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드라마 파친코 (Pachinko, 2022) 이야기1
: 한 재일교포 여성의 가족 이야기가 세계를 울리다

2022년 4월 30일 이인엽


1. 약자가 갖는 내면의 힘에 대한 이야기

8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파친코 시즌 1을 아내와 함께 정주행 했다.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닌데, 간만에 한편, 한편, 애착을 가지고 감상했다. 생각해 보면, 일제시대 역사나, 자이니치 들의 이야기는 책과 미디어를 통해 많이 접해왔었고, 이 드라마의 스토리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파친코는 왜 이렇게 특별하게 다가왔을까?

먼저는 약해 보이는 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해서, 내면의 힘으로 엄혹한 시대의 가난과 차별을 뚫고 가족의 역사를 일구어 나간 이야기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3~4대에 걸친 이민자의 가족사를 시간을 넘나드는 플래시 백으로 풀어나간 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코폴라 감독의 유명한 영화 '대부 3부작 (The Godfather Trilogy, 1972, 1974, 1990)'과 유사하면서도 상당히 대조된다. 
이태리 이민자 가족의 마피아의 서사를 그린 대부 역시, 철저한 가족주의를 보여준다. 그런데 가족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마이클 꼴리오네는 배신과 살인도 서슴지 않고, 그 와중에 수많은 적들을 만들며, 나중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친형도 죽여버리고, 냉혈한이 되어가는 그에게 질린 아내에게 이혼 당하며, 마지막엔 적들의 암살 시도로 가장 사랑했던 딸이 죽게 되고, 늙은 그가 외로운 죽음을 맞으며 영화는 끝난다. 가족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돈과 폭력을 추구하다, 결국 더 큰 위협을 만들고 가족을 파괴하게 되는 것. 많은 미국인 들이 대부를 가장 미국적인 서사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이민자의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 자체가 폭력을 통한 구원을 추구하면서 수많은 적을 만들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갈등과 폭력이 악순환 되는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유사한 예로, 헐리우드의 수많은 슈퍼 히어로 영화들도, ‘백인 남성 메시야’가 폭력을 통해 세상을 구원한다는, 거짓된 신화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반면 파친코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식민지 출신 조선의 여인 선자가,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과 가르침으로 생겨난 내면의 힘으로, 시대의 어둠을 뚫고 자신의 지조와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남아 가족의 삶을 일구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약함 속의 강함, 내면의 힘, 약자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이 이야기가 큰 감동을 주는 것.

예전에 아내가, 중국을 대표하는 대하 소설인 ‘삼국지’나 일본을 대표하는 ‘대망 (도쿠가와 이에아스의 통일 과정을 그린)’ 과 비교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여성 작가가 쓴 ‘토지’라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 해서 공감한 적이 있었다. 여성성은 부재하고 마초같은 남성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힘과 전략'만이 있는 이야기들에 비해, 토지는 여성 주인공이 내면의 힘과 지조를 가지고 식민지 시대를 뚫고 운명을 개척하는 이야기다. 파친코 역시 '토지'를 떠올리게 한다. 

