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99년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매트릭스를 꼽을것 같습니다. 
벌써 꽤 오래된 영화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라서 긴 영화평이지만 올려 봅니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것을 보기보다, '자신이 보기원하는 것을 보는 식'의 영화평일지 모르겠지만, 매트릭스에는 참 많은 기독교적 이미지와, 진리, 자유에 대한 개념이 담겨있습니다. 제가 졸업할때 냈던 개인 문집에 담겨있던 글인데,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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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The Matrix)

-진실에 대한 투쟁>

2002.11.11 이 인엽 

 

 

 


⊙ 들어가며 

나에게는 영화에 대한 기본적 전제가 있다. 

먼저 첫째로 영화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재가 외계인이든, 기계든 결국 영화는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인간이요 영화의 대상, 영화를 보는 관객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영화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관점과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두번째는 어떤 영화든지 나름의 '세계관'과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단순한 영화라도 거기에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고 나름의 해석이 있다.(심지어는 액션영화도 '강한자가 이긴다', '주인공은 죽지 않고 승리한다'라는 등의 암묵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세계관이란 간단히 말해 세상은 어떤 곳이고(세상에 대한 해석과 이해), 무엇이 문제이며(근본적 문제인식),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해결책 제시)라는 질문에 대한 통합적 대답이다. 

물론 영화가 허구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열광하는 것은 그 안에 현실과의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대와 심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와 세계관이다. 현대영화는 특수효과는 폭발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계속해서 메시지의 빈곤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아무리 요란하게 특수효과가 터지고 엄청난 물량의 스펙타클이 펼쳐져도, 관객에게 어필하는 메시지가 없다면 그것은 그저 공허한 쇼일 뿐이다. 그 안에 인간, 삶, 메시지, 세계관이 빠진다면... 

예를 들어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경우 관객들은 열광했지만 비평가들은 스토리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역시 위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 결국 정말 좋은 영화는 눈을 즐겁게 하기 보다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 영화가 아닐까? 

그리고 크리스챤에게는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제시된 세계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성경적 세계관과 비교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책을 하나 추천하고 싶다. 영화에 대해 쓰여진 책은 많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쓰여진 영화비평서는 드물다. "영화, 읽는 즐거움, 보는 기쁨"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은데, 이 책은 영화를 간단히 몇 개의 장르로 나누고 그 중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을 분석하고 있는 짧고 흥미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기독교적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매트릭스를 보고 두 가지, 즉 재미, 특수효과 등의 외적인 요소와 메시지와 스토리라는 내적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영화였다고 느꼈다.

먼저 외적인 요소로는 공각 기동대 등의 제패니메이션의 영향과, 오우삼 감독의 액션을 특징적으로 들 수 있다. 소재도 특이하고 촬영, 편집 등 여러 면에서 첨단기술이 사용되었으며 제작비도 엄청나게 들어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매트릭스에는 단순한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볼 수 없는 세계관과 메시지가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워쇼스키 형제는 치밀한 스토리와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 

 


⊙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What is matrix?)

먼저는 '매트릭스'를 통한 가상공간과 현실세계, 그리고 거짓과 진실, 통제와 자유에 대한 비판이다. 

