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쿵푸허슬: 비주류를 떠난 주성치 왕국의 도래


2005.01.19 이인엽









 


지난 주말 주성치의 쿵푸 허슬을 보았다. 

우리교회에 있는 몇몇 주성치 팬들과 함께.


굳이 영화평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주성치의 팬으로서 몇자 적어본다. 

(참고로 스포일러 있음) 


------------------------------------------------------------


주성치 팬들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두가지로 구분된다. 

주성치의 유머를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주성치의 유머는 좀 생뚱맞은데가 있다. 

엉뚱한 상황에서, 전혀 그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인물, 상황들이 나오고 

또 그런 것이 다른 상황에서 반복, 또 반복된다. 

우스꽝스러운 것을 아주 진지하고 장중하게 표현하여, 웃음을 더욱 증폭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림 축구에서 보면, 주인공 주성치가 만두가게 앞에서 자기의 꿈을 이야기 하는데, 

그걸 들은 지나가던 학생, 아저씨, 아줌마의 눈에서 불이 일어나고, 

다같이 단체로 춤을 추는, 뮤지컬스런 장면들 . . . 


주성치와 콤비로 나오는 아저씨들이 몇명 있는데, 얼굴만 봐도 웃긴 오맹달이나 나가영 등이다. 

종종 그들은 정말 황당한 아이디어들을 


안그래도 성조가 있어 울렁거리는 중국어로 

흥분에 겨워 혹은 자신감에 넘쳐서 눈빛을 번득이며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주성치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천박하고 어설프고 어리버리 한 인물들의 반전이 주는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주성치를 비롯하여 그의 영화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대놓고 망가져 있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속에 어떠한 비범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물론 감춰져 있고, 다만 중간중간에 그것을 암시하는 복선들이 약간씩 나타난다. 

주인공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삶의 누추함과 허접한 현실에 끌려다니며, 

약간은 씁쓸하기까지한 웃음을 자아낸다. 


예를들어 쿵푸허슬에 그대로 등장하는 소림축구의 인물들은 대표적인

3류인생 분위기이다. 


그러나 어느순간, 숨겨진 비범함을 발견하게 되고, 

환골탈태를 하듯, 그는 영웅으로 변신하게 되고, 

뜻하지 않게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에는 세상을 구한다. 


바로, 주성치와 그 친구들이 주는 삼류인생의 분위기, 

이들이 경험하는 삶의 누추함과 그것을 뒤집어 없는 반전과 거기서 나오는 카타르시스가, 

관객들에게 흥분과 공감을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 삼류인생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것이 바로 주성치 영화의 매력이라고 본다. 


이러한 주성치 유머의 공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영화는 이상한 오바액션과 뜬금 없음으로 가득찬 


삼류저질 코미디로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유머를 아는 자들에게는, 

주성치 영화를 볼 때마다 무릎을 치며 탄복하고 배꼽을 잡을 수 밖에는 없다. 


이 간극은, 뭐 굳이 메울 필요도 없고 

그저 자신의 취향이려니 하면 된다.







약간의 매니아적 성격을 띄던 주성치 영화가, 

메인 스트림으로 도약한 영화가 바로 소림축구가 아닐까 싶다. 


각기 엄청난 소림무공을 지녔으나, 흩어져서 3류인생을 살던 주성치와 그 형제들. 

우연히 소림무공을 축구와 접목시키려는 주성치의 아이디어에 모여든 그들은, 

그러나 험하게 살아온 세월로 인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동네축구단에게 처절한 농락과 굴욕을 당하던중 . . . 

주성치 특유의 오바액션 장면 - 하늘에 먹구름이 뭉게뭉게 지나가고 이상한 기운이 감돌면서, 

숨겨진 그들의 무공이 돌아와 승승장구 하여 우승하게 된다는...


물론 이 영화도 역시 주성치의 유머 공식을 모르면, 

유치한 축구만화에 그칠 뿐이다. 


소림축구로 주목을 받은 주성치는 이제 미국의 투자를 받아서,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쿵푸 허슬'을 제작했다. 


자, 이제 부터 쿵푸허슬이다. 







이 역시 주성치 영화의 기본적 골격을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 어리숙한 돼지촌 사람들과 잔악무도한 도끼파의 대립을 그리고 있고, 

삼류인생인 돼지촌 사람들중에 


알고보니 절대 고수들이 숨어있었다는 스토리이다. 


