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영웅 (2002, 장예모 감독): 뛰어난 액션, 위험한 세계관

2003. 1.30. 이인엽 

 

 


영화평을 쓰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수고스러운 일이다. 
주로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 나의 경우, 영화를 접하면,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휘몰아친다. 

마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생각들을, 체계적인 글로 정리해내는 과정은, 노력과 인내심을 요한다.
그래서 멋진 글을 만들려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글의 속도 덕에, 완성되기 전에 손을 놓아 버린 적도 많다. 
그 예로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였던 반지에 제왕 1편에 대한 평은, 1년이 다 되도록 완성을 못했다. 

오늘 본 영화 '영웅'도 이 생각 저 생각을 주는 영화였지만, 
오늘은 이런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그냥 엉성한 대로 글을 쏟아내 봐야겠다. 
솔직히 이 영화가 그렇게 복잡하게 쓸 내용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줄거리와 결말을 담고 있으니, 아직 안보신 분은 주의하시길. 

 

------------------------------------------------------------

1. 무술장면

'영웅'. 여러 가지 말이 많지만, 한 마디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캐스팅이나 무술장면이나 영상미 등등에서. 

이 영화는 '와호장룡'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액션을 보여주지만, 여타 무협영화처럼 지나치게 만화 같은 액션을 보여주거나, 어지럽게 휘돌아가면서 눈을 흐리지도 않고, 대신 신비하면서도 아주 사실적인 액션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인물과 검의 움직임은 지극히 세밀하고 사실적이며, 무술장면에 동반되는 음향효과 또한 뛰어나다. 

특히 초반에 '장천(견자단)'과 '무명(이연걸)'의 결전은, 창의 무게감과 그럼에도 그에 구애받지 않는 극도의 유연성과 속도감, 무기가 몸을 때릴 때의 충격까지 너무나 강렬하고 사실적이어서, 숨을 멎게 할 정도이다. 아마 무협영화 역사에서 명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영상을 링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eeoEpmyb2Y

 

참고로 영화 개봉시점에서 다른 배우들만큼 알려져 있진 않지만 '장천'을 연기한 견자단도 무협영화에 자주 출연해온 배우이다. 얼굴이 날카롭고 말라 보이는 인상이라 주인공역에는 적당하지 않아선지 조연으로 많이 나왔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영화 '신용문객잔'에서 엄청난 무공실력의 내시 우두머리로 나오기도 했다. '신정무문'이라는 TV시리즈에서 주연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카리스마가 약했던 것 같다. 그래도 여기저기 많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무술실력이 탁월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한편, '영웅'에서는 짧지만 상당히 무게 있는 연기와, 놀라운 창술을 보여주어 이전과 달리,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2. 색감과 영상미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장예모 감독의 재능이 유감없이 드러난 '색감'과 '영상미'라고 할 수 있다.

'무명'과 '영정-진시황(진도명)'의 대화에서, 세 명의 고수를 꺾고 세 개의 무기를 얻어오는 과정에 대해, 두 사람은 세 가지(혹은 네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이야기마다 인물들의 옷과 배경의 색감이 달라진다. 

처음, '무명'이 꾸며낸 가짜 이야기인, '붉은 옷'의 이야기(편의상 옷 색깔로 이야기들을 분류해 보았다)에서, 

주인공들은 붉은 색과 통하는 '충동'과 '열정'에 사로잡혀, 서로를 죽이고 파멸을 맞는다. 죽어 가는 '월이(장쯔이)'의 눈에서 노란 낙엽과 화면은 붉게 물들어 간다. 조나라 사람들의 옷도 붉은 색이고, 붓글씨도 붉은 색이고, 온통 붉은 색이다. 

 

 

 

 

'영정'이 추리한 두 번째 이야기인 '청색 옷'의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은 청색이 주는 느낌과도 같이 '침착'하게 '대의(大義)'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 '파검(양조위)'과 '무명'은 거울처럼 푸르른 호수 위에서 대결을 벌인다. '무명'의 무공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방도 푸른색이고 무너지는 대나무 책들도 푸른색이다. (그러고 보니, 장예모가 컬러 렌즈를 썼다는 말도 들은 것 같다.)

 

 




 

'파검'의 회상 속에서 잠시 보여지는 '녹색 옷'의 장면에서, 
'비설(장만옥)'과 '파검'은 사랑을 나누고, '청담사상'을 말하는 듯, 거사가 끝난 후에 무사도 검도 없는 곳에서 둘만의 삶을 살자고 약속하며, 이들의 바램을 보여 주듯이, 푸르른 산이 배경으로 비쳐진다. 

