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군대 있을때, 주말에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좀 오래된 영화지만, 가장 인상적인 영화를 꼽으라면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가 생각납니다.

<초록물고기
- ‘정’, ‘꿈’, 그리고 ‘밥’>


2000년 11월 2일 수. Staff duty에서

이인엽

이창동 감독
출연
-한석규(막동)
-심혜진(클럽 여가수 미애)
-문성근(조폭두목-배태곤)

 

 

 


제대한 후 일자리를 찾는 막동. 그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클럽 여가수 미애(심혜진)를 통해 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손가락을 부러뜨려 가면서까지 조직과 큰형님(문성근)이 시키는 일들을 해나가지만 그는 정서적 친밀감을 원하는 순진한 청년이다. 그의 소박한 소망은 뿔뿔이 흩어진 식구들이 함께 모여 식당이라도 하면서 같이 사는 것. 큰형은 알콜 중독자인 경찰관, 작은형은 계란장수(정진영), 막내 여동생은 다방 여 종업원, 엄마는 파출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잠에서 깰 때마다 엄마를 찾고, 흩어져 사는 형들을 만나면서 같이 살아보자고 이야기한다.

그는 정에 목말라하는 인물이다. 어머니와 가족들에게서, 그리고 여가수 미애에게서 정서적인 친밀감을 얻기를 원한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형님의 지시로 상대편 두목을 살해한 후 충격과 두려움 속에 집에 전화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살인의 충격과 죄책감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붙잡아 보려는 안간힘으로 나타난다. 

그는 고향의 뇌성마비인 형에게 엄마가 있는지 물어보고, 엄마가 안 계시자,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다. 형들과 함께 강에서 초록색 물고기를 잡겠다고 하다가 슬리퍼를 잃어버린 이야기를.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그 이야기를 하는 모습 속에, 비록 어두운 세계 속에 있지만 그가 지향하는 곳은 가족들과 정을 나누고 함께 사는 소박한 삶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비정한 약육강식의 사회속에 파괴되어버리는 막동의 인간성. 이 장면에서 한석규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면, 입막음을 위해 막동은 형님의 손에 배신당해 죽임을 당한다. 시간은 흐르고 그의 소망대로 가족들이 모여 식당을 하고 있다. 다만 막동이 없을 뿐. 우연히도 형님과 임신한 미애가 손님으로 들어온다. 미애는 결국 형님을 벗어나지 못했고, 둘은 부부로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은 그들이 누군 지도 모른 채 식당에서 닭을 잡아 형님과 요리해 주려고 하는데, 실수로 놓친 닭은 마당을 뛰어다니고, 모두 닭을 잡으려고 해프닝을 벌인다. 닭은 뇌성마비인 큰형에게 잡히고, 목이 잘리고 음식이 되어 형님과 애인의 밥상에 오른다. 감독은 은근히 막동의 죽음 위에 서있는 인물들의 상황을 묘사하는 듯 하다.

쓸쓸히 남을 위한 ‘음식’이 되어 버린 막동 . . .


오직 막동에게서 집의 사진을 받았던 여가수만이 식당을 나오면서 그 집이 막동의 집이었다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

 

 

 


◎ ‘가족’

한 사람을 떨어뜨려 놓고 보자면 그를 도구화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본다면, 그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다. 그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형제들이 있는 것이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그의 존엄성은 찾아지는 것이다. . .

약육강식의 세계, 극단화된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도구로 전락하고, 돈과 권력이 없는 여성은 몸을 팔고, 남자는 목숨을 팔며, 인간성과 가족은 해체되어 간다. 

 


◎ 여가수 미애 - 심혜진

사랑 받기 원하는 여자. 그녀는 클럽의 여가수이자 형님의 애인이다. 그녀는 형님을 사랑하지 않지만 그가 가진 힘에 묶여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녀는 ‘도구’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현실 속에 괴로워한다. 그녀는 목적 없이 기차를 타곤 하지만 늘 다시 돌아오고 만다. 가고는 싶지만 갈곳이 없는 것이다.

순진한 막동에게서 탈출의 희망을 보지만 왜곡된 사랑으로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형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막동이와 기차여행을 갔을 때 그녀는 함께 달아날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짙은 화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그녀지만 그때만큼은 순진한 얼굴이다. 그때 형님에게서 전화가 오자, 그녀는 막동씨가 하자는 대로하겠다고 한다. ‘형님이 오라시는데 가야죠. . . ’라는 막동의 말에 그녀는 힘없는 웃음 속에 수긍을 하면서도 아쉬워한다. 잠시나마 순수의 삶에 대한 소망이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사랑 받기 원하고,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기 원한다. 어느 날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손님이 욕을 하자 그를 노려보며 꼼짝 않고 내려오지 않는다. 막동이 뛰어들어 욕한 손님을 두들겨 패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잡고서야 내려온다.

여자가, 아니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쾌락’과 ‘성취’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신도 모를 수 있는 자신의 욕구는 ‘사랑’과 ‘존엄성’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정’과 ‘꿈’ 일수도 있겠다.

 

 


◎ ‘형님’ - 문성근

왜곡된 욕망.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위해 심혜진을 붙잡아 두고, 심지어 검찰의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성상납을 시키기도 한다. 결국 막동을 이용해 자신을 위협하는 다른 파 보스(명계남)를 죽이게 하고 입막음을 위해 막동을 자신이 살해한다. 빈털털이로 서울에 와서 오기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거듭 말하는 그... 험한 현실에서 사랑과 의리도 벗어 던질 수 있는 사람. 그는 자신의 왜곡된 욕망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 ‘공간’, 그리고 ‘사회’

이제는 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선 막동의 고향. 초라한 슬레이트집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예전에 그가 형들과 놀던 동네는 그가 군대에 다녀온 후 아파트 단지가 조성이 되어 있다. 이창동 감독은 자신의 영화인 ‘초록물고기’는 공간에 대한 영화이고, ‘박하사탕’은 시간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의 제목인 ‘초록물고기‘도 자신이 그리는 공간 속에서 살지 못하고, 낮선 곳에서 말라 죽어가는 순진한 물고기에 막동을 비유하는 것 같다.
신호를 위반한 계란장수 형에게 뇌물을 받고 거스름돈을 주지 않고 도망가는 교통단속 경찰. 경찰을 쫓아가는 계란 차는 씁쓸한 웃음을 준다. 성을 상납 받고 조직을 눈감아 주는 검사. 이런 것들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보여준다.

 


◎ 정, 꿈, 그리고 밥

하지만 이러한 현실 비판에도 세상을 보는 감독의 눈은 정말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감독의 시선이 ‘정’과 ‘꿈’을 원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기에. . .

‘정’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 .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도 ‘정’이다.
나에게 ‘정’이 있다면. ‘정’을 줄 수 있다면. . .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할 수 있을 텐데 . . .
이 세상을 위한 ‘음식’이 되어준, ‘밥’이 되어준 그 ‘정’을 깨닫는다면,
나도 누군가를 위한 ‘밥’이 되어 주는,
그 ‘꿈’을 꿀 수 있을 텐데 . . . . . . . . . . . . . .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