그런데, 도끼파의 공격앞에 의외로 너무 빨리 고수들이 정체를 드러낸다. 

역시 어설픔과 진지함이 믹스되어서. .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좀더 삼류인생 분위기와 어설픔, 위기상황을 겪다가 나와야 하는거 아닌가? 


쿵푸허슬은 이전의 영화들과는 좀 달랐다. 

초반의 세 명의 고수(각각 오랑팔괘곤, 금강투, 십이로담퇴를 쓰는 고수)에 이어 더 강한 악당들이(악기로 음파 공격을 하는 암살자 두명), 


또 더 강한 고수(돼지촌 부부)가, 또 강한 악당(최종 보스인 야수)이 번갈아 가면서 나타나, 


무공의 인플레이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잉은 현실감있는 스토리나 설정보다는, 물량주의적인 CG로 메꾸어 진다. 







그리고 중간에 암시된 장면 (신호등 속에서 부상을 치료하고 나오는)에서 이미 보여진 대로, 

주성치는 고수중의 고수로 환골탈태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에 보였던 3류인생 - 반전 - 카타르시스의 구도보다는, 

강력한 메시야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게 아쉽다. 

같이 본 선배는 마치 그가 '주성치 왕국의 황제'처럼 등장했다고 했다. 


특히 후반부 도끼파들과의 1대 다수 결투장면은 내용면이나 화면상으로나 


매트릭스 2편에서 네오가 복제된 스미스 요원들과 싸우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역시 좀 식상하다. 







일상에서 비롯된 소소한 스토리들은 이런 CG의 난리통 속에서 자리를 잃는데,

예를 들어, 막대사탕이 상징하는 어린시절의 기억과 순수한 사랑은 

어색하게 삽입되어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듯 하다. 


물론 여기저기 주성치 영화의 톡톡튀는 아이디어들과 조연들의 멋진 연기등은 관객들을 즐겁게 하지만, 

아무래도 물량주의화 된 주성치 영화가, 원래의 색깔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무래도 전작, 소림축구의 부담을 의식한듯, 

초반에 아이들이 갖고 놀던 축구공을 터뜨리면서, '요즘 누가 축구해?'라고 하는 장면이나, 

주성치 영화 답지 않은 초반의 잔인한 장면들, 과도한 CG 등은 이런 생각을 강화시킨다. 


또한 이제 홍콩을 넘어 중화권, 전세계로 관객의 폭을 넓히면서, 

일상의 소소한 부분보다는, 무언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을 소재로 하게 된것 같은데, 

그것이 바로 쿵푸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전세계 인들이 열광해 온 쿵푸. 


무명의 걸인에게 무공비결을 얻어 절세고수가 된다는 설정. 

돼지촌 주인 아줌마(원추)가 구사하는 사자후는, 무협지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김용의 '영웅문 3부'에서 금모사왕 사손 이 구사하는 무공이며, 


돼지촌 주인아저씨는 유명한 태극권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후반부에 '야수'가 구사하는 합마공은 두꺼비를 형상화 한 것으로, 영웅문 1부의 서독 구양봉이 사용하는 무공이기도 하다. 

또한 맨 마지막 장면에서 걸인이 파는 무공비급들을 언뜻 보면, '일양지', '독고구검' 등, 

역시 김용의 소설에서 나온 무예들이다. 

여래신장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석가여래의 손바닥으로 공격하는 무공이다. 


주성치가 불교신자라는 말을 들은것도 같고, 서유쌍기 같은 영화에서 그랬듯이, 

여기서도 불교적인 색채가 많이 나타나는데, 

막판에 공중으로 날아오른 주성치가 석사모니를 만나고 

여래신장으로 야수를 물리치는 장면이 그런 영향인 듯 하다.  


과도한 추측일 수 있지만, 이것은 중국적인 것, 에 대한 동경과 강조라는 점에서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게도 한다. 

특히 소림축구에서 보면, 결승전은 소림무공을 바탕으로 한 주인공 팀과, 

미국의 의학기술에서 나온 약물을 사용한 상대팀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데,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해 볼 여지도 약간은 있다.


어쨌든 기존 주성치 영화의 공식을 기대한 팬으로서 약간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오락성과 재미 면에서 쿵푸 허슬은 정점을 찍은 영화 같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