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브이 포 벤데타 - 전체주의화에 대한 경고와 저항>

 

2006.08.25 이인엽 

 



 



워쇼스키 형제의 전 작품인 매트릭스는 철학과 액션, 화려한 비주얼로 대중과 지식인들 모두에게 어필했다면, 이 영화는 대중적이 되기에는 너무나 정치적이라고 하겠다. 특히 국내 개봉시 홍보를 매트릭스와 유사한 액션과 비주얼을 기대하게 만들어, 관객들이 매우 실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트릭스에서 조금 추상적으로 제시된 통제와 저항의 메시지는, 이 영화에서 현실 정치에 잘 적용 되었다. 







테러리즘은 테러(공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되며, 공포는 무엇보다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 된다. 

국방부 장관이었던 서틀러는 독재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반 체제 인사들을 비밀 수용소에 수감하고 생체실험을 통해 생물무기를 개발한다. 그리고 국가의 자작극 생물 테러를 일으켜 학교, 경찰서, 정수장등에 살포하고 공포에 질린 국민들은 독재체제를 지지한다. 정권을 장악한 후 일단의 불순분자들을 테러의 주범을 처형하며, 이미 만들어져 있었던 해독제를 판매해 엄청난 부를 획득한다. 이후 전형적인 비밀경찰체제, 언론통제로 사회가 유지되고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주문과 같이 국가의 뜻을 무조건 관철시키는 수단이 된다. 


독재자 서틀러는 이름부터 히틀러를 연상시키고, 정당의 깃발이나 권력을 장악한 방식 등이 모두 파시즘을 상징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서틀러를 연기한 존 허트는 조지 오웰 원작으로 전체주의를 비판한 영화 '1984'에서 억압적인 체제의 희생자인 주인공을 연기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1911년에 쿠바에서 스페인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명분으로 미국이 자국의 배를 폭파시킨 사건, 히틀러가 국회의사당 화재를 일으켜 유대인에게 책임을 넘긴 것, 미국이 베트남 전의 명분으로 일으킨 통킹만 사건 등과 같이 자작극 테러는 사악하고도 효과적인 정치수단이 된다. 

최근 루스 체인지라는 영화는 9.11 테러의 자작극 설을 제시하고 있는데, 자작극의 여부까지는 확인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네오콘과 부시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명분으로 9.11을 100% 활용한 것은 분명하다. 이미 네오콘들은 PNAC의 보고서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이라크 전쟁을 주장해 왔으며 충분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공포에 질린 국민들은 이라크 전쟁을 승인해 주었다. 전쟁 명분으로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나 테러리스트(알카에다)와의 연계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사실 이라크는 오랜 제제로 인해 미국을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는 나라였다. 흑연감속로에 쓰일수 있다고해서 흑연 연필심조차 반입이 금지된 상태였고, 부시가 내세운 예방전쟁이나 선제공격의 명분에 조차 모두 적용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그보다 이라크는 미국이 요구하는 석유산업의 민영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국제 석유가격에 영향을 일으켜 미국에 타격을 주었고, 석유를 유로화로 결제하기로 하는 등 이미 미국의 눈 밖에 나 있는 상태였고, 부시행정부와 네오콘들은 9.11을 계기로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이라크 전쟁을 밀어부친 것이다. 여기에는 정보부의 왜곡과 매스컴의 공포심 조장도 한몫했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비밀 수용소와 같이, 미군 관타나모 기지의 수용소에서는 재판이나 기소없이 테러리스트로 체포된 이들이 수감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수 없이 반복된다. 9.11 이후 미국의 매스컴이 하고 있듯이.  


 



브이는 언제나 화약음모 사건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는데, 이 영화의 특징은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주인공이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는다.  (따라서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휴고 위빙은 한번도 얼굴을 화면에 비추지 못한다. 참고로 휴고 위빙은 매트릭스에 스미스 요원으로 출연한 배우이다) 주인공 브이가 말하듯이 가면뒤에 있는 살과 뼈가 아닌 신념(idea)가 중요하다는 것....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데 충실해 오지 않았는가? 끝까지 자기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죽음을 맞는 영웅은 흔치 않다.


브이가 비밀수용소 폭파사고의 불길 가운데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났듯이, 부모와 오빠를 독재정부에게 잃고 평범하게 살아왔던 여주인공 이비는 수용소에서 죽어간 한 여성의 편지를 읽으며, 그리고 고문의 경험가운데 새로운 혁명적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같은 가면을 쓴 수없는 사람들이 결국 혁명을 일으킨다. 한번의 손놀림이 전체를 쓰러뜨리는 도미노와 같이, 한번의 점화가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한사람의 브이는 발화점일뿐 브이가 가진 이념이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국가의 전체주의화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전체주의보다 전체주의화(化)라는 표현이 중요한 것은 국가는 언제든지 전체주의 화 할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길들일 국민이 잠들어 있거나, 국가가 만들어낸 공포에 질려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말이다. 프랑스 학자 엠마누엘 토드는 그의 책 '제국의 몰락'에서 민주주의의 상징 미국이 이미 과두제(소수 독재정치)체제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영화의 V는 뒤집힌 A와 유사한 형태이기도 한데, 이 영화는 파시즘과 A가 상징하는 아나키즘(Anarchism, 무정부 주의)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정부에 저항하는 아나키스트이자 테러리스트이다. 전체주의적 파시즘에 대한 저항이야 쉽게 공감을 일으키겠지만, 브이가 사용하는 방법과 수단에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과연 조직도 없는 한사람의 테러 행각으로 세상을 뒤집힐 수 있을까? 나중에는 그와 같은 가면을 쓴 수많은 이들이 생겨나지만, 현실에서 그런 확장은 쉽지가 않다. 국가 조직의 힘은 탄탄하고 익명으로 저항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정말 세상을 바꾼 것은 맨 얼굴로 목숨걸고 피흘린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이 가이 포크스 가면은, 이 영화이후 국제적인 시위에서 저항정신의 상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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