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연애에 대한 단상6 : 아주 오래된 연인들

2004.05.01 이인엽 
 

 

 
나이가 들면서 주변의 커플들을 많이 관찰하게 된다.
그중에는 정말 아름답고 보기좋은 커플도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거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한 커플도 보게 되고,
심지어는 '당장 헤어져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커플들도 꽤 있다.

그런 경우, 본인들도 무척 고민을 하고, 주변에서도 헤어지라는 권유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속에서도 관계가 상당 기간 동안 지속이 된다는 점이다.

본의 아니게 답답한 마음에,
헤어지라고 권유하는 '주변사람'이 몇번 되어보면서
연애라는 것에서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아주 오래된 연인들'에 대한 단상 ~~~

(한동안 쉬었던 연애에 대한 단상을 재개했는데,
오늘은 좀 비관적인 글이 될 것 같다.)

자타가 인정하는 문제있는 상황속에서도
그들의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몇가지 이유이다.

1. 정이라는 것이 한번 들면 떼기가 정말 힘들다
2. 한번 사귀기 시작한 사람은 애인 없이 못산다.

지겹도록 하는 얘기지만 다시한번 느꼈다. 정이라는 것이 무섭다는것.
그리고 관계라는 것은 중독과 같다는 것.

연애가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한 욕구중의 하나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어린시절 이후 처음 받아보는,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사랑,
둘만의 특별한 관계에, 연인들은 깊이 감동하고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신기할 정도로,
그리고 인생의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결된것처럼 느낄 정도로...

그러나 그것이 좋은만큼 중독성도 크다.
연인과 헤어졌을때, 다시 직면해야 할 고독과 홀로있음. 그리고 거기에다 실연의 상처까지.
이는 실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한번 연애를 경험한 사람은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경우 이것이 더 강한데, 누군가가 옆에 있어 준 경험은
앞으로 영원히 '홀로 있음'을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닌,
지속적인 '결핍'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은 어떤 면에선 정말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다.
혈연 관계의 약화와 조직화된 사회속에서
사랑과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간절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아니다 싶은 연인들도,
정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 필요하기 때문에 
관계를 지속해 가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경우 확신이 없기에,
어느 선까지만 신뢰하고 어느선까지만 사랑한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이기에, 상대방도 어렴풋이 이것을 느끼게 된다.
서로 어느 정도까지만 다가선 상태에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와 눈치보기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자신에게 전폭적으로 헌신하고 있지 않으며,
자기보다 더 좋은 상대가 나타난다면, 미련없이 가버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서로가 의심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사소한 반응에 싸우고 관계는 파도를 탄다.

그래도 만난다.
지금은 서로가 필요하니까.

어떻게 보면 참 엽기스러운 관계이다.


이와 관련해서 나타나는
연애에 있어 가장 비정한 형태가 있다 : 이른바 '징검다리 전술'.

주로 여성들이 구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요를 위해 연애를 하다가, 더 좋은 상대, 더 필요한 상대가 나타나면,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갈아치우는 전술이다.

앞에서 말한 홀로 있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현재 옆에 있는 사람을 통해 필요를 채우고,
더 큰, 혹은 새로운 필요를 느끼면 미련없이 새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안전한 점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도
기존의 애인이 있으므로, 혼자가 될 일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에바 페론'같은 여자는 이 전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상향식 징검다리를 몇번 타다가 최고 권력자를 낚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자기 중심적으로 본다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당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이기주의의 극치이며
인간을 말 그대로 헌신짝 취급하는 행위이다.
즉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물론, 연애하는 사람이랑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것도 아닌데
좋은 사람이 생기면 애인이 바뀔 수 있는것 아니냐는 항변을 할 수 있다.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새 사람을 찾거나 새로운 사람에게 작업을 하려면,
그리고 그러고 싶을 만큼 이전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고 마음이 없다면,
이전에 사귀던 사람과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찾아야 한다.

자기는 딴 살길을 도모하면서 상대는 자기에게 묶어 놓는 건,
완전히 사람을 '스페어 타이어' 취급하는것 밖엔 안된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이 욕구를 이용하면 상대에게서 상당히 많은 것을 얻어낼 수가 있다.

남자는 이것을 이용해서 쾌락을 얻으려고 하고,
여자는 이것을 이용해서 돈과 지위를 얻기도 한다.

오늘도 나름의 목적을 가진 수 많은 남녀는,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와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었다 지웠다 하며
연애사업을 펼친다.