미래세계는 환경오염과 컴퓨터의 지배로 지구는 황폐화되었고, 인간은 컴퓨터에 의해 인공자궁에서 양육되어,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매트릭스(Matrix)속에서 모든 감각을 컴퓨터와 연결하고 가상을 현실로 느끼며 살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가? 만일 완벽한 가상공간을 만들 수가 있다면. 그리고 느낌이란 '뇌에 전달된 정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무엇인가? 거짓에 속고 있는, 착취당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이다. 다시 말해 가상공간, 거짓된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고 '진실'을 보지 못한 채, '거짓'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이 혼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모든 것이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물을 보면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 거짓은 생명을 줄 수 없다. 오히려 그 거짓의 힘으로 무언가를 착취하거나 통제한다.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것이 무척 특이하게 보이겠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오히려 매트릭스의 비참한 모습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것이 바로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이다. 음모이론은 세계의 배후를 움직이는 어떤 거대한 권력과 그들의 음모로 세상을 설명한다. 그 정도의 극단은 아니지만,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개연성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스를 보자. 우리는 뉴스는 곧 사실이며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당연히 그것은 어떠한 관점과 목적을 가지고 편집된 사실이다. 우리는 매스컴이나 권력에 의해 사실이 조작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경험해 왔다. 그것은 무엇인가? 조작되고 편집된 현실은 그대로의 현실이 아닌 또 하나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권력이 된다. 다른 예로 드라마를 보자. 사회가 불안하고 부조리한데도, 만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사회의 불안을 희석시킬 수도 있다. 정권이나 권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충격적인 사건을 보도함으로서, 파장을 줄이고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강대국의 이권이 개입된 코소보 사태는 날마다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방영되지만 아프리카의 수많은 내전들은 아무에게도 들려지지 않는다. 그것이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원리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논리이다. 광고와 유행에 춤을 추는 소비자들, 인간의 욕구와 충동을 자극해서 소비와 중독을 일으키며 자본의 권력은 세상을 지배한다. 또한 이러한 가상현실, 가상공간은 우리에게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해져 있다. 이제는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인터넷.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오히려 우리를 지배할 권력이 될 수 있으며, 또한 무한한 것 같지만 역시 이것도 '닫힌 체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영화속의 매트릭스에서 인간들은 가상현실의 노예가 되어 세상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가상현실이 주는 쾌락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잊고 있다. 우리 역시 현실에 존재하는 '매트릭스' 속에서 사회의 부조리, 부패와 타락, 억압받는 인간, 중독된 인간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바로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매트릭스이다. (Matrix exists all around us.)

그리고 신앙적 관점으로 보자면 이세상의 근본적 문제인 '죄악'과 그 '시스템'이 바로 매트릭스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인간은 진실이 무엇인지 볼 수 없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그 권력 안에 종속되며, 그로 인해 착취당하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신을 잊게 되고, 그분으로 부터 멀어지며, 죄악속에 종속된다는 사실이다. 이세상의 모든 학문과 사상의 배후에는 이러한 악한 영적 세력의 음모가 있고, 이것은 조금만 세상에 대해서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많은 세상사람들은 그것에 속아서 살고 있고, 또한 많은 크리스챤들도 그러한 거짓된 사상과 죄악의 시스템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거나, 심지어는 그안에 동일하게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매트릭스에는 그것으로 인해 이익과 권력을 얻는 집단이 있다. '기계들' - 인간을 속여 가상현실속에 살게 하고 인간을 에너지로 바꿔서 사용한다는 것은 재미있고 개연성이 있는 은유이다. 그것은 많은 대중을 속이고 우매하게 하고 그들에게서 권리와 이익을 빼앗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세력, 우리를 지배하는 힘, 사회를 포장하는 어떤 거짓된 체계, 개개인의 삶에 뿌리내린 있는 죄악, 그리고 구조화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죄악의 시스템을 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의 정사와 권세, 그리고 권세 잡은 자를 상징한다. 

매트릭스에서 처음으로 몸과 함께 빠져 나온 네오는 근육과 눈을 쓰질 못한다. 가상현실을 뇌로만 주입 받았고, 자신의 진짜 육체를 한번도 써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빛으로 나온 두더지와 같다고나 할까? 자신들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참된 현실,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함께 굴러가는 많은 대중들. 이들에게 진실의 빛이 비춰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만날때, 그분의 진리를 만날때, 비로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또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리고 그 진리는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선포하셨다. 

 


⊙ 매트릭스와 메시야 (Matrix and the Messiah)

이러한 비참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에서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소망과 믿음, 그리고 희생이 보여진다. 진실과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모피어스와 그의 동료들이다. 그들은 이러한 현실에 눈을 뜨고 저항하는 자들이며 '그'인 네오에게 그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네오는 서서히 진실에 눈을 떠가고 자신의 소명을 자각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깊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예언과 메시야에 대한 메시지, 묵시록적인 분위기, 신념, 믿음과 그에 대한 희생과 용기이다.

