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소통,공감,용서의 부재>
2005.06.28 이인엽
이 영화의 비극적 정서와 잘 어우러지는 영화 OST를 들으며 시작해 보자.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는 무척이나 스타일리쉬 한 영화로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하지만 뒤로 가면 흡인력이 약간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지만 완성도가 탁월하고 공들인 티가 많이 난다.
복수극으로서 확실한 목적이나 통쾌한 성취가 아닌 꼬여가는 상황과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관객이 인물들에 공감하기 보다는 거리를 두게 만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김지운 감독은 인터뷰에서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비극으로 달려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식의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위 '가오'잡고 '후까시'잡는 남성들의 행태들이다. 이영화가 다른 점은 그런 가오잡는 모습들이, 결국에는 스타일 구겨지는 피바다로 마무리 된다는 것이다. 다들 폼을 잡으려고 하는데 결국 폼이 나질 않는다. 결론적으로, 폼나기보다는 미숙한, 즉 온통 분노를 통제할 줄 모르고, 끝까지 한번 가보자고 설치는 남성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1. 보스(강사장, 김영철)
그는 선우(이병헌)에게 수줍은 듯이 자신에게 젊은 애인이 생겼다고 이야기 한다. 순간 좀 인간미가 있는 듯 하였으나 곧이어 그는, 다른 사람이 생긴것 같은데 확인이 되면 알아서 처리(?)해 버리라고 냉혹하게 말한다.
희수에 대해 선우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다는것을 발견한 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라 하다가 경쟁관계에 있는 문석(김뢰하)을 통해 몽키스패너로 선우의 손을 찍고 비오는날 땅에 생매장을 시켜 조직의 쓴맛(?)을 보게 한다. 그에게 용서란 없고 힘으로 굴복시키거나 '처리'해 버리는 것이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이번 일은 손목 하나로 끝날일이 아니야...이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그렇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그것이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만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2. 백사장(황정민)
그는 선우에게 당한 이후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복수할 기회를 노린다. 해결사를 보내 메시지를 전한다. 한마디만 해라 : "잘/못/했/음..." 선우는 이를 거래를 트기 위해 전략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했으나, 영화 전반의 흐름과 백사장의 캐릭터를 볼때, 그냥 열 받고 자존심이 상해 복수를 하고 싶은것 아니었을까 싶다. 초반에 전화기로 부하를 두들겨 패는 장면에서 보듯 열받으면 물불 안가리는 캐릭터의 전형이다. 주로 힘있는 아버지 밑에서 하고싶은거 다 하고 자란 철부지 형이라고나 할까?
백사장을 연기한 황정민은 나중에 엄청난 배우가 되는데, 이 영화에서 악역을 징그럽게 잘 해 냈다. 영화 '여자, 정혜'의 남자주인공인 어수룩한 소설가인걸 나중에 알고 무척이나 놀랐다. 그만큼 본인의 역에 확실히 동화되는 배우인 듯.
3. 선우(이병헌)
한번의 실수로 온갖 엽기 잔혹극을 겪은 후, 그도 복수를 결심한다. "잘 모르겠는데...그냥 끝까지 가보려구". 자신도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분노를 품고 돌진한다. 갈때까지 갈 수 밖에 없다. 이미 한번 틀어진 이상 회복이나 용서의 기회는 없기에. 대화를 들어보면, 이미 그의 전임자(?)도 선우와 같은 우연한 일로 강사장에게 '처리' 당했고(손목 골절 형에 처해졌다...), 그 일을 처리한 것이 바로 선우였음이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한때 '일처리'를 맡았던 그가 같은 조직의 논리하에서 '처리'의 대상이 되는 날이 온 것이다.
한편, 이런 잔혹극이 발생한 원인은 그 결과에 비해 좀 허탈하다. 그냥 우연히 선우가 희수(신민아)에게 필이 꽃혔다는 것...이 부분은 영화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데, 희수가 첼로 연주를 하는 것을 보면서 선우가 씩 웃는 모습에서 설명된다.
그는 그 순간 잠시 다른 세계를 본 것이다. 칼부림이 난무하는 조폭의 세계가 아닌, 여대생, 음악, 연애 등으로 대표되는 소프트한 세계. 그러나 대단한 사랑이나 결단은 아니다. 희수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서라거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해서 몸부림 치는것도 아니고, 그저 선우와 강사장이 틀어지게 되는 우연한 계기가 되어 모든것이 어긋나고, 출구가 없기에 그져 막다른 곳을 향해 돌진 뿐이다. 곁가지이지만, 신민아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거나 아니면 순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 그냥 밋밋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상황이 그렇게 된 이상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갈때 까지 가는 것이다.