연애야 좋은 것이지만,
인간을 이용하는 행위, 그것은 '악중의 악'이다.


그렇다면 연애를 해보면서 정말 문제가 많고,
주변에서도 아니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것은 서로의 차이 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문제일 수도 있다.

먼저는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솔직하게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 사람이 정말 당신을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면, 
문제를 고쳐나갈 것이고, 적어도 노력이라도 할 것이다.

사람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때로 사랑의 힘은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이 놀라운것 아닌가.

첫번째 케이스로, 만일 그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한다면
계속해서 솔직한 대화로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사랑을 지키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경우, 잠시 좋아졌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인간은 약하므로 몇번 기회를 준다.
반복될 지라도 조금씩 나아진다면 여지가 있는 것이고, 만일 그때 뿐이라면
헤어져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고칠 생각도 의지도 없다면, 정말 과감하게 헤어져야 한다.
사귈수록 서로에게 고통이다.

물론 인생의 상당기간을 떨어져 살아온, 두 사람이 완벽하게 맞는다는건 불가능하며,
어느 누구를 만나도 일정부분 맞는 부분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평생 같이 산다는 것을 가정할때,
어느 정도 참고 맞추면서 살 수 있는 사람과,
도저히 안되는 사람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그 경계는 금을 긋듯이 나눌 수도 없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신이 판단해야 될 부분이다.
그러나 결국 정말 객관적으로 깊이 고민해 본다면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가지만 생각해 보자.

연애기간은 결혼기간을 포함한 함께 있는 인생의 모든 시간을 통틀어,
상대에 대한 '희생도'와 '집중도'가 가장 높은 시기이다.

다른 면에서 좀 비관적으로 본다면,
남자든 여자든, 연애시절에 보여준 '희생도'와 '집중도' 이상을
결혼 이후에 보여주는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런 연애기간에도 서로에게 만족보다 불만족이 많고,
서로에 대해 배려하지 못해서 사소한 것으로 기분이 상하고,
특히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서로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면.

결혼생활이 어떠할지는 불보듯 뻔하지 않은가?

문제는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연애기간동안 너무 좋아서 죽자사자 하던 커플도
결혼의 현실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판에 말이다.


좀더 경계심을 갖기위해, 극단적인 얘기를 하나만 하자.

범죄심리학에 의하면, 자기 배우자를 살해하는 범죄가 일어날 경우,
그 방법이 가장 잔혹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 배우자가 미워서 죽이고 싶을정도가 되면,
그 분노는 그 어느 것보다 무시무시 하다는 것이다.

왜인가?
사람이 싸우는건 늘 새로운 이유가 아니라, 많은 경우 같은 이유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같이 살게되면, 상대방의 문제를 계속해서 평생 접해야 한다.
그러면 그에 대한 짜증과 분노는 계속해서 쌓여가게 되고
가장 사랑스러워야 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 싸우지, 모르는 사람과 싸우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른바 때린 데 또 때리기.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부부관계가 행복하면 그만한 천국이 없지만, 반대로 불행하면, 그것은 지옥중의 생지옥이다.

그러니, 신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이혼율도 정말 높은데.

만일 이런 가능성이 보인다면,
과감하게 헤어질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물론 책임은 안진다. 선택은 본인이. ^^;;)

그러나 헤어지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헤어진다는 말은 참 비겁한 말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징검다리 전략이며,
지금 사귀는 사람이나 새롭게 만날 사람 모두에게 진실하지 못한 태도이다.
만일, 징검다리로 건너갔을때 새로운 사람이 나를 신뢰할까?
아마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너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깊이 기억할 것이다.

정말 아니라면 과감하게 헤어지라.
그리고 홀로 서는 법을 배우라.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연애할 자격이 있다.

홀로 설 수 없는 사람은, 
흡혈귀나 기생충 처럼, 자신의 결핍을 상대를 통해 채우려 하고,
이렇게 되면 누구와 사귀어도 피곤한 관계가 된다.
이러한 두 사람이 만날경우 최악의 조합이 이뤄지며
서로에 대해 기대만 하고 따라서 실망만 한다.

절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랑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면서 사귀느니 
홀로 있는 것이 훨씬 낫다.

홀로서서 자신의 내면을 채우라.
내면의 성장은 혼자 있을때 이루어 진다.

사람을 바꿔서 해결될 문제도 있지만,
결국 사람은 자기의 수준에 가장 적당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가 미숙하고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연애의 노하우나 전략으로 해결 되는 부분도 한계가 있다.