2. ‘소통’으로 탄생한 ‘소통’에 대한 이야기

이민진 작가와 소설 표지

파친코가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작품의 내용이 ‘소통’을 주제로 하고, 작품의 제작 과정 자체가 수많은 ‘소통’을 통해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파친코는 미국에 사는 교포인 이민진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역시 교포인 수 휴가 각본을, 저스틴 전과 코고나가가 감독을 맡았으며, 미국의 애플티비가 제작했다. 영화 ‘미나리’가 미국 영화 듯이, 파친코도 기본적으로 미국 드라마이지만, 일본으로 이주해 가난과 차별속에 삶을 이어간 자이니치(재일교포)들의 삶과, 미국으로 이민 온 재미교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영어, 한국어, 일본어 세가지 언어가 사용되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 그렇게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가 세계적인 감동을 일으켰다는 것이 주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컸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음식, 날씨, 계절, 절기 등이 나의 리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서사, 가치관, 세계관에도 거부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오락영화라도,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인 사고, 백인 남성 주류의 시각으로 버무려진 것들은 좀처럼 몰입하기 힘들고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오랜만에 가치관과 생각의 파동이 편안하게 맞아 들어가는 파친코를 보면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트럼프의 시대를 지나면서, 깊은 공포와 혐오를 경험했다. 선동 정치인이 이민자들, 소수자들을 악마화 하고, 백인 중산층은 자신들의 불만을 약자들에게 투사하고, 백인 우월주의가 판을 치고, 코로나 이후에는 아시안 혐오 범죄가 증가하며, 정치적으로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폭도가 의회를 공격하는 등 암울한 시간이었다. 완고하고 단순, 무지, 독단적인의 태도로 인종적 문화적 획일성, 위계질서를 고집하는 이들이 조직화 되고 주류로 부상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더 이상 소통과 이해 공감이 불가능한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물론 길게 보면 세상은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듯이 작용, 반작용과 함께 지그재그로 전진한다. 결국 한쪽에서는 트럼피즘이 등장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생충과 미나리, 파친코 등, 다양한 이들의 서사에 공감하고 소통을 추구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2017년 출판된 '이민진 작가(Min Jin Lee)'의 소설은 미국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에 올랐고,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BBC가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고. 이민진 작가는 7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한국어는 거의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소설을 쓰게 된 계기은 1989년 작가가 예일대 대학생이던 시절, 일본에서 한국인과 함께 일한 미국인 선교사의 강연에서 열세 살 소년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다 자살한 사건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생긴 것도 똑같은 친구에게, 학교 졸업 앨범에 '너를 증오한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너한테 김치 냄새나' 이렇게 적었다는 것을 들으며, 조선인이 당했던 차별과 멸시를 알게된 작가는, 2007년, 일본인 남편과 함께 일본에 거주하며 4년간 자료를 조사하고 재일교포들을 인터뷰 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가 로스쿨을 가기 전에, 예일대에서 역사학으로 학부 전공을 한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인종문제와 역사문제에 대한 작가의 인터뷰들도 많은 화제를 일으켰다.

처음 소설이 나왔을 때,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식민지 시기의 역사적, 정치적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상대적으로 드라마는 그런 문제들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다뤘다고). 소설을 봐야 비교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미국 사회에 깊이 들어가 있는 교포가 미국 적인 정서와 관점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태백산맥이나, 토지 등이 위대한 작품이지만, 그걸 바로 번역한다고 미국 사회에서 이해하고 수용하기는 어려울 수가 있다. 한인들 사이에서도 1세, 1.5세, 2세의 사고와 정서가 모두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하는데,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한국과 미국의 중간 쯤에서, 서로의 사고와 정서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접점을 만들었다는 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의 문학작품에도 수많은 정서와 서사의 층들이 존재한다. 파친코에도 한국적인, 이민자 적인, 미국적인 요소들이 공존한다. 매우 한국적인 이 소재가 미국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에는, 다양한 분석이 있는데, 미국의 뿌리이자 공통분모인 이민자의 정서를 자극해서라는 점이 있다고. 미나리를 보면서도 한국적이면서도 상당히 미국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드라마와 비교해서 소설은 기독교적인 요소가 더 분명하게 흐르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미국인들에게 어필했다는 분석도 있다. 요셉과 이삭 형제, 그리고 이삭의 아들인 노아와 모자수(모세(Moses)의 영어 발음인 모우지즈를 일본어 화 한 듯), 그리고 솔로몬 등, 성경 인물들의 이름들과 그들의 캐릭터들과의 연결점도 많다. 소설에서는 이삭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선자와 결혼을 결심하는 것에도, 신의 계시가 묘사된다고 하는데, 이 과정은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고, 이민자이자 소수자인 선자의 가족에 대한 신의 인도가 소설을 관통하는 한 요소라고 한다.
결국 씨줄과 날줄처럼, 한국적이고 미국적인 요소들이 만나, 소통과 공감을 일으키는 소중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각본, 제작을 맡은 수 휴


