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부모님과 함께 음악 듣기, 그리고 옛날 음악 이야기

 

2017년 8월 5일 이인엽 

 

 

 

 

 

2017년 여름 부모님이 미국 방문을 오셨다.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여행계획을 짜다가, 먼 거리를 운전하는 동안 얘기도 하고 함께 음악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팝송, 클래식, 연주음악들을 좋아하셨는데, 그래서 생각나는 옛날 음악들을 찾아서 MP3에 넣어 놓았다. 예전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Too Young을 비롯해 Nat King Cole의 노래들, 언제 들어도 좋은 The Carpenters, 그리고 생각나는대로 Anne Murray, Julio Iglesias의 노래들, 그리고, 쉘부르의 우산이나 카사블랑카, 태양은 가득히 같은 옛날 영화 음악들과 인터넷에서 찾은 옛날 경음악들까지. 
여행을 다니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또 부모님과 함께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순간은 참 즐거웠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냇킹콜이 히트곡들을 엄청나게 남긴 유명한 흑인가수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특유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재미있게도 담배를 많이 핀 영향도 있다고 . . .

 

유명한 냇킹콜의 노래 'Too Young'

 

유명한 Unforgettable은 딸과 같이 부른 버전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어떤 나이대에 (아마도 청소년기?)에 들은 음악을 일생동안 가장 편하게 느낀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었는지, 어렸을때 들은 음악들을 종종 찾아보게 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인용되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주인공이 우연히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먹고 그 맛으로 인해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기억을 되찾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예전에 들은 음악을 다시 들으면 어린시절의 기억이나 감정이 돌아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유투브에서 옛날 음악들을 찾아보며 한창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경음악’이라는 장르가 있었는데, 듣기 좋은 아름다운 멜로디에 악단이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대중적인 곡들이었다. 경음악이라는 표현은 Light music을 (아마도 일본에서) 번역한 것으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뜻 같다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 졸업식 같은날 가족들이 같이 가던 ‘경양식’집 이라는 표현과 유사한 듯). 다른 표현으로 카페나 다방에서 많이 틀어줘서인지 카페음악, 무드음악 같은 용어도 있는 듯.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주제곡처럼 틀어주는 음악들로도 많이 사용되어서 ‘시그널 음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귀에 잘 들어와서 CF등에 많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런 음악들을 모아 CF 음악 모음집 같은 테이프를 팔기도 했었다. 예전에 황인용 아저씨가 광고하던 ‘아이템풀’이라는 학습지가 있었는데, 그걸 신청했더니 부록으로 이런 음악들을 모아놓은 테이프를 줘서 열심히 들은 적도 있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옛날 연주음악들을 쭉 모아놓은 페이지를 찾아서, 반가운 마음에 다 저장해서 들어봤는데, 느낌이 묘했다. 마치 어렸을때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지금 다시 들어가보니 저장한 원본 음악파일은 삭제되었는지 이제 아쉽게도 다운은 안되지만, 목록은 볼 수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베스트 연주곡 100선
http://yulha.org/yulha/sub07_3/1769

 

기억에 남는 몇곡만 이야기 해 보면,

 

Frank Miller의 Music Box dancer (https://www.youtube.com/watch?v=Qwa0c8VO71s)나 The poet and I 시인과 나 (https://www.youtube.com/watch?v=_3ylTvA6j8U)는 예전에 광고 배경음악으로 참 많이 쓰였던게 기억나고,

 

Happy Song (https://www.youtube.com/watch?v=-dodfOGOev0)은 어렸을때 뉴스의 ‘오늘의 날씨’ 배경음악으로 한동안 쓰여서 참 익숙하다. 그러고 보니 ‘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로 유명한 김동완 아저씨(할아버지?)는 정말 오랫동안 진행자로 나오셨던거 같고, 예전에 우리 동네 사셔서 지나가다가도 한번 뵌거 같은데, 말년에 누군가의 정치하라는 꼬드김에 넘어가 재산도 날리고 힘들게 사신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Baby Elephant Walk (아기 코끼리의 걸음마 https://www.youtube.com/watch?v=liXql4WLfAY)는 티비에서 웃기거나 귀여운 장면이 나올때 정말 자주쓰던 배경음악이라 익숙하고,

프랑스 군가라는 Le Régiment de Sambre et Meuse (https://www.youtube.com/watch?v=dvKVbvxKfdY)는 항상 권투중계 할 때 틀어준 기억이 있다.