결혼을 앞둔 한 친구로부터,
"이 사람이 나한테 제일 잘 맞는 사람인지, 혹시 더 좋은 사람이 있는데 실수하는건 아닌지 고민된다"는 
솔직한 말을 들은적이 있다.

결혼이라는게 생전 처음 해보는거고,
사람을 고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지라 어느정도 이해는 가지만,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적어도 사람이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기로 할 정도가 되면,
'다시는 이런사람 만나지 못할것 같다. 절대 놓칠 수 없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렇게 결혼해도 결혼생활은 쉽지 않은 것인데 . . . 

'차선'은 '최선'의 최대의 적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버스 기다리기가 지루하다고, 혹은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안 온다고,
아무 버스나 잡아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고 나서 원하는 목적지에 가자고 운전수와 싸워봤자
버스 노선은 정해져 있다.

물론 내가 가야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리로 가는 버스가 어떤 건지 모른다면,
버스를 기다릴게 아니라 목적지와 맞는 버스부터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버스가 정말 오는건지도 확인해봐야겠지. 

(오늘 버스 기다리다가 생각해본 비유인데,
나름대로 괜찮은것 같다. ^^)
 
모든 것은 자기 이해와 성장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은 안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내 인생이 피기 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생을 모르는 미성숙의 표본이다. 
.
.
.
'온 맘을 다해 사랑하면서도 상대가 자신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관계...'
'자신과 상대방중에 누가 더 사랑하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관계...'
'누가 더 많이 사랑하고 주었는가를 계산할 필요가 없는 관계...'

누구나 이런 사랑을 꿈꾸지만 누구나 이런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준비되고
또한 나와 잘 맞는, 준비된 상대를 만났을때에야,
이런 사랑이 가능하다.

사랑을 떠 받치는 두 기둥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진실함이며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세워가는 것이다.

나에게 정말 맞는 사람을 만나
신뢰와 확신속에 사랑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만큼 축복된 일이 또 있으랴?

헌데,
성숙과 기다림 없이 그런 축복이 주어지는 일은
참 드문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의 커플들을 많이 관찰하게 된다. 
그중에는 정말 아름답고 보기좋은 커플도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거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한 커플도 보게 되고, 
심지어는 '당장 헤어져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커플들도 꽤 있다. 

그런 경우, 본인들도 무척 고민을 하고, 주변에서도 헤어지라는 권유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속에서도 관계가 상당 기간 동안 지속이 된다는 점이다. 

본의 아니게 답답한 마음에, 
헤어지라고 권유하는 '주변사람'이 몇번 되어보면서 
연애라는 것에서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아주 오래된 연인들'에 대한 단상 ~~~

(한동안 쉬었던 연애에 대한 단상을 재개했는데, 
오늘은 좀 비관적인 글이 될 것 같다.)

자타가 인정하는 문제있는 상황속에서도 
그들의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몇가지 이유이다. 

1. 정이라는 것이 한번 들면 떼기가 정말 힘들다
2. 한번 사귀기 시작한 사람은 애인 없이 못산다. 

지겹도록 하는 얘기지만 다시한번 느꼈다. 정이라는 것이 무섭다는것. 
그리고 관계라는 것은 중독과 같다는 것. 

연애가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한 욕구중의 하나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어린시절 이후 처음 받아보는,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사랑, 
둘만의 특별한 관계에, 연인들은 깊이 감동하고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신기할 정도로, 
그리고 인생의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결된것처럼 느낄 정도로... 

그러나 그것이 좋은만큼 중독성도 크다. 
연인과 헤어졌을때, 다시 직면해야 할 고독과 홀로있음. 그리고 거기에다 실연의 상처까지. 
이는 실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한번 연애를 경험한 사람은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경우 이것이 더 강한데, 누군가가 옆에 있어 준 경험은 
앞으로 영원히 '홀로 있음'을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닌, 
지속적인 '결핍'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은 어떤 면에선 정말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다. 
혈연 관계의 약화와 조직화된 사회속에서 
사랑과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간절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아니다 싶은 연인들도, 
정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 필요하기 때문에 
관계를 지속해 가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경우 확신이 없기에, 
어느 선까지만 신뢰하고 어느선까지만 사랑한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이기에, 상대방도 어렴풋이 이것을 느끼게 된다. 
서로 어느 정도까지만 다가선 상태에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와 눈치보기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자신에게 전폭적으로 헌신하고 있지 않으며, 
자기보다 더 좋은 상대가 나타난다면, 미련없이 가버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서로가 의심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사소한 반응에 싸우고 관계는 파도를 탄다. 