'그'의 메시야에 대한 자의식은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운명과 믿음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모피어스는 네오를 메시야로 굳게 믿고 그를 데리고 예언자에게로 간다. 그러나 그녀는 네오에게 '그'가 아니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네오를 메시야로 굳게 믿는 모피어스는 그를 위해 대신 희생하고 스미스에게 고문을 당해 시온의 비밀코드를 불게 될 위기에 처한다. 코드를 지키기 위해 모피어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 네오는 예언자가 자신이 '그'가 아니라고 했음을 말하고 모피스어를 구하러 트린과 함께 매트릭스로 들어간다. 결국 그들은 모피어스를 구해내고 네오가 역시 '그' 였음이 드러나는데... 

이 부분에 대해 통신에 영화평을 올린 어떤 이는 불교사상, 즉 '특별한 어떤 존재가 아닌 도를 깨달은 모든 이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이라고 해석하는걸 읽었다. 한편 보면 예언자의 집에 있던 아이가 스푼을 구부리며 'There is no spoon'하는 말도 동양철학의 한 마디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내용을 메시야의 자기포기, 자기 부인과 희생이라는 부분에서 강조하고 싶다. 먼저는 자신의 믿음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모피어스의 희생에서 숭고함을 발견할 수 있다. (모피스와 저항군들의 믿음과 희생의 이미지는 무척 진지하게 묘사되었다) 그리고 네오는 즉 자신이 메시야인가라는 질문으로 인한 갈등에서 메시야로서의 위치보다 진실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것이 오히려 그가 진짜 '그'라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이 영화의 여러 가지 부분이 성경에서 소재와 이미지를 차용했지만 특히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자기부인의 모습에서 차용느낌이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그는 매트릭스와 같은 이 세상의 죄악과 거짓을 폭로하고 자신의 메시야임과 새로운 나라를 선포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를 시기하는 종교권력과 반란을 우려하는 정치권력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게 된다. 중죄수들에게 해당하는 잔인하고 치욕스런 십자가형의 죽음은 결국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야가 아니라는것, 혹은 실패한 메시야라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 듯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기포기와 희생속에서 그는 인류의 죄를 대속함으로써, 메시야로서의 구원을 완성하게 되며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실패가 승리로 이어지고, 실망이 확신이되는 아이러니에서 구원의 신비가 나타난다. 


다른 측면에서 운명과 의지의 갈등을 볼 수도 있다. 이 둘의 갈등 속에서 운명의 지배로 의지가 굴종하면 포기와 체념의 사상이 되며, 의지의 승리로 운명을 파괴 할 때는 절대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자기희생'이라는 고리는 운명과 의지를 연결시킨다. 

모피어스는 예언자가 그녀의 할 말을 정확히 했고 메시야로 예언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메시야로서의 희생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것은 자신이 '그'라고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이다. 잘못된 자기 확신은 자신과 타인에게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이 완결되고 절대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럴 때 그는 자신을 비울 수 없고 자신을 희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부인' - 그곳에서 참된 용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용기가 세상을 구원한다. 

이 영화의 많은 인물들은 신약 복음서에서 그 이미지를 가져온 듯 하다. 먼저 모피어스는 세례요한의 이미지와 상당히 유사하다.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 그리고 그 메시야를 믿고 자신을 희생하는 믿음과 용기가 무척 감명 깊게 다가온다. 

또한 흥미있는 인물은 '사이퍼'이다. 지나치게 노골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그는 가롯유다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스테이크를 먹으며 거래를 하는 스미스 요원과 사이퍼의 모습은 은30냥과 가룟유다를 생각하게 한다. 진실에 대한 선택이후 계속되는 투쟁과 힘겨운 삶에 지친 그는, 트린에 대한 사랑의 좌절이 계기가 되어 선택을 후회하고, 오히려 거짓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바란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떠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가 달콤한 안정과 굴종의 대가를 누리길 원했듯이. 

