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영화와세계관2. 트루먼쇼(Truman Show): 통제자 하나님


 

2003.11.13


이인엽 (http://blog.naver.com/inyeop2)


 


 







 


트루먼의 세계는 프로듀서(에드 해리스)가 통제하고 있다. 

그가 모든 것을 만들었고 모든 것을 계획하고 움직인다. 트루먼(짐 캐리)은 그것을 모르고 꼭두각시처럼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인가, 그는 세상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Truman'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True Man'이 아닌, 조작된 세계속의 'Manipulated Man'이었던 것이다.



결국 누군가 자신의 세상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세상의 끝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단 한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진정한 사랑을 느꼈던 여성의 사진을 품고, 독수리 머리(인간의 의지를 상징하는)가 달린 배를 타고 말이다. 


이를 알게된 프로듀서는, 밤 시간인데도 해를 올리고 파도와 폭풍을 일으켜 그를 잡아두려고 한다. 그러나 트루먼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세상의 끝’에 다다른다. 


결국 프로듀서는 직접 트루먼과 대화를 하기로 한다. 

태양이 번쩍 빛나면서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너의 인생을 탄생부터 지켜보았다. 바깥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있으나 내가 만든 세계는 안전하고 너는 그 안에 머물러야 한다.“ 



이말에 일면의 진실은 있다. 트루먼은 평생 그의 통제 안에서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이 말은 오만과 거짓으로 가득차 있다. 누가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 

그의 이데올로기는 결국 트루먼을 붙잡아 두어 자신의 이익과 명성을 위해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거짓일 뿐이다. 


그러나 트루먼은 당당히 그의 말을 거부하고 세상으로 나간다. 

아마도 그의 결정은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이다 : 


"나는 당신이 만든 거짓의 공간에서 거짓된 안전속에 살기보다, 

진실의 세계에서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겠소!!!"


이러한 그의 결정은 모든 관걕들의 박수를 받을 만 하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권력과 통제에 대한 인간 의지의 승리를 찬양하는, 휴머니즘에 충실한 영화이며, 


동시에 현실과의 개연성을 가지는 매스컴과 권력, 그리고 인간의 상품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고 하겠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작할만한 내용이지만, 

한편,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해석도 가능하다. 


프로듀서와 트루먼의 관계를, 

앞에서 말했듯, 인간들간에 나타나는 착취자와 피착취자로 보지 않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암시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연을 조정하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통제하는 존재, 

적어도 트루먼의 세계에서는 프로듀서가 ‘신’이다. 


태양(사실은 조명이지만)이 번쩍 하면서 프로듀서는 목소리만으로 ‘임재’한다. 

트루먼에게는 마치 태양이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누구인지 모를 절대자, 그리고 통제자. . . 그는 말한다 : 

“너는 내가 줄로 재어준 곳에만 거하라. . . ”


문제는 영화가 이 장면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는 운명과 통제의 주체가 곧 ‘신’인 것처럼 묘사한다고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관객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신이 절대자이기에 곧 통제자이고 마음대로 인간의 운명을 조작하는 억압의 근원'이라는 도식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다. 


블레이드러너에서 창조자가 차가운 과학자로 묘사되었다면,


이곳에서는 신이 인간을 억압하는 통제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의 시대라는 말을 한다. 

대중 매체나 시대사상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는, 

간접적이지만,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다. 


기독교나 하나님에 대한 관념도, 

깊이있는 고민보다는 이러한 부정적인 1차적 이미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절대자인 동시에 통제자 라는 . . .




우리의 삶과 세상속에서 보이는 많은 모순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신이 있다면 그는 전능하고 선하고 정의로운가 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신정론'이라는 이 주제의 역사는 깊다. 신이 전능하다고 선하다면 왜 이 세상에 죄와 고통과 모순이 넘쳐나는가? 


몇가지 쉬운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신은 전능할지는 몰라도 선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인간을 구해주거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다는 것. 


2. 신은 선할지는 몰라도 전능하지는 않다. 인간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 


3. 신은 전능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4.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트루먼 쇼에서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신의 이미지는,


트루먼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지 않으며, 강력한 능력으로 인간을 구속, 감시하고 통제하는 존재에 가깝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전지전능하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고, 

인자하고 인격적이며 인간과 인격적인 소통을 원하며, 

인간의 문제- 죄와 고통과 허무 -를 슬퍼하다가, 

결국 그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과 함께 하다가, 인간을 대신해서 피흘려 죽는, 

'절대자인 동시에 인격적인 하나님'과는 무척이나 다르다. 


만일 이 시대에 신의 존재를 전하고자 한다면 

앞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이미지를 겉어내고, 

자신이 경험한 진정한 신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선행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쨌든, 이 영화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거짓의 세계 속에서 착취당하고 있다.

인간은 진실을 원하며 자유를 원하며 해방을 원한다. 


진실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유와 구속이라는 부분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프로듀서는 윤리와 안전이라는 이유로 트루먼을 구속한다. 


또한 어느 곳이 구속의 공간이고 어느 곳이 자유의 공간인가? 

영화 매트릭스와 연결짓자면, 트루먼의 세계는 일종의 매트릭스고, 그 세계와 통제자를 과감히 떠남으로서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

.

.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