그래도 만난다. 
지금은 서로가 필요하니까. 

어떻게 보면 참 엽기스러운 관계이다. 


이와 관련해서 나타나는 
연애에 있어 가장 비정한 형태가 있다 : 이른바 '징검다리 전술'. 

주로 여성들이 구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요를 위해 연애를 하다가, 더 좋은 상대, 더 필요한 상대가 나타나면,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갈아치우는 전술이다. 

앞에서 말한 홀로 있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현재 옆에 있는 사람을 통해 필요를 채우고, 
더 큰, 혹은 새로운 필요를 느끼면 미련없이 새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안전한 점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도 
기존의 애인이 있으므로, 혼자가 될 일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에바 페론'같은 여자는 이 전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상향식 징검다리를 몇번 타다가 최고 권력자를 낚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자기 중심적으로 본다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당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이기주의의 극치이며 
인간을 말 그대로 헌신짝 취급하는 행위이다. 
즉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물론, 연애하는 사람이랑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것도 아닌데 
좋은 사람이 생기면 애인이 바뀔 수 있는것 아니냐는 항변을 할 수 있다.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새 사람을 찾거나 새로운 사람에게 작업을 하려면, 
그리고 그러고 싶을 만큼 이전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고 마음이 없다면, 
이전에 사귀던 사람과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찾아야 한다. 

자기는 딴 살길을 도모하면서 상대는 자기에게 묶어 놓는 건, 
완전히 사람을 '스페어 타이어' 취급하는것 밖엔 안된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이 욕구를 이용하면 상대에게서 상당히 많은 것을 얻어낼 수가 있다. 

남자는 이것을 이용해서 쾌락을 얻으려고 하고, 
여자는 이것을 이용해서 돈과 지위를 얻기도 한다. 

오늘도 나름의 목적을 가진 수 많은 남녀는,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와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었다 지웠다 하며 
연애사업을 펼친다. 

연애야 좋은 것이지만, 
인간을 이용하는 행위, 그것은 '악중의 악'이다. 


그렇다면 연애를 해보면서 정말 문제가 많고, 
주변에서도 아니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것은 서로의 차이 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문제일 수도 있다. 

먼저는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솔직하게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 사람이 정말 당신을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면, 
문제를 고쳐나갈 것이고, 적어도 노력이라도 할 것이다. 

사람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때로 사랑의 힘은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이 놀라운것 아닌가.

첫번째 케이스로, 만일 그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한다면 
계속해서 솔직한 대화로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사랑을 지키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경우, 잠시 좋아졌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인간은 약하므로 몇번 기회를 준다. 
반복될 지라도 조금씩 나아진다면 여지가 있는 것이고, 만일 그때 뿐이라면 
헤어져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고칠 생각도 의지도 없다면, 정말 과감하게 헤어져야 한다. 
사귈수록 서로에게 고통이다. 

물론 인생의 상당기간을 떨어져 살아온, 두 사람이 완벽하게 맞는다는건 불가능하며, 
어느 누구를 만나도 일정부분 맞는 부분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평생 같이 산다는 것을 가정할때, 
어느 정도 참고 맞추면서 살 수 있는 사람과, 
도저히 안되는 사람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그 경계는 금을 긋듯이 나눌 수도 없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신이 판단해야 될 부분이다. 
그러나 결국 정말 객관적으로 깊이 고민해 본다면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가지만 생각해 보자. 

연애기간은 결혼기간을 포함한 함께 있는 인생의 모든 시간을 통틀어, 
상대에 대한 '희생도'와 '집중도'가 가장 높은 시기이다. 

다른 면에서 좀 비관적으로 본다면, 
남자든 여자든, 연애시절에 보여준 '희생도'와 '집중도' 이상을 
결혼 이후에 보여주는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런 연애기간에도 서로에게 만족보다 불만족이 많고, 
서로에 대해 배려하지 못해서 사소한 것으로 기분이 상하고, 
특히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서로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면. 

결혼생활이 어떠할지는 불보듯 뻔하지 않은가? 

문제는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연애기간동안 너무 좋아서 죽자사자 하던 커플도 
결혼의 현실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판에 말이다. 


