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영화와 세계관3. 다크 시티(Dark City) : 신들의 음모, 그리고 계몽의 세계관


 

2003.11.18 이인엽





(스포일러 있음)


12시만 되면 사람들은 모두 잠에 빠진다. 그리고 회색 빛의 존재들 - 외계인들은 인간에게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그 중에 한 명, 주인공(루퍼스 시웰)은 갑자기 기억을 주입 당하던 중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더 이상 잠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가 사람들의 기억을 뒤바꿔 놓고 세상을 움직이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에게는 외계인들만 가지고 있었던 튜닝 능력(텔레파시로 물질을 움직이고 만들어 낼 수 있는)이 생겨나고 외계인들은 그런 그를, 제거하려고 한다.





주인공은 왠지 모르게 어렴풋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 쉘 비치라는 곳을 찾아가려고 하지만, 아무도 그곳을 정확히 알지 못하며, 가는 길은 모두 막혀있다. 

결국 도착한 쉘 비치라는 곳은, 벽에 그려있는 그림이었고, 동시에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세상의 끝(‘트루먼 쇼’나 ‘13층’의 설정과 똑같이)이었다. 결국 주인공의 기억도 만들어진 것이었다.(이 부분은 ‘블레이드 러너’와도 유사하다) 

 

 







주인공은 진실을 알기 위해 그 벽을 부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벽이 무너지자, 황당하게도 우주공간이 나타나고, 이제까지 살아온 도시는 외계인들이 우주에 만들어 놓은 인공도시라는 것이 드러난다. 외계인들은 지구에서 이들을 납치해 자기들이 만든 실험실에서 살게 해왔던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된 주인공은 외계인들의 지도자와 최후의 대결을 맞게 되고, 결국 그들을 물리친다. 이제 주인공은 자신의 뜻대로 세계를 변화시킨다. 

튜닝 능력으로 바다를 만들고 자신의 꿈이었던 쉘 비치를 창조해 내는 주인공. 그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아내(제니퍼 코넬리)를 만나 쉘 비치로 떠나며 영화는 끝난다.






역시 여기서 나타난 외계인-인간의 구도를, 신과 인간의 구도로 설명해 본다면, 이곳에서의 신은 어떠한 절대자들이 아니라, 인간보다 약간 진화한 다른 종족일 뿐이다. 

이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튜닝능력)으로 인간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목적(멸종하는 자신들이 생존 할 수 있는 방법을 얻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의문을 푸는 것)을 위해 인간에게 실험을 행한다. 

실제로 라에리안 무브먼트 같은 단체에서는, 신이 단지 진보한 과학기술을 소유한 외계인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라는 소설도 비슷한 상황을 설정한다. 연관성이 많으므로 줄거리를 설명해 보겠다. 

개미들의 언어(페로몬으로 전달되는)를 알아낸 과학자가 개미세계와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 장치를 만들었다. 그것은 리빙스턴 박사로 이름붙여진 인조 개미로 페로몬을 분비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인간과 일반 개미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실험실에 들어간 과학자의 아들인 개구쟁이 소년이 이를 이용해 ‘손가락들(인간들)’은 신이고 개미들은 신을 숭배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자, 개미들 사이에서 신을 숭배해야 한다는 파와 그렇지 않다는 파로 분열이 일어난다. 

나중에 이를 안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의 장난으로 인해 광신적인 종교가 개미들 사이에 형성된 것을 우려한다. 


결국 저자는 이 비유를 통해 신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과 그로 인한 역사의 무모함 들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개미들에게 손가락이 그러하듯이, 인간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다소 진보한 존재들(예를 들어 외계인 같은)일 수 있고, 그(들)의 메시지라는 것도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이 보낸 손가락들의 메시지를 듣고 개미들이 전쟁을 떠나는 장의 시작에, 저자가 십자군 전쟁에 대한 글을 인용해 놓은 것도, 인간과 개미의 두 세계를 통해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암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인간과 개미의 매개체로 만든 인조 개미의 이름이 리빙스턴 박사(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의 이름)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또한 잠깐 언급되는 ‘뉘아주 공동체’는 ‘뉴에이지 공동체’를 말하는데 전체적으로 이 책의 사상도 뉴에이지와 많은 관련이 있다. 


넓게 보면 결국 창세기에서 뱀이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며 한 말 - “신은 인간보다 한 단계 진보한 존재일 뿐이고, 선악과를 통해 인간도 신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신이 그것을 두려워 하여 진실을 감추고 있다. - 에 포함되는 가설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다크시티로 돌아가 이제 영화에 나타난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살펴보자. 

여기서 나타나는 초월자, 통제자의 이미지는 진실을 숨기고 음모를 꾸미는 존재이다. 여기서 외계인들만이 가졌던 ‘튜닝’ 능력은 초월자와 인간을 구분하는 특성이고 일종의 금단의 열매이다. 당연히 초월자는 그런 능력을 이용해 인간을 통제하고 조작하는데, 인간중에서 그런 능력을 갖게 되는 자가 나타나자 비상이 걸린다. 


그러나 결국 초월자에 맞서서 자유를 쟁취하는 인간을 막지못한다. 이제 드디어 초월자의 능력을 갖게된 주인공은, 인간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그리고 신이 금지했던, 자신이 꿈꾸는 낙원- 쉘 비치 -로 향한다. 


트루먼 쇼가 통제자인 신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놓고, 인간이 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던 것과 유사하다.


다크 시티(Dark City)라는 제목은 다크 에이지(Dark Age)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런 점에서 '계몽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요소들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외계인 한 명이 죽어가면서 묻는다. 무얼 할거냐고. 주인공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꿔 보겠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지만, 열린 결말을 가정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계몽의 실험'이 많은 혼돈과 실패를 가져온 것처럼 말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신본주의와 인본주의가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놓고, 인본주의를 악마화하기도 한다. 문제는 인본주의가 극복한 것이, 진정한 신본주의인지, 신본주의를 가장한 종교적 억압인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참된 신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신앞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함, 모든 차별의 배제, 사제계급의 지배가 아닌 만인제사장설 등으로 연결된다면 오히려 인본주의와 연결될 수도 있다. 

반면에 모든 전통과 가치를 배격하고, 인간의 판단과 기준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때, 인간의 존엄성이 극단적으로 파괴되는 일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1,2차대전과 파시즘, 전체주의적 스탈린주의 등등 말이다. 


절대성을 몰아내고 스스로에게 절대성을 부여한 인간, 그들이 만든 쉘 비치는 정말 낙원이었는가? 


이런 영화들에서 반복되는 주제와 구도들이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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