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괴물(2006)- 반미주의 그리고 가족>




2006.11.16 이인엽 


 





2006년 최고의 관심을 끌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이 영화의 메시지는 두가지 화두로 요약된다: 반미주의 그리고 가족.



첫번째, 반미주의.  


 

영화 첫 장면부터 나오는 독극물을 방류는 실제 미군부대에서 있었던 사건을 재연한것이며, 괴물의 기원이 미군부대에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괴물이 난동을 부리자,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있다고 하며 감염된 자들을 격리시키는데, 이는 생물학 무기 실험을 위한 명분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정부, 경찰, 병원 등은 딸이 살아있다는 가족의 말을 믿지 않으며, 단지 미국의 요구에 협력하는 무기력하며 매판적인존재일 뿐이다. 결국 미국 정부가 위협이라고 지목한 괴물과 바이러스(레드 바이러스?)는 미국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한 것임이 드러난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50여년간 미국이 제시한 공산주의의 위협에 길들여져 살아왔다. 그 괴물과 바이러스의 확대를 막는 것이 남한 사회의 최고의 목표였고, 그에 따라 통제되어 왔다. 물론 냉전기에 공산화의 위협은 실존했다. 


그러나 미국은 전세계에서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입정책을 추진해, 직접 전쟁을 하거나, 제3세계에서 많은 군사독재정부를 지원했었고, 이 와중에 미국의 패권이나 미국의 하수인인 군사독재정부에 반발하는, 민족주의세력, 민주화 세력, 좌파들은 무자비한 탄압을 겪기도 했다. 


결국 미국이 공산화를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제3세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이루는데는 오히려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미국은 민주주의를 지킨것인가 아니면 민주화를 억제한 것인가? 그리고, 그런면에서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이룬 제3세계의 국가들은 미국의 도움으로 민주화 된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된 것인가 질문해 볼 수 있다. 한국만 해도,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에 대해 미국은 공산화 방지와 안정이라는 차원에서 지지를 보냈다. 물론 약간의 압박을 가하기도 했고, 재야세력을 일정정도 보호하기도 했지만. 


 


복잡한 역사를 쉽게 결론내릴 문제는 아니지만, 이 영화는 미국에 신물난 386세대의 반미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삼촌이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은 80년대 시위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하며, 한국 여성의 힘(?)을 상징하는 양궁의 활이 괴물을 끝장내 버린다. 물론 과도한 민족주의나, 모든 것을 미국의 음모로 돌려버리는 단순한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 가족.


 



앞에서 말했듯 한국의 정부와 조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족이 믿을 수 있는 것은 한국 정부도 경찰도 아닌 가족 스스로인 것이다.


 


근현대사의 질곡, 즉 식민지배와 전쟁과, 가난극복과 경제성장, 민주화 등등의 과정을 겪어오면서, 한국사회를 지탱해 준 것은 결국 가족이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나타나듯이, 국가는 국민을 지켜주기에 철저히 무능했다. 당장이라도 북진통일이 될것처럼 얘기하던 이승만은 전쟁이 나자마자 도망쳐버렸고, 국가는 피난가는 가족중에 형과 동생을 징집해버린다. 훈장을 따면 동생을 가족들에게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고, 결국 환멸을 느낀 형은 북한군에 투항한다.


 


괴물에서도 가족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가족 스스로의 사랑과 희생 뿐이다. 목숨까지 내거는 할아버지의 희생, 딸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버지, 조카를 위해 총과 활을 들고 하수도를 누비는 삼촌과 고모...역시 가족주의와 맞닿아 있다. 내 가족을 지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그 한계는 역시 '내 가족만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가족주의가 가족이기주의가 되는 것. 이것은 동심원처럼 지역주의, 학벌 연고주의 '우리가 남이가'로 연결된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딸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런데, 아버지는 찾던 딸이 죽고 나자 비로서 함께 있던 소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사실 그 소년은 집없는 떠돌이로 가족이 경영하는 한강변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했던 고아였다.


 


마지막 장면은 기존의 혈통적,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보여준다. 친 딸은 이미 죽었지만, 고아인 소년과 함께 살게 되고,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진다. 일종의 입양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20세기를 뚫고 올 힘이 되었지만,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러한 전통적 가족주의마저 파괴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남을까?


 


하여간 이 영화, 괴물은, 괴수영화임에도 매우 정치적이고 많은 생각을 주는 영화라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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