좀더 경계심을 갖기위해, 극단적인 얘기를 하나만 하자. 

범죄심리학에 의하면, 자기 배우자를 살해하는 범죄가 일어날 경우, 
그 방법이 가장 잔혹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 배우자가 미워서 죽이고 싶을정도가 되면, 
그 분노는 그 어느 것보다 무시무시 하다는 것이다. 

왜인가? 
사람이 싸우는건 늘 새로운 이유가 아니라, 많은 경우 같은 이유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같이 살게되면, 상대방의 문제를 계속해서 평생 접해야 한다. 
그러면 그에 대한 짜증과 분노는 계속해서 쌓여가게 되고 
가장 사랑스러워야 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 싸우지, 모르는 사람과 싸우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른바 때린 데 또 때리기.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부부관계가 행복하면 그만한 천국이 없지만, 반대로 불행하면, 그것은 지옥중의 생지옥이다. 

그러니, 신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이혼율도 정말 높은데.

만일 이런 가능성이 보인다면, 
과감하게 헤어질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물론 책임은 안진다. 선택은 본인이. ^^;;)

그러나 헤어지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헤어진다는 말은 참 비겁한 말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징검다리 전략이며, 
지금 사귀는 사람이나 새롭게 만날 사람 모두에게 진실하지 못한 태도이다. 
만일, 징검다리로 건너갔을때 새로운 사람이 나를 신뢰할까? 
아마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너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깊이 기억할 것이다. 

정말 아니라면 과감하게 헤어지라. 
그리고 홀로 서는 법을 배우라.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연애할 자격이 있다. 

홀로 설 수 없는 사람은, 
흡혈귀나 기생충 처럼, 자신의 결핍을 상대를 통해 채우려 하고, 
이렇게 되면 누구와 사귀어도 피곤한 관계가 된다. 
이러한 두 사람이 만날경우 최악의 조합이 이뤄지며 
서로에 대해 기대만 하고 따라서 실망만 한다. 

절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랑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면서 사귀느니 
홀로 있는 것이 훨씬 낫다. 

홀로서서 자신의 내면을 채우라. 
내면의 성장은 혼자 있을때 이루어 진다. 

사람을 바꿔서 해결될 문제도 있지만, 
결국 사람은 자기의 수준에 가장 적당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가 미숙하고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연애의 노하우나 전략으로 해결 되는 부분도 한계가 있다. 

결혼을 앞둔 한 친구로부터, 
"이 사람이 나한테 제일 잘 맞는 사람인지, 혹시 더 좋은 사람이 있는데 실수하는건 아닌지 고민된다"는 
솔직한 말을 들은적이 있다. 

결혼이라는게 생전 처음 해보는거고, 
사람을 고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지라 어느정도 이해는 가지만,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적어도 사람이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기로 할 정도가 되면, 
'다시는 이런사람 만나지 못할것 같다. 절대 놓칠 수 없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렇게 결혼해도 결혼생활은 쉽지 않은 것인데 . . . 

'차선'은 '최선'의 최대의 적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버스 기다리기가 지루하다고, 혹은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안 온다고, 
아무 버스나 잡아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고 나서 원하는 목적지에 가자고 운전수와 싸워봤자 
버스 노선은 정해져 있다. 

물론 내가 가야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리로 가는 버스가 어떤 건지 모른다면, 
버스를 기다릴게 아니라 목적지와 맞는 버스부터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버스가 정말 오는건지도 확인해봐야겠지. 

(오늘 버스 기다리다가 생각해본 비유인데, 
나름대로 괜찮은것 같다. ^^)
 
모든 것은 자기 이해와 성장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은 안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내 인생이 피기 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생을 모르는 미성숙의 표본이다. 
.
.
.
'온 맘을 다해 사랑하면서도 상대가 자신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관계...'
'자신과 상대방중에 누가 더 사랑하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관계...'
'누가 더 많이 사랑하고 주었는가를 계산할 필요가 없는 관계...'

누구나 이런 사랑을 꿈꾸지만 누구나 이런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준비되고 
또한 나와 잘 맞는, 준비된 상대를 만났을때에야, 
이런 사랑이 가능하다. 

사랑을 떠 받치는 두 기둥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진실함이며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세워가는 것이다. 

나에게 정말 맞는 사람을 만나 
신뢰와 확신속에 사랑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만큼 축복된 일이 또 있으랴? 

헌데, 

성숙과 기다림 없이 그런 축복이 주어지는 일은 
참 드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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