선우는 총을 들고 나타나 강사장을 겨냥하고 울먹이며 말한다. "나한테 왜그랬어요?"
이 장면은 치밀하고 냉혹한 복수와는 거리가 먼, 마치 사춘기 소년이 아버지에게 대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7년동안 죽도록 섬긴 것이 억울하기도 했겠지만, 한번의 실수로 자신을 짓밟아버린 것에 대한 인간적인 억울함이 배어나오는 것이다. 스타일리쉬한 복수극이 아닌, 허무한 원인에 허무한 결말은 오히려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잘 드러낸다. 인생사는 때로 불합리한 이유로 흘러가며, 가오잡는 남성들이 그리 멋있지 못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은 대화하는 방식을 전혀 모른다는것. 그렇기에 상대방의 진심을 폭력을 통해서 알아내려고 하고, 총을 갖다 대고서야 속마음을 이야기 한다. 선우와 희수의 대화도 계속 핀트가 맞지 않는다. 선우는 희수의 집 앞에 희수가 맘에 들어하던 스탠드를 몰래 놓아두는 것으로 겨우 자신의 감정을 알릴 뿐이다.
조연이었지만 조직에서 선우와 경쟁하는 김뢰하의 양아치스러운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선우에게 보이는 묘한 애증의 감정도.
4. 유아기적 남성들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이 영화의 남성들은 모두가 소통의 능력과 공감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유아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강사장: 너 도대체 왜 그랬냐?, 선우의 말 : 나한테 왜 그랬어요? (Why you do this to me?) 말 그대로 '애스러운' 질문이다. 관심은 오직 자신과 자신이 겪은 고통, 분노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후까시만 잡는 남성들이 판치는 세계는 참으로 암울하다. 영화에서처럼 우연한 사건만으로도 갈등은 깊어만 가고 피를 보고야 끝나고 만다. 원인이 중요한 것이 아닌 그 세계 인간들의 미숙함과 그들이 구성하는 조직원리가 비극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두가 갈등의 해결을 추구 하지만, 소통이나 공감의 가능성에 대해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는 있을수 없다. 결국 힘을 통한 상대의 굴복과 복수를 통한 폭력적 소통을 선택할 뿐이다.
5. 복수의 심리학
내가 생각하는 '복수'의 정의는 이것이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소통'과 '공감'을 추구함.
자신이 받은 고통을 상대방이 이해해 주기 바라는데, 그것을 전달할 용기가 없고, 상대방이 자기를 이해해 줄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 혼자 그걸 참고 삭이긴 싫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똑같은(혹은 더 큰) 고통을 안겨줌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폭력적인 방식의 소통과 공감이다.
이를 가장 잘 모여주는 영화가 바로 '올드보이'이가 아닌가 싶다. 감금, 최면술 등등 온갖 SF적이고 극단적인 과잉 설정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다 : 내가 받은 고통을 너도 경험해보라. 내 마음을 너도 느껴보고 니가 무슨짓을 했는지 깨달아라.
사람을 수십년간 가두고 최면술을 걸고 등등, 왜 그런 장기간의 수고스런 작업을 해야했을까? 자신이 받은 고통을 이야기 했을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수긍하고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달콤한 인생에서 백사장이 잘/못/했/음/ 한마디에 집착 하듯, 올드보이의 이우진(유지태)도 오대수(최민식)에게서 잘못했다라는 말을 받아내고자 한다. 그래서 감금과 최면술과 근친상간을 경험하게 하고서,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며 사정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똑같은 고통을 통한 역지사지. 그러나 복수의 끝은 허무이다. 왜냐하면 복수를 통한 소통은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저주와 파괴를 낳기 때문이다.
피가 튀는 영화 '킬 빌(Kill Bill)'에서도 주인공 브라이드가 참혹한 비극을 겪은 이유는 간단하다. 브라이드가 자신을 배신한 데 대한 빌의 복수. 그리고 그에대한 브라이드의 복수. 이 와중에 온갖 활극이 펼쳐지고 수십명의 팔다리가 잘려 나간다.
소통과 공감이 가능하다면 용서도 가능하다. 사람을 생매장하고 팔다리를 자르지 않고도 억울함을 풀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대화하는 법, 소통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후까시만 잡는 남성들이 판치는 조폭 세상. . . 결코 멋지지 않다. 본인에게나 남들에게나. 빨리 깨달아야 한다. 가오잡는 남성은 절대로 멋있지 않으며 단지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애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말했듯,
영원히 여성적인 것들,
즉, 소통과 공감과 용서가 우리를 이끌어올린다는 사실을!!!
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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