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미국의 개기일식과 잡설

 

2017년 8월 21일 이인엽 

 

 

 

 

오늘이 북미대륙에서 개기일식을 관찰할 수 있는 날인데, 특수 안경을 쓰고 보지 않으면 눈에 손상이 온다고 해서 알아봤더니, 월마트고 어디고 벌써 엣날에 안경이 동이 났다고.
99년 만에 한번 볼수 있는거라 하길래 좀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교회 성도님이 촛불 그을음을 유리에 입혀서 보면 된다는 정보를 페북에 올려주셔서, 나도 급조해서 아내와 일식을 관찰했다. 
미시간 위치상 완전한 개기일식은 보지 못했지만, 달이 태양을 먹어들어가는게 신기했고, 아내와 작은 추억을 만드는 소소한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교회 다른 분은 무려 테네시 까지 운전하고 가서 이걸 관찰하셨다니 참 대단하고, 매우 신비한 경험이었다고 하신다.

 

고대 시대에는 천문에 대한 지식이 매우 중요했는데, 날씨와 기후가 중요한 농경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민심을 다스리고 조작하는데도 유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양을 신성시하고, 생명과 에너지의 근원이라 인식한 문화권에서는, 일식처럼 태양이 가려지는 사건을 불길하거나 공포스럽게 생각했는데, 이를 정치적 종교적으로 이용하는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보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고, 이런 이유로 한반도의 왕조들이 중국의 천문 지식을 흡수하는데 매우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금은 일식을 보며 불길함이나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여기에는 과학적인 세계관의 도움이 크겠지만, 기독교인으로서는 성경의 창세기나 출애굽기의 중요한 메시지가 '자연의 비신화화'였다는 점도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해와 달과 별, 산과 강, 동물들을 신성한 존재로 생각하고 숭배하던 고대 세계의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과 달리,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물일 뿐이고, 그것 자체에 어떤 신성함이나 마술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만물의 영장이고, 자연을 두려워 하거나 그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존재라는 것이, 창세기의 창조기사나, 출애굽기의 10 재앙 같은 기록이 고대 근동 지역에 살던 히브리 인들에게 던진 중요한 메시지 였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인간의 존엄성에 깊은 관심이 있고, 결국 진실한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상충되지 않는 다고 본다. 가끔 자기와 생각이 다르기만 하면 인본주의라고 정죄하는 기독교인들도 계신데, 인본주의가 뭔지 이해는 하시나 싶을 때가 많다. 
또한 종교개혁이후 성경의 가르침을 재 발견하면서, 세상을 지혜로 창조하고 법칙을 가지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을 전제로 할 때, 자연의 원리를 연구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과학혁명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반대 급부로, 성경의 가르침을 청지기적 사명으로 이해하지 않고,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착취해도 된다는 관점으로 이해하는 문제도 있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환경문제에 가장 무관심하고 전쟁과 개발, 착취에 비판의식이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점. 
또한 성경을 문맥이 아닌 문자적으로 해석해, 천동설을 주장하고, 지동설을 핍박했던 역사나, 지금도 젊은지구론 같은 비과학적이고 반드시 성경적이라고 보기도 힘든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같은 성경을 봐도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개기일식은 태양의 크기와 달의 크기가 같아져서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게 되는데, 
한 교수님께 듣기로는, 해에서 달까지의 거리와, 해와 달과 크기 차이의 비율이 딱 맞아떨어져서 지구에서 볼때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달 인공구조물설 등을 주장하는 음모론 등에서도 종종 이야기 된다고. 

이와 유사하게,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나 달의 존재 등이, 지금처럼 지구가 인간이 살기에 최적화 된 요인이라는 설명으로, 창조주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것을 창조과학쪽에서도 들은적이 있다. 헌데 그런 신기한 점들이 신앙에 도움이 되거나 창조주의 존재를 생각하게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필요충분 조건으로 하나님의 존재나 창조를 증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 하다. 
성경과 과학의 문제는 지속적인 토론이 필요한데, 맥락에 대한 고민없이 어떤 목적을 위해 성경을 문자적으로 세상에 적용하거나, 아니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성경을 증명하기 위해서 손쉽게 이용하는 방식에는 위험성이 따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알리고 세상과 대화하는데 역효과가 날 때가 많다.

 

다른 얘기로, 
개기일식이 북미대륙에 99년에 한번 오기에, 이제 생전에는 다시 못본다는 말에,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식을 보면서 특별한 감정을 느낀 분들도 있는 듯. 살면서 죽음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이런 순간은 문득 인간의 유한성을 생각해 보는 계기인 것 같다.

예전에 대학때 학교의 천문동아리에서 별 사진전을 해서 가본 적이 있는데, 예쁜 별 사진 엽서들을 팔길래 사놨었다. 그중에서 핼리혜성이 사진이 제일 맘에 들었는데, 76년 만에 돌아오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에 한번 볼 수 있다는 것이 좀 특별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여기다 편지를 써서 선물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당신은 내 인생에 하나뿐인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몇년 후,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잘 보관했던 핼리혜성 엽서에 편지를 써서 준 기억이 있다. (오늘 다시 물어보니 아내가 기억을 못한다는게 약간의 함정. ㅎㅎ 그러면 어떠랴, 님과 함께 잘 살고 있는데...)

 

기다림, 약속, 추억, 이런 단어들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찾아보니 이제 북미에는 개기일식 관찰이 이번 생에는 끝이지만,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관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2035년 9월 2일에 개기일식 관측이 가능한데, 재미있게도 위도상 북한 지역의 원산, 평양 등에서만 관측이 가능하고, 강원도 고성군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관측이 가능해서, 여기로 사람이 몰릴 수 있다고 한다. 
지금부터 18년이 지난 2035년까지 세상에 어떤 일들이 있어나고, 나와 아내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때는 통일이 되거나 최소한 왕래가 가능해져서, 꼭 아내와 함께 북한에서 개기일식을 관찰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기일식을 본 날에 품어보는,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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