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드라마 파친코 (Pachinko, 2022) 이야기3: 파친코에 나타난 기독교의 원형

 

2022년 5월 28일 이인엽 

 


앞에서 언급 했듯 이민진 작가는 한국과 동양적인 스토리에 기독교적인 내러티브를 잘 조화시켰다.

백이삭이 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미혼모인 선자를 아내로 받아들이는 장면은, 선지자 호세아가 부정한 여인 고멜을 받아들인 것이나, 정혼한 마리아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면서도 아내로 받아들인 요셉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백사무엘, 백요셉, 백이삭 형제의 이름이 모두 성경에서 따왔고, 바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요셉은 조카인 선자의 아들 이름을 노아라고 지어 준다. 노아에 이어 태어난게 모자수(모세의 일본식 이름)이고, 모자수의 아들은 솔로몬이다. 이삭과 선자의 아들인 노아와 모자수는 형제지만 다른 길을 가는데, 성경의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이 다른 길을 간 것을 떠오르게 한다. 노아는 생물학적 아버지인 한수의 길을 따라갔고, 모자수는 이삭과 선자의 뜻을 이어간다. 출애굽으로 히브리 노예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한 모세처럼, 모자수는 자이니치로 일본에서 삶을 이어나가며, 다윗을 이어 번영을 누린 솔로몬 처럼 드라마의 솔로몬은 고단했던 자이니치의 삶을 넘어 성공을 꿈꾼다.

 

백이삭은 아버지 때 부터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큰 형인 백사무엘은 1919년 3.1.운동 때 시위를 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온다. 기독교인들은 잘 아는 역사지만, 조선이 망해가던 1907년, 평양대부흥이 일어나 평양 곳곳마다 찬송소리가 들리고, 일요일 아침에는 교회종소리가 시끄러워 늦잠을 못 잘 정도로 기독교가 강성했다. 한양 중심의 유교문화와 대비된 서북지방의 실용적이고 외부 문물에 열려있는 태도도, 기독교를 적극 수용한 배경이 되었다. 망해가는 조선을 살릴 희망으로 교육, 의료, 보건, 계몽 활동을 하는 기독교를 붙잡은 면도 있다.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깊었던 것은, 이 드라마를 통해 한국 기독교의 원형을 더듬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기독교가 온갖 윤리적, 정치적 문제로 개독교라 지탄을 받고, 중세 카톨릭 못지 않게 성직자(목사) 중심, 건물 중심, 헌금 중심이 되어버리고, 친미 자본주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비본질이 신앙의 본질을 압도하고 대체한 듯한 모습이다 보니, 미혼모인 선자를 아내로 삼고, 식민지의 현실에 반응하고 참여하는 목사 백이삭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사실 오늘의 개독교는 하루아침에 탄생한 괴물은 아니다. 일제식민통치가 강화되며 수 많은 목사들과 교회들이 신사참배와 제국주의에 굴복하고, 그에 대한 회개 없이 6.25가 터졌고, 북의 신자들은  남한으로 내려와 교회를 세우고 가장 강력한 친미반공 주의자가 되어 남한의 군사독재에 협력했다. 특히 북에서 공산당에게 집과 가족과 교회를 빼앗긴 서북출신의 실향민 청년들은 서북청년단이라는 무시무시한 극우반공단체를 결성해, 제주도 4.3사건 등에서 잔혹한 학살에 참여했다. 1982년 출판된 책에서 한경직 목사는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 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되었지요”라고 증언했다. 제주도민들 일부는 4.3사건을 피해 일본 오사카 등지로 건너가 자이니치로 살아갔는데, 드라마에서 평양 출신의 개신교 목사 백이삭이 일본 오사카에서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것도 아이러니한 설정이다. 

이런 역사를 생각하며 복잡하고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이 모든 역사의 침전물이 쌓이고 기독교가 왜곡되고 변질되기 전, 평양 대부흥과 초기 기독교의 원형을 가진 백이삭의 모습이,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순수함과 이타적인 모습, 민족의식 등의 면모에서 말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백이삭이 신사참배에 반대해서 체포되지만, 드라마에서는 일본인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천황에 반대하며 노동운동에 관여 해서 체포되는데, 이걸 보고 당황스럽고 기분 나쁘다고 생각한 기독교인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아니 무슨 개신교 목사가,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노동운동’을 하느냐는 것. 나는 이 반응을 보면서, 오늘의 기독교가 역사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이삭의 배경은 1920, 1930년대이다. 이 시점은 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우익극단주의인 파시즘이 부상하며 수많은 이들이 고통받던 시기였다. 조선의 해방과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는 많은 이들, 특히 지식인들은, 진보사상이자 파시즘과 대척점에 있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했다. 예를 들어 1946년 미군정이 진행하고 동아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정치이념을 묻자, 14%가 자본주의를, 70%가 사회주의를, 7%가 공산주의를 선호했다는 결과가 있을 정도였다. 일제의 수탈과 가난을 겪은 이들이 평등하고 기본권이 보장되는 진보적인 사상을 선호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6.25가 일어나고 보도연맹 사건에서 보듯, 과거 사회주의/공산주의적 사상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 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게 학살된다. 오늘도 유럽의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듯,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동일한 것도 아니다. 또한 당시는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인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당연히 6.25 전쟁의 극심한 이념대결과 동족상잔이나, 굴락으로 대표되는 소련의 스탈주의나 모택동의 대약진운동/문화혁명 같은, 공산주의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도 한참 전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나, 우리가 겪어온 비극에 대한 이해없이, “무슨 기독교 목사가 사회주의에 노동운동이야?”라는 반응이 나온다는게 우리 시대 기독교의 비극은 아닐까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이민진 작가의 할아버지가 평양신학교를 나온 목사였다고 하는데, 백이삭의 캐릭터에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으로 독재시절에 미국에 이민 온 교포들은 그 시절의 사고가 남아있다는 말을 한다. 예전에 이민 역사가 오래된 한 교회에 방문했다가 나이 많고 점잖으신 한 집사님이, “박정희 장군께서 5.16 혁명을 하실 때…” 운운 하는 것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한 적이 있다. 반대로 미국의 이민자들 사이에는, 일제시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가서 노예처럼 일하면서도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던, 초기 교회의 흐름도 희미하게 존재한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에서 그 미세한 역사의 자취가 느껴져서, 가슴이 아리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 기독교가 평양대부흥의 기독교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기억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의 모습이 되었는지 고민하고 반성하는 것은 중요하다. 신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좋은 고민을 던져주는 드라마 파친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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