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친절한 금자씨: 평면적 복수극, 그리고 속죄와 구원의 갈망>


 


2005.11.20  이인엽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에 이어 박찬욱 감독의 '복수3부작'을 마무리 하는 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전작들과 비교하며 금자씨를 분석해 보자.


 



I. 전작과의 비교: 인물과 구성의 측면에서...




‘친절한 금자씨’는 구성이나 인물의 캐릭터면에서 상당히 평면적인 복수극이다. 예를 들어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겪은 감옥생활의 처절함이나, 고통과 복수에 대한 점차적 몰입, 주인공이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극적인 반전 등과 같은 장치가 없다. 감독은 이미 복수 3부작이기 때문에 굳이 복수에 대한 설득력이나 당위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다. ‘왜’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금자(이영애)는 복수를 위해 13년간 치밀하게 동료를 포섭하고 복수를 준비한다. 완벽한 미모와 철저하게 준비된 친절, 만화적인 구성을 통해 그녀의 계획은 너무나 완벽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전작들에 비하면 복수의 과정 자체가 지극히 순탄하고 평면적이다. 감방생활은 비교적 살만 했고 금자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그녀를 만난 이들은 모두 그녀의 친절에 감격하고 그녀의 동조자가 된다. 인간관계와 세상살이가 이렇게 단순한가?


 


순수한 악으로 그려지는 백선생(최민식)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내적인 고뇌도 없으며, 초지일관 악하다. 돈을 모아 '요트를 사기 위해서'라는 유괴 살해의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누나의 신장이식 수술을 위해 했던 유괴가 뜻하지 않은 여자아이의 죽음을 낳고, 생각 없이 털어놓은 이야기가 한 소녀를 죽음으로 이끈 ‘올드보이’의 경우와 달리, 백선생의 행동은 우연성이나 실수가 아닌 순수한 악 그 자체이다. 금자씨의 경우가 오히려 우연히 죄인이 되는 경우기에, 백선생은 복수라는 설정에서 악이라는 역할을 그저 수행하는 기계적 장치에 불과한 느낌이다. 


백선생이 부각되는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영어로 금자의 말을 금자의 딸에게 번역하는 장면이다. 금자가 영어를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백 선생을 통해 금자와 딸이 의사소통하는 설정은, 백선생의 악행과 그로 인해 파괴된 관계에 있어서 그 원인 제공자를 통해 설명을 듣는다 것, 그리고 원초적인 악행의 순간으로 돌아가서 금자와 딸이 화해의 단초를 갖게 된다라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물면에서 또 한 가지 아쉬운 존재는 전도사(김병옥)이다. 종교적인 신념에 빠진 포교자에서, 백선생의 하수인으로 손쉽게 돌변하는 것은 좀 이상한 설정이 아닐까? 현실의 기독교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은 표현할 수 있었겠지만, 차라리 그보다는 교도소, 신앙간증, 흰 두부로 상징되는 제도권의 속죄방식을 대표하는 인물로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듯 하다.


 

 


II. 복수에 대하여




1. 복수하는 금자씨


 


금자씨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그녀는 금자씨는 목표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위선으로 사람을 포섭, 이용하는 일종의 실수 없는 복수 기계이다. 영화 포스터에 보면 금자씨를 성모마리아와 유사하게 묘사해 놓은 그림이 있다. 감옥에서도 회개한 금자씨는 미모와 친절로 인해 성녀와 같은 존재로 다루어 진다. 하지만 실제 금자씨는 성녀의 모습과 마녀의 모습을 오간다. (감방을 지배하던 여자 죄수의 별명이 마녀였는데, 금자씨가 그녀를 물리친 후 그 별명은 금자씨에게 돌아가게 된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했지만, 마녀를 마녀 되게 한 것은 남성들이었다. 여기서는 백선생이 바로 금자씨를 마녀로 만든 장본인이다.


 



빨간색 눈화장과 무표정한 얼굴은 인간성의 상실을 보여준다. 출옥이후에는 그녀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기가 어렵고 그녀의 인격을 경험하기 어렵다. 기도를 올리던중 개로 변한 백선생을 살해하는 꿈을 꾸며 웃는 모습에서 그녀가 복수를 이루기 전까지는 속죄와 구원 보다는 철저하게 복수를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수에 대한 집착은 인간성의 파괴를 넘어 일종의 다중인격 혹은 빙의(귀신들림)로 까지 느껴진다. 실제로 금자씨가 백선생을 마취시켜 잡은 후, 가위를 가지고 미친 듯이 그의 머리를 자르는 뒷모습에서, 확 돌아보는데, 그 순간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2. 금자씨의 속죄


 


금자씨가 인간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즉 금자씨의 인격성이 돌아오는 순간은 복수가 끝난후 자신의 죄(원모에게, 그리고 딸에게 지은)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다. 원모에 대해서는 손가락을 자름으로 죄 값을 치르려 하며, 딸 제니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감정을 갖는다. 화장실에서 원모의 유령을 만났을 때 금자씨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원모는 입을 막아버린다.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자신에게 죄를 지은 백선생을 응징하던 금자씨는 원모의 유령 앞에서, 그리고 자신의 딸 제니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금자가 받은 고통은 사실 그렇게 크지 않다. 제니는 빼앗겼으나 다시 찾았고, 감옥 생활은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금자가 받은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이 원모를 죽인 유괴에 우연히 가담하게 된 것, 그리고 그 죄를 온통 뒤집어 쓴 것이다. 동시통역 장면에서 금자는 제니에게 백 선생의 죄는 “엄마(금자)를 죄인으로 만든 죄”라고 말한다. 즉, 금자의 내면, 복수의 밑바닥에는 원모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이 존재하고 있다.


