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뮤지컬 지하철1호선

: 어두운 도시, 밑바닥 인생들을 비추는 인간의 시선

 

2019년 12월 이인엽

 

 

 

 

 

 

 

 

 

0. 드디어 관람하다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관람했다. 오랜만에 한국 방문한 김에, 뭔가 좋은 공연을 하나 보고 싶었는데, 제일 눈에 띄는게 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공연이 처음 시작된 게 90년대 중 후반이니 대학생 때 처음 들었었다. 그런데 그때는 바쁘기도 했고, 학생이 보기에 티켓 값도 만만치 않아서 언젠가 꼭 봐야지 했었는데, 자그만치 ‘25년’이 흐른 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침이슬’을 비롯해,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던 작곡가 김민기씨가 연출한 작품으로, 총 4천회 이상 공연, 70만명 이상 관람한 기념비 적인 뮤지컬이라고 한다. 독일의 원작을 번안해, 94년도 처음 공연을 시작해서 15년 동안 장기 공연 후, 10년 만에 2018년부터 재공연을 시작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배우 11명을 뽑는데 900명 이상 오디션에 지원했다고 한다.

 

 

1. 줄거리

 

1997년 IMF 사태 전후를 배경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그늘진 모습과 그곳에 사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국에 백두산 관광을 온, ‘제비’라는 청년에게 속아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까지 한 순수한 연변 처녀 ‘선녀’는, ‘588청량리 독립군로’라는 가짜 주소를 가지고 제비를 찾아온다. 그 곳에서 지하도의 걸인 ‘문디’와 ‘땅쇠’, 다리를 절며 노래를 부르는 ‘안경’, 그를 사모하는 마약중독자 창녀 ‘걸레’, 흑인 혼혈 고아인 ‘철수’, 포장마차를 하는 ‘곰보할매’, 땅부자인 ‘빨강바지’ 등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이 사창가이며, ‘제비’는 돈 많은 ‘빨간바지’와 이모가 아닌 내연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절망한다. 또한 지하철 1호선의 각종 군상들, 단속반, 실직자, 시간강사, 가출소녀, 잡상인, 전도사, 군인, 강남 사모님, 포인터와 미군 등을 만나는데, 극은 순진한 그녀의 눈을 통해, 무자비하며 비인간적인 서울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녀가 588의 창녀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 그녀를 미군에게 넘기려는 포인터(유명인사 누구를 딱 닮았다)에게 위협을 당하나, ‘곰보할매’와 창녀 ‘걸레’, ‘안경’ 등은 불쌍한 그녀를 돌봐준다. 북에서 월남한 ‘곰보할매’는, 단속반과 싸우며 어려운 인생을 이어가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이 참 좋구나, 아가야’라는 삶을 긍정하는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에게 맞고 기둥서방에게 폭행을 당하고 창녀가 된 걸레는, 몸도 마음도 병들고 마약 중독자가 되어 있지만, 어느 날 찾아온 다리를 절며 노래를 부르는 ‘안경’을 경찰에 쫓기는 운동권 학생으로 생각하고 사모한다. 사실 그는 단순한 실직자였고 다리를 저는 체를 하며 588에 기생하던 인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걸레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죽게 된다. 어쩌면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 사라져 버려서 일까?

이 모든 것에 절망한 선녀는 연변에 돌아가 아기를 지울 생각을 하는데, 걸레의 죽음으로 괴로워 하는 안경과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떠나게 된다. 마치 걸레가 두 사람을 이어준 것 처럼…

중간중간 코믹한 장면과 경쾌한 음악도 많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 밑바닥의 군상들을 그리는 내용이라 슬픔과 애잔한 정서가 극에 깔려있고, 걸레의 죽음이나, 선녀가 절망하는 장면, 마지막 안경과 떠나는 순간의 연주 음악 등은 가슴을 저리게 했다.