영화주제곡인 A Summer Place 피서지에서 생긴일 (https://www.youtube.com/watch?v=rt7SPm7N6D8)은 언제 들어도 낭만적인 감정이 충만해지고,

Frank Pourcel의 Merci cheri (https://www.youtube.com/watch?v=jOhIbMvgERI)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빛나는 밤에'의 시그널 음악으로 유명하다. 
 

지금보다 더 억압적이고 문화적인 자원도 많지 않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라디오 방송이나 음악들이 큰 위로를 주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고즈넉한 저녁에 버스안에서 Cavatina (https://www.youtube.com/watch?v=sA_qnNrVelc) 같은 음악이 들려올 때면,

왠지 모를 아련한 마음에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Cavatina가 Deer Hunter라는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의 주제곡이란 것은 한참 나중에 알았다. 가사가 붙여져 Cleo Laine라는 가수가 'He Was Beautiful' (https://www.youtube.com/watch?v=DQnxfTDVizU)이라는 제목으로 부른 버전도 있다. 
 

위에는 없지만, KBS에서 프로그램 안내하면서 배경으로 틀어주던 음악이 있어서 궁금했는데, 클래식을 좀 신나는 팝으로 편곡해서 연주한 HOOKED ON CLASSICS라는 버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mps6Mh5Yg)

이 음악이 울리면서, 아나운서가 주말의 프로그램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에는 드라마 ~가 방송됩니다 하면서 스토리를 소개해주던 기억이 난다.

 

위의 리스트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폴 모리아(Paul Mauriat)'인데, 연주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의 지휘자, 작곡가이다. 약간 폄하하는 느낌의 'Easy listening'이라고 칭하는 장르를 대표하는데

유명한 Love Is Blue (https://www.youtube.com/watch?v=rjsNNcsUNzE)나 El Bimbo, Toccata, Penelope, Nocturne 등 히트곡들이 많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인기가 많아 방문해서 연주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아리랑 (https://www.youtube.com/watch?v=Xh-8BkhMSa4)을 편곡해 유럽에 처음 알리기도 했고,

유명한 싱글벙글쇼의 시그널 음악으로 익숙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폴 모리아가 편곡한 버전이라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snsDRSZcpU).

 

또 한명 유명한 사람은 '제임스 라스트 (James Last)'인데 독일 출신으로, 폴 모리아와 유사하게 악단을 이끌면서 클래식을 파퓰러 하게 편곡해서 연주해서 Classics Up To Date 라는 앨범 시리즈로 내기도 했고,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 등으로 유명한 리차드 클라이더만과 함께 앨범도 많이 냈다. 역시 듣기 좋게 파퓰러한 스타일로 연주하는 이런 장르를 '엘리베이터 음악'이라고도 한다는데, 역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갈때 주로 틀어주는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약간 폄하하는 뉘앙스가 있는 듯.