금자는 복수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 안에 있는 죄책감을 해소, 혹은 대체하려고 노력한다. 허나, 결국 복수가 끝난 후에는 이를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백선생에 대한 처형이 집행된 후 보이는 금자의 클로즈업 - 잔혹하게 웃다가 처절하게 우는 이상한 표정- 은 복수에 대한 성취감과 동시에 밀려드는 허무함과 실존을 보여준다. 복수, 그리고 그 이후!


 


금자는 제도권이 정해주는 방식(교도소, 신앙간증, 흰 두부)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속죄와 구원을 추구한다. 전도사가 제시한 흰 두부는 거부하고, 자기 손으로 만든 하얀 케이크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구원과 속죄를 주지는 못했다는 것으로 그려진다(나레이션 등).




“내 영화에는 어떤 어리석은 짓,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은 거기서 원래의 순결한 상태로 돌아가려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사용된 용어로 하자면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 하고 그것이 대개는 좌절되지만 어쨌든 노력한다는...” - 박찬욱 감독 인터뷰 중.  




영화는 백선생의 하수인이 되는 전도사의 모습속에서 현실의 기독교를 비웃지만,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제시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설명, -죄, 죄의식, 속죄, 구원- 과 상당히 연결점이 있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죄와 속죄가 삶에 있어 본질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3. 피해자 가족들과 복수


 


금자는 백선생을 잡은 후, 살해된 아이의 부모들에게 실제 집행을 넘긴다. 난데없이 '복수의 주체'에서 '복수의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그 복수가 끝나자 역시 금자씨는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빵집에서 케잌을 먹은후 가족들은 금자를 남겨두고 성급히 자리를 떠나버린다. 피해자 가족들의 복수장면에서 유괴살해에 대한 처절한 묘사와 동시에 복수의 희화화도 드러난다. 특히 가족들이 보이는 모습, 예를 들어, 복수의 방법을 논하는 과정, 그리고 유괴범의 돈을 계좌로 넣어주기를 바라는 등은, 관객들로 하여금 복수에 동조하다가 다시 불편한 감정을 갖고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III. 등장인물들




영화에서 재미있는 점은, 과거 복수 시리즈에 출연한 여러 배우들이, 크고 작은 다른 역할로 다시 출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적이었던 송강호와 신하균은 동료 청부업자로 등장한다. ‘올드보이‘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최민식(오대수)은 순수한 악역으로 나온다. 최민식에게 복수하는 유지태(이우진)가 피해 아동인 원모의 유령으로 나온다. 이우진의 보디가드로 출연해 최민식을 두들겨 팼던 김병옥은 전도사로 출연하여 백선생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 자살한 이우진의 누나로 출연한 윤진서는 금자의 감방동료로 짧게 출연한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에게 최면을 걸어던 차갑고 카리스마적인 최면술사(이승신)는 백선생의 아내로 나와 그에게 학대를 당한다.  올드보이의 괴상한 감방 두목으로 나온 오달수는 금자를 고용하는 빵집주인으로 나오고, 짧지만 금자를 이끌고 가는 여 간수로 출연한 사람은 특이하게도 임수경이다. 분단체제에 저항했던 통일의 꽃(?) 임수경이 지친 듯한 표정의 무력한 간수 역할로 출연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재미도 있겠지만, 서로에게 고통을 주고 복수를 주고받는 전작의 인물들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고 각기 다른 역할로 나타나는 모습은 윤회설을 떠올리게도 하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을 생각해보게도 한다.


 

 


IV. 정치학적인 시각에서 본 금자씨




근대국가는 폭력의 독점을 통해 사회를 운영한다. 사적인 복수는 금지되어 있다. 그 대신, 국가가 제시하는 속죄와 처벌의 기제(법, 경찰, 재판, 감옥, 병원, 교회 등등)가 이를 대행한다. 이는 사실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복수를 갈망하는 인간의 심성과는 맞지 않는다. 법과 경찰은 진범을 잡는데 실패하고, 감옥은 간수들 간에 존재하는 폭력을 통제하지 못한다. 종교는 진정한 개인의 속죄보다는 손쉬운 간증집회로 성과를 얻으려 하고 실제로 다른 욕망과 착취의 시스템을 추구한다.


 


이러한 훈육 시스템의 한계에 있어서, 금자씨는 시스템에 순응하는 듯이 행동함으로서(모범적인 감옥생활, 신앙간증 등) 제도권에 안심을 주고 나서, 자유를 얻은 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 훈육시스템을 조롱하며 무시한다. 금자씨는 감옥속의 자율영역을 통해 종횡무진 활약하며,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서, 그 제도속에서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얻어 자신이 계획하는 복수의 실현을 위해 끌어들인다. 경찰(남일우)은 진범을 잡지 못하고 금자를 억울하게 만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며, 금자의 복수를 보조하는 뒤처리를 맡는다. 이러한 사적인 폭력을 상징하는 것이 권총이다. 권총의 설계도를, 빨치산 출신 할머니에게서 얻는것도 대단히 상징적이다. 빨치산은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 이전의 존재, 국가 권력이 확립되기 이전의 상태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근대국가 체제에 대해, 그리고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복수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V. 마치며




금자씨는 간단히 규정하기는 어려운 영화이다. 여러 배우들이 교차되어 나타났듯이 이 영화 금자씨는 하나의 영화로 보기 힘들고 지난 복수 시리즈의 무게가 실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답은 없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복수심을 화두로 인간의 실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거부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아내는 자극적인 장면들과 많은 이야기거리들과 함께...


북수 3부작을 마무리하는 박찬욱 월드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지만, 전작들에 비하면 좀 아쉬운 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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