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영화와세계관1.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신을 향한 분노


2003.11.12 이인엽 

 




 


SF영화의 고전이 되어 버린 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 


영화에는, 인간보다 탁월한 신체적 능력이 있지만, 수명이 짧은 리플리컨트라는 인조인간이 나온다. 리플리컨트는 영어 "replicate(복제하다)"에서 온 용어로 복제인간이라는 뜻에 가깝다. 


인간 대신 우주에서 전쟁과 노동을 수행하던 이들 중 몇 명이 (룻거 하우어, 데릴 한나 등이 연기), 자신들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연장할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우주에서 탈주를 해 지구로 돌아와 자신들을 만든 회사의 회장을 찾아간다.


체스를 즐기는 냉정한 이미지의 회장은, 절박한 리플리컨트(룻거 하우어)에게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시도한 어떤 방법도 실패로 돌아갔다고 하며, 운명을 받아들이라 말한다. 그리고는 리플리컨트를 '돌아온 탕자(prodigal son)'이라고 부르며 끌어안는다. 그러나 리플리컨트는 자신을 만들었지만 생존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 그에게 분노하며, 강력한 힘으로 회장의 머리를 눌러 죽여버린다. 



마지막으로 남은 리플리컨트는 자신을 추적하는 주인공 데커드 형사(해리슨 포드)와 부서져 가는 빌딩에서 처절하게 싸움을 하는데, 수명이 다 되어 근육이 마비되기 시작하자, 그것을 막기 위해 자기 손에 못을 박아 넣는다.

결국 주인공은 리플리컨트를 당하지 못하고, 벽에 매달려 떨어지기 일보직전이 되는데, 그를 끌어올린 리플리컨트는 죽음을 앞두고, “네가 우주에 가보았느냐? 은하계를 보았느냐?”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더니, 수명이 다 되어 죽고 만다. 


과거에 대한 다른 사람의 기억을 주입 받고 그것이 자신의 과거라고 믿는 리플리컨트들. 문제는 엄밀한 테스트를 통하지 않고는 이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데커드의 테스트를 통해 회장의 비서 레이첼(숀 영)도 리플리컨트라는게 확인되는데, 그녀는 레자신의 추억과 과거의 사진들마저도 조작된 것임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리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주인공(해리슨 포드)마저도 리플리컨트일 수 있다는 암시들이 영화 곳곳에 깔려있다.

늘 종이 접기로 만든 동물을 남기는 의문의 경찰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니콘은, 주인공 데커드 형사가 꿈속에서 늘 만나는 동물이었다. 결국 이를 통해 영화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게 주체성은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 의해서 운명 지워진 존재는 아닌가?


영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이 만든 리플리컨트의 관계를 통해 나타난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암시이다.

리플리컨트를 인간으로 놓는다면 회장은 창조자를 상징한다. 회장은 자신을 찾아온 리플리컨트를 돌아온 탕자(the prodigal son)라고 부르며, 리플리컨트는 회장을 “fucker”라고 부르는데, 감독판에는 “father(아버지)”라고 부른다. 즉, 회장과 리플리컨트의 관계는, 성경의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뒤틀어놓은 듯한 모습이며, 이는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와도 대칭된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난 창조자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인간을 창조해 놓고 구원의 길은 제시해 주지 않는 존재이다. 창조하고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 이신론적인 신이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실존적 두려움과 공포에 공감하지 않고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냉정한 과학자 같은 신이다.  


오히려 리플리컨트는 이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창조자를 파괴해버리고 인본주의적인 죽음을 맞는다.


혹자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죄의 문제’, ‘죽음과 고통의 문제’, 그리고 ‘무의미의 문제’라고 했다.

여기서는 특히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인간은 이와 같이 자신의 한계상황을 만날 때 구원과 초월의 길을 찾는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가 실패할 때 인간은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이 분노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그 분노는 이 모든 것을 있게 한 존재, 즉 창조자에게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생각 해 보라.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진정 창조자에게 있는 것인가?

신은 정말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내지 않았는가? 



리플리컨트는 데커드와 싸우면서 자신의 근육이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손에 못을 박아 넣고, 그가 차가운 빗속에 죽음을 맞이하자 그 뒤에서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결국 회장과 리플리컨트의 관계가 신-인간, 아버지-탕자의 관계를 뒤틀었다면, 리플리컨트의 죽음에서 우리는 메시야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손에 못이 박힌채 빗속에 죽음을 맞는 존재. 



이런 종교적인 이미지들을 찾아내는 것도 흥미롭고, 모든 종류의 철학과 세계관이 다루는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SF영화속에서 찾아내는 것도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결국 이 영화들은 인간은 누구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이며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고 구원의 길은 있는가, 그리고 신은 어떤 존재인가 직 간접적으로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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