 

 

 


마지막으로, '현실'이라고 볼 수 있는 '백색 옷'의 이야기에서 
인물들의 특징은 모호하다. '파검'과 '비설'은 앞에서 나온 여러 가지 내면의 '동기'들, 즉, '열정'과, '대의'와, 개인적인 '소망', 그리고 그것을 압도하는 '현실('천하(天下)'라는 글자가 말해주는)'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현실을 인정하며 죽음을 맞는다. 

 

 



3. 불편한 메시지

앞에서 말했듯 '영웅'의 무술 씬은 쾌감을 주고, 영상미는 아름답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결론이 주는 '메시지'는, 아무래도 불편함과 반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비처럼 퍼부어지는 화살, 천지를 울리는 군사들의 외침, 개미떼와 같이 몰려와 '법치(法治)'를 외치는 신하들이 보여주는 권력의 힘 앞에서, 그 화신(化身)인 '영정'을 꺾을 유일한 힘을 가진 주인공은, 
천하통일과 안정을 위해서 '폭압 적인 체제지만 굴복할 수밖에 없다'라는 '차악'을 선택하고 죽음을 맞는다. 
숙적인 '영정'과 그를 암살하려했던 '파검'의 생각이, '천하통일' 앞에서 정확히 일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힘과 법률에 의한 진사황의 평화가 과연 얼마나 버티었는가? 2대도 못 가서 무너진 그 평화가, 과연 백성을 위한 대의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평화가 이제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팍스 로마나, 팍스 브리태니카, 팍스 아메리카나와 무엇이 다른가? 전해오는 유명한 이야기로, 진시황은 신선에게서 '망진자호'(亡秦者胡 → 진을 망하게 하는 자가 호(胡)다)라는 사자성어를 받고, '호'(胡)를 흉노로 여기고 만리장성을 쌓았으나 그 '호'(胡)는 사실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막내아들 이세황제 호해의 '호'(胡)'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사실. 


초인적인 능력이나, 초인적인 이상을 가진 몇몇이 지겹도록 세상을 구해내는 헐리우드 식의 이야기도 권태를 주지만, 이런 식의 체념과 힘에 대한 굴종은 더 심각하다. 

적어도 영화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이다)에서의 인물들은, 즉, 진실을 알고 운명에 대항할 힘을 가진 소수들은, 승산 없는 싸움이지만, 체제에 도전함으로써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도 이 영화는 '와호장룡'을 떠올리게 한다. 중력에 구애받지 않는 듯 경공술로 공중을 날아다니고, 새처럼 나뭇가지 위에 서있던 인물들이, 결국은 운명의 사슬에 묶여 모두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 와호장룡의 김빠지는 결말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이런 식의 세계관은 '중화사상'과 연결시켜볼 때, 위험한 민족주의로 이용될 수 있다. 공산당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는 유래 없는 실험을 하고 있는 중국에 있어,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인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은, 결국 중화사상이고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부추기는 것이라 생각된다. 크게 볼 때 중화사상은 결국 중국 민족주의 아닌가? 

이 영화를, '공산주의 체제에 약간의(?) 문제가 있으나, 중국민족의 옛 영화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분열로 나타난 백년국치의 시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민주화 같은 문제는 접어두고, '당'의 명령에 따르라'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런 점에서 고이즈미의 야스꾸니 방문이 보여주는 일본의 위협도 문제지만, '중국과 그 미래'도 동북아시아나 세계의 평화에 있어, 적지 않은 잠재적 위협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생겨난다. 

한편, 우리의 상황은 아직도 영화 '쉬리'나 'JSA',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이중간첩' 등에서 묘사하는 것과 그리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니, 멋진 영화를 보고도 한 켠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면 할말은 없다. 
그리고 어쨌거나 영화 자체로 본다면 이 영화는 상당히 추천할 만 하다. 
그러나 메시지만은,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사실이다. 

 

 

 

 

메시지 만으로는 매트릭스가 훨씬 마음에 든다. 


And, from the Movie 'The Matrix'

The Matrix is everywhere, it's all around us. . .

It is the world that has been pulled over your eyes to blind you from the truth.

When the Matrix was first built there was a man born inside that had the ability to change what he wanted, to remake the Matrix as he saw fit. It was this man that freed the first of us and taught us the secret of the war; control the Matrix and you control the future. 

When he died, the Oracle at the temple of Zion prophesied his return and envisioned an end to the war and freedom for our people. 
That is why there are those of us that have spent our entire lives 
searching the Matrix, 

looking for Him.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