사람들을 ‘봇’으로 만들어 폭탄처럼 공격하고, 좀비처럼 몰려든다. 매트릭스가 좀비 영화(?)가 되다니. 끄응…차라리 코로나19 같은 소재를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결국 궁지에 몰린 두 사람은 빌딩에서 몸을 던지는데, 이제 트리니티가 날기 시작한다. 결국 네오에 이어, 트리니티도 각성(?)해서 두 사람은 커플 메시야(?)가 된 것. 정신분석가에게 찾아가 그를 두들겨 패고 이제 매트릭스를 마음대로 바꿀 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날아 오르는 두 사람. 


물론 정신분석가는 회의적이다. 그는 요즘 많이 나오는 ‘sheeple’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sheep + people 로 만들어진 조어로, 순한 양떼같은 사람들, 즉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받아들이는 순응적인 이들을 말한다. 한국 식으로 말하면 ‘민중은 개돼지’ 정도가 될 듯. 그는 사람들은 sheeple이라 통제와 안정을 원한다며, 매트릭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바꿀 테면 마음껏 해보라고 한다 (사실 sheeple 은 미국에서 요즘 백신거부자, 마스크 반대자들이 상대편을 비난하며 많이 쓰는 추세라 좀 기분 나쁜 용어 긴 하다). 

다소 황당한 결론이지만, 이런 얼토 당토 않게 희망찬 결론이 의외로 그리 나쁘진 않았다. 마지막에 트리니티는 악당인 정신분석가에게 찾아가 고마운 게 있다고 하는데, 바로 또 다른 기회(Another chance)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 결국은 중년을 살고 있는 네오와 트리니티가 다시 한번, 편안하지만 진실을 외면한 일상이 아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여주는데, 이런 메시지는 현실적이든 아니든, 나처럼 나이가 든 오리지날 매트릭스 팬들에게는 약간의 울림이 있을 것 같다. 


요즘 한국 정치든, 미국 상황이든, 코로나 시국이든, 별 희망이 안보이고 답답한 상황이다. 그래선지, 졸작이 되어버린 매트릭스 4편의 어이없는 해피 엔딩이 아이러니하게도 좀 위로가 된 달까? 

추억팔이로 마지막 한방울을 더 빨아먹었으니, 아마도 더 이상 매트릭스 시리즈는 없지 않을까 싶다. 재패니메이션을 비롯, 일본 문화가 맛이 간 지도 오래 되었고, 헐리우드도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즘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작품들은 기생충, 오징어게임이나 지옥 같은 한국의 문화적 성과물이라는 것에 참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쨌든, 하나의 문화현상으로서나, 개인적으로도 이런 저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트릭스 시리즈에 늦은 작별을 고한다. 우리의 인생에, 그리고 암울한 인류의 현실에도 “Another chance” 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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