 

 

2. 생동감있는 노래, 연기, 연주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선발된 배우들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뮤지컬 배우들의 연기력, 가창력이 엄청나고 끼가 넘쳐서 무대의 에너지가 압도적이었다. 배우 한 사람이 7~8가지 배역을 맡아 역할을 계속 바꾸는 공연이어서, 등장인물은 8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이 참 멋져보였고, 배우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친근함이 느껴졌다. 뮤지컬이나 연극은 그 자체로 뭔가 꿈과 낭만이 느껴진다. 극의 내용도 그렇고, 배우들 자체가 꿈을 쫓아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할까? 반면에 연극 배우는 참 배고픈 직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분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구조적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참 중요할 것 같다.

전체 뮤지컬의 배경음악들이 라이브 연주로 진행되는데, 연주가 수준급이다. 경쾌한 음악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슬픈 장면의 곡들은 가슴을 저미는데, 개인적으로 바이올린 연주가 참 기억에 남고, 연주자들도 극에 함께 몰두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 김민기, 그 사람

 

연출가 김민기 씨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이 뮤지컬에 대해 들었을 때는, 락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연출가가 김민기씨라고 해서, ‘아침이슬’의 김민기씨가 아닌 동명이인인가 했었다. 그런데 뮤지컬 내용을 보고나니, 그가 왜 그가 이 뮤지컬에 오랜기간 집중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노래들은 민주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삶과 인생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깊은 성찰이 느껴져서, 김민기라는 분을 생각하면, 철학자, 영성가, 구도자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며,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선지자, 예언자적인 인상도 받는다.

이 작품이 고마웠던 것은, 어두운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폭로해서, 고민과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걸레’가 목숨을 끊은 후, ‘안경’이 부르는 ‘가버린 그녀’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말이다: “남들에겐 다만 조금 귀찮은 존재였을 뿐, 세상 무엇과도 아무 인연 맺지 못하고, 버려졌던 그녀 삶에 무섭도록 소름끼친 우리의 이 무관심…” 이기적이고 냉담하고 무관심한 우리의 관점을 부끄럽게 하고 재조정하게 만드는 것. 15년 동안 총 4천회 이상 공연하고, 70만명 이상 관람했다는 기록을 보면, 한편의 뮤지컬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작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신앙적으로 말하자면, 예배라는 것도, 이렇게 우리의 왜곡되고 이기적인 시각을 교정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바라보게 하고,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 불의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켜야 하는게 아닐까? 그런데 오늘 많은 예배들이 감동과 자극도 없고, 심지어 무지와 독단과 아집과 이기심을 강화하는 것을 보면, 치열한 예술적 고민이 종교적인 예배보다 훨씬 진리의 길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앞에서 말했듯, 그가 학전 극장을 맡아서 어렵게 운영하는 동안, 조승우, 황정민, 김윤석, 설경구, 장현성 등 요즘 내노라 하는 배우들이 이 뮤지컬을 거쳐갔고, 학전은 후배 가수들인 노래패 새벽, 노찾사와 유명한 김광석 등을 발굴하고 키워준 대중문화의 모판이기도 했다. 2000년 이 작품의 공연횟수가 1000회를 돌파했을 때, 원작자들인 루트비히와 하이만이 2000년 1월 1일 이후 저작권료는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90년대 IMF시기의 사회상을 담은 시대의 기록으로의 가치도 큰 작품이다. 그 긴 시간동안 이 작품에 집중해 개선해 나가다가, 공연히 가장 잘 나갈 때 중단하고, 이후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들을 시도했던 것도 김민기라는 분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배우들과 연주자들이 주는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연출가의 치열한 고민과 시각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작품에 감사했고, 부모님과 아내와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기쁜 하루 였다.

 

P.S. 더 자세한 뮤지컬 관련 영상물과 김민기씨의 인터뷰 영상을 첨부한다.

 

[도시의 품격] 학전, 지하철 1호선 그리고 김민기

 

 

 

[인터뷰 풀영상]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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