제임스 라스트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엄마 눈치를 보면서도 전축을 사 놓으시고, 레코드판을 사서 모으셨는데, 그래서 집에서 클래식이나 팝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초등학교 막바지 쯤에 그 옛날 아남전자에서 나온 전축의 바늘이 부러졌는데, 모델이 오래되었는지 부품을 구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때부터 전축에서 레코드판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꽤 많은 레코드판이 무용지물이 되어 그냥 집에 보관되어 있었고 그때 들은 음악들도 잊혀져 갔다. 
최근에 복고 바람인지 레코드를 연주해주는 기기들이 다시 나오길래 아버지께 선물해 드릴까 싶었는데, 한국과 미국 전압도 다르고, 소리가 잘 나올지, 괜히 판만 긁는게 아닐까 해서 그만두고, 그 대신 기억 남는 판 몇장을 다시 찾아보았다. 영어를 배우기도 전 초등학교 때 들은 거라 앞면의 사진만 기억나는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사진으로 판을 찾아달라고 부탁해서 다시 들어본 음반들 중 하나가 James Last의 Classics Up To Date Vol. 5인데 무려 1978년에 나온 판. 클래식 곡들을 파퓰러 하게 편곡한 앨범인데, 어릴때 들은 느낌은 무척 낭만적었고, 여러대의 바이올린이 아련하게 소리를 내는 느낌은, 왠지 눈이 쌓인 겨울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었다.

 

James Last - Adagio (aus der Sonate Nr. 6)
https://www.youtube.com/watch?v=_buui3KWEmI&index=39&list=WL

 

James Last - Romance (Tschaikowski)
https://www.youtube.com/watch?v=t_28pqCjg00&index=42&list=WL

 

James Last - Nocturne Opus 27 Nr. 2
https://www.youtube.com/watch?v=Vhu4hj7YS1w&index=41&list=WL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이제 유투브에서 찾지 못하는 음악이 없을 정도로 쉽게 검색해서 저장하고 무료로 원할때 마다 들을 수 있으니 놀랍다. 


아래 링크에 가면 이제까자 출시된 거의 모든 레코드의 정보 (수록곡들)도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discogs.com

 

멜로디는 익숙한데 이름을 모르는 곡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유투브에 유명한 멜로디와 곡 이름을 함께 보여주는 영상도 있다. 아래 링크를 한번 확인해 보시길. 


79 Instrumental songs everyone knows, but no one knows the name of (TV Show & Advertising Music)
https://www.youtube.com/watch?v=OzOh9cTbX60

 

79 Instrumental songs everyone knows, but no one knows the name of - PART 2
https://www.youtube.com/watch?v=-v1i9U_Or0U

 

처음 듣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 곡명을 찾아보고 저장해 놓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가장 유용한 건, 음악을 찾아주는 앱 들인데, “Shazam”이라는 앱은, 실행하고 음악을 들려주면 금새 곡 정보를 찾아준다. 물론 아이폰에서 Siri를 실행하고 “What is this song?”이라고 물어봐도 되지만 이게 조금 더 사용하기 쉬운 듯. “Soundhound”라는 앱은 음악을 흥얼거리면 노래를 찾아주기도 한다는데, 성공률은 좀 낮은것 같고, 한국 노래는 못찾는 듯 하다.

 

하여간, 기술의 발달로, 이렇게 예전의 기억을 마주할 수 있으니 참 좋다. 물론 풍요속의 빈곤인지는 몰라도, 먼지가 붙을 까봐 후후 불어서 판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얹어서 미끄러지듯 돌아가는 레코드판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던, 어린 시절의 감흥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다방에서 DJ에게 편지로 신청해서 듣거나, 음악감상실을 찾아가거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서 듣던 곡들이 그런 추억으로 남아있겠지. 음악을 들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나 인생에 대해 막연하게 상상해 보기도 했었고, 웃기지만 나중에 애인이 생기면 꼭 이 음악을 같이 들어야 겠다고 생각한 곡도 있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먹었는지, 옛날 생각이 많이 나고, 추억이 많은데, 옛날 노래를 듣다 보면, 부모님의 젊을 때 시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가슴이 아련하고 그리움이 몰려온다. 
 

모든게 신기하고 새롭던 어린 시절, 아버지 덕이 이런저런 음악들을 들은 덕에, 지금까지 음악을 즐기며 인생을 조금더 풍요롭게 살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늘 40대 처럼 느껴지시던 부모님은 이제 연세가 많이 드시고, 이번 여행에서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다. 언젠가 먼 훗날에는 오늘 이 기억들을 또 그리워 하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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