진리의 세계 와 거짓된 세계 어느 곳에 자유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무척 중요하다. 많은 경우 '매트릭스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진실이 구속이고 거짓이 자유라고 판단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자신이 자유인이라고 느끼는 너무나도 많은 노예들이 있다. 자신의 사슬을 장식품이라 믿으며 자신이 누구에게 지배되고 있으며 어떻게 착취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더 많은, 더 무거운 사슬을 걸고 있는 모습들. 

물론 진실의 선택에 대해서도 분명히 치러야할 대가가 있다. 그러나 '거짓에 대한 선택의 대가'는 '진실의 대가'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하고 참혹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은 오히려 감옥이 너무나 커져서 감옥 밖의 공간보다 더 넓어 보이는 듯 하다. 그렇게 되면, 우습지만 이곳이 감옥인지 저곳이 감옥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히 감옥은 존재한다. 아무리 다양하고 많은 것을 할 수 있어도 내 힘으로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없다면 그곳은 감옥이다. 자물쇠가 없어도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다면 그것은 감옥이다. 선택의 자유를 그 마음의 감옥에 이미 구속당한 자는 어디에 있어도 이미 감옥이다. 그곳은 닫힌 체계이며 그 끝은 절망이다. 

원화평 감독이 담당한 무술씬도 상당히 흥미가 있다. 모피어스는 무술보다도 자의식에 대해 가르친다. 자신을 아는 것. 삶과 투쟁의 원리들을 배우는 것. 그것은 어떠한 기교보다, 싸움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모피어스와 네오의 멘토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것 - 그것이 힘이다. know yourself! 네오는 이중신분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 토마스 앤더슨과 해커 네오. 스미스 요원은 계속 그를 '토마스 앤더슨'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다. 그러나 네오는 그를 물리친뒤, 자신의 이름이 '네오'라고 말한다. 

결국 부활한 네오는 새로운 존재가 되고. 그의 눈에 요원들은 하나의 전기신호로 보인다. 그리고 네오는 스미스요원의 몸 속으로 들어가 파괴하고 나오고(악의 속으로 들어가 그 System을 파괴한다) 매트릭스에는 System Failure라는 메시지가 뜬다. 

날아오르는 네오 : 통제없는 세상 참 세상을 만들리라... 

나는 영화를 보면서 제작자가 일단 성경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과 구원의 원리에 대해서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 이미지 만을 차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미지 역시 성경에 대한 이해가 보통을 넘는 다고 생각된다. 워쇼스키 형제는 인터뷰에서 매트릭스도 스타워즈처럼 전편이나 후편이 있을수 있다고 했다는데 정말 전편이나 후편이 제작된다면 그 내용을 보고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다. 

영화를 보고 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먼저는 부활에 대한 처리에서이다. 영화에서는 네오가 스미스의 총에 맞아 죽은 뒤 트린과의 사랑에 의한 키스로 부활하는데, 그것보다는 고통받고 속아서 살고 있는 비참한 인간들에 대한 사랑과 구원을 위한 부활, 즉 이전까지 다루어졌던 메시야적 이미지를 좀더 강조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모피스와 트리니티의 연기는 아주 좋았다. 다만 키아누 리브스의 카리스마가 약한 것이 좀 아쉽다. 처음에 모피스로부터 현실과 메시야로서의 자신을 자각해 나가는 과정은 괜찮았는데, 나중에는 좀더 성장하고 강한 모습이 되어, 모피스를 능가해 자신의 소명과 믿음속에 강력한 메시야로서의 면모를 보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영화의 전반적인 이미지와 스타일에 흐르는 묵시록적인 분위기, 그리고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희생과 자기포기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는 무척이나 인상깊게 다가왔다. 형식과 내용성 모두에서 상당히 수준이 있는 괜찮은 영화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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