드라마의 각본, 제작을 맡은 '수 휴(Soo Hugh)' 역시 교포이고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소설을 드라마로 풀어내고 재창조하는데 놀라운 역량을 발휘한 것 같다. 이미 미국에서 다른 드라마들로 각광을 받았었는데, 부모님 세대의 고생담을 지겹게 듣고 자란 1.5세대로서 이민자의 서사나 역사적 상처를 되새기는 것이 부담스러워 처음에는 파친코의 각색을 거절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이민자 이야기를 진부한 고생담과 고통이 아닌 '승리의 시선'으로 접근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역시 한국계 미국인 감독인 '코고나다(Kogonada, 1,2,3,7 회 연출)'와 '저스틴 전(Justin Chon, 4,5,6,8 회 연출)'이 절반씩 에피소드를 제작했는데, 코고나다에 대해서는 한국계 배우로 유명한 존 조가 주연한 영화 콜럼버스(2017)와 저스틴 민이 주연한 애프터양(2021)의 감독이라는 사실 외에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코고나다’는 예명인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각본가인 노다 코고의 변형으로, 심지어 본명이 무엇인지도 자료가 없다. 저스틴 전은 예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지만, LA폭동과 한흑 갈등을 다룬 영화 ‘국 (Gook, 2017)’, 그리고 재미 한인 여성의 삶을 다룬 ‘미스퍼플(Ms. Purple, 2019)’ 등의 영화를 보고 개인적으로 팬이 되었었다. 영화 '국'은 201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 하기도 했는데, 미국의 한인이라면 꼭 한번 보라고 강력 추천하고 싶다. 전 감독의 아버지는 1960~1970년대 한국에서 아역배우로 매우 유명했던 전상철 씨로, <공처가 삼대>(1967), <당신>(1969), <떡국>(1971) 등에 출연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가족들이 미국으로 다 이민을 왔고, 전상철 씨는 LA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했는데, 저스틴 전 감독이 11살이었던 LA 폭동 때 실제로 가게가 약탈을 당했었으며, 그 경험이 영화 ‘국’에 담겨있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전상철씨는 과거 윤여정 배우와 함께 연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하니, 저스틴 전 감독의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전 감독의 영화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한인 이민자들의 고된 삶과, 이들을 둘러싼 인종간의 갈등에 대해, 매우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저스틴 전 감독의 영화 두편에 대해서는 예전에 조금 자세한 영화평도 썼는데 못보신 분은 참고하시길.

 

한국 이민자 1.5세들의 삶을 다룬 영화 두 편: 국 (國, Gook, 2017), 그리고 미스 퍼플 (Ms. Purple, 2019)

한국 이민자 1.5세들의 삶을 다룬 영화 두 편 : 국 (國, Gook, 2017), 그리고 미스 퍼플 (Ms. Purpl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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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가 수 휴는, 인터뷰에서 “이민 첫 세대가 고생한 바탕 위에 2세대는 자리를 잡으려 노력하고, 3세대는 예술가가 된다는 얘기가 있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제작진뿐 아니라 리뷰에도 ‘부모와 조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감상평이 많았어요”라고 말했다는데, 이 소설과 드라마가 나온 것에는, 관련된 모든 한인 2세, 3세들의 고민과 성찰들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감독을 맡은 저스틴 전(좌)과 코고나다(우)

사실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1세의 입장에서 가끔 1.5세나 2세들을 접하며 미국 주류 사회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을 넘어, 미국 주류/백인/남성 중심의 세계관을 그대로 내면화 한 젊은 이들을 보며 다소 황당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 특히 기독교 인들 중에서 이런 이들이 많았는데, 미국의 한인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역사, 가치관은 배우지 못하고, 뭔가 맥락없는 신앙, 맥락없는 세계관으로 미국인 보다 더 미국인 같이 되고 싶어 하는 듯한 모습 말이다. 한 예로 북한과 한반도를 보는 시각에서, 미국의 매파가 바라보는 인권 중심의 시각만으로 북한을 해석하고, 탈북자 문제, 인권 탄압만을 이야기 하는 이들이 가끔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문제가 있고, 그것을 이야기 할 필요성을 부인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식민지, 분단, 전쟁, 민족, 평화와 화해 등, 총체적인 역사적, 정치적인 맥락에서 문제를 봐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은 도외시 한 채,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원색적인 북한의 인권 문제를 이야기 하며 울고 불고 하는 모습, 자신의 위치와 맥락이 어디인지 성찰해 본 적이 없이, 단순한 몇가지 논리를 절대화 하며 확신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반면에 거대한 미국 사회에서 역사적, 인종적, 문화적 고민을 매우 섬세하고 날카롭게 발전시켜온 한인들도 존재한다. 이 소설과 드라마를 창조해 낸 이들을 보면, 그런 고민의 깊이가 느껴져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인도 출신으로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탈식민주의 문화비평가인 '호미 바마'는 탈식민주의 문화이론을 다룬 저서 ‘문화의 위치’에서 “문화의 새로운 창조성 능력은 일개 문화나 국가내가 아닌, 문화와 문화의 경계선에서 가장 번창한다”라고 말했는데, 상당한 통찰력을 주는 말이고, 이 드라마가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들을 평민들과 다른 고귀한 혈통으로 생각해 근친혼을 이어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열성유전자가 발현되어, 주걱턱과 부정교합, 온갖 유전 질환, 신체적 정신적 장애들이 생겨났고 왕가 몰락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미국 남부에서 몇년 살면서 느낀 것은, 이런 생물학적인 근친교배 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정신적인 근친 교배의 악영향이라는 점이다. 즉 자신과 다른 다양한 문화, 사고와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문화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평과할 수 없고, 지적인 능력과 창조력이 고갈되며, 무지와 단순성이 팽배해 진다는 것. 트럼피즘이 결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없는 이유이다.


3. 역사적인 가치

소설과 드라마가 해낸 또 하나의 큰 업적은, 자이니치 분들의 존재를 세상속으로 끌어내고 알렸다는 것,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기의 차별과 착취, 관동대지지진 조선인 학살 같은 역사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예전에 일본계 미국인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쓴 '요코이야기'라는 소설이 미국 교과서에 실려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차대전 말 일제 패망 후, 주인공인 12세 소녀 요코와 그 가족들이 조선에서 탈출한 후 전후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학살했다는 소문을 듣고, 강간 장면을 목격했다는 부분 등이 수록되어, 일본인을 선량한 피해자, 한국인을 극악한 가해자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 책이 퇴출되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헐리우드에서 수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만들어져 온 것에도 논란이 존재한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알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마치 훌로코스트가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하고 비교불가능한 사건으로 치부되거나(인류 역사에 더 광범위하고 잔혹한 대량 학살들은 상대적으로 무시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미국 사회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나 중동정책을, 오직 이스라엘의 관점으로만 보도록 제한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의 관점을 흡수하게 되는 문학, 예술 작품은 대중에 엄청난 파급력을 끼친다.
이번에 파친코가 미친 영향은, 수많은 학문적 논문과 저서의 힘을 능가하는, 큰 기여가 아닐까 한다. 수십년간 억압받고 잊혀진 존재로 살아온 자이니치 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미국과 세계에서 일제 식민지배의 만행과 역사가 바르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 본격적으로 드라마의 인물과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는 글이 길어져서 따로 한번 더 써야할 것 같다. 드라마 파친코를 강력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화제가 된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을 감상해 보자. 등장인물들이 춤을 추는 장면들이 애잔하면서도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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