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다큐멘터리영화 두개 : 천국의 야생화, 송환


 

2004.09.03 이인엽


 



<영화 '천국의 야생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TV에서 방송되었던 것이고,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이 영화가 노숙자를 한 인간으로, 

인간대 인간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은 자기를 '하늘이'라고 하는, 

20년 이상 거리에서 인생을 보낸 노숙자와 친구가 되어 그의 일상을 따라간다. 


하늘이를 따르는 두한이라는 동생의 도움으로 

하늘이는 꿈에도 그리는 고향을 찾아갔으나, 

정확한 지명과 위치를 기억하지 못해 안타까운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나 방송이 나가고 가족들이 하늘이를 찾아오고, 

하늘이는 고향에 내려가서 잠시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20년 넘게 거리에서 살아온 하늘이는 안정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만다. 


하늘이와 친한 석현이형. 그는 심한 알콜중독자이고, 

백령도의 고아원 출신으로 주민등록증도 없고 부모님도 모른다. 

그는 군사지역이어서 주민등록증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백령도의 고아원에 가고자 한다. 

그곳에는 무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멍한 눈으로 술로 세월을 보내던 그에게, 

백령도에 갈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그는 처음으로 눈에 빛이나며 발걸음이 무척이나 빨라진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려줄만한 기록은 찾지 못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목놓아 어머니를 부른다. 

그 모습은 나이든 노숙자의 모습이 아니라, 

어린시절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마치 더이상 소망이 없다는 유언을 남기듯, 백령도에 다녀온 얼마후, 

그는 부두에서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참, 슬픈 이야기였다. 그저 노숙자로만 볼수 없는, 한 인간의 슬픈 인생사...

가족, 자신의 뿌리, 알수 없는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그럼에도 현실의 절망속에 침잠해 있는 그들의 모습.

가장 솔직한 현대인의 실존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석현이 형이, 죽기전에, 

한명이라도,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시는, 절망한 자에게도 마지막 희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 '송환'>


감독은 양심수 분들과 친구가 되어 참으로 오랜시간동안 양심수 들의 삶을 비춰나간다.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그에 대조되는 그들의 초인적인 의지. 


석방된 후의 모습에서도 양심수들은 인간적이고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결국 바라던 북송의 길이 열리게 된다. 


감독은 호의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비추고, 

어느정도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양심수 분들을 미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본다. 


다양한 출신배경이 있는데, 6.25때 공산군 포로로 잡힌 분도 있고, 

간첩으로 남파되어 체포된 분도 있다. 

혹은 간첩을 실어나르는 배의 선원으로 일하다 체포된 경우도 있고. 


그분들이 폭력의 희생자인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그분들을 이상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실제 간첩활동을 하러 내려온 분들은 

냉전대립이 존재하는 남한 사회에서 용납할수 없는 적대세력이고, 

체포되지 않았다면 그 자신이 어떠한 종류의 폭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남한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 사회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양심수를 민주화 유공자로 지정하는 것 등은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이들의 개인적인 의지력이나 고통은 놀라움을 자아내지만, 

또한 이들의 사고에도 한계는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들이 지나치게 북한을 이상화 하고 있음도 영화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납북자 가족들의 주장에 대해 이들은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실제로 일본인 납북자의 경우 북일 회담에서 북한도 그 존재를 인정했고, 

남북 대치 현실상 남한에서의 납북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들은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젊음과 맞바꾼 절대적 신념이기에, 그것을 상대화 하기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이들이 경험한 북한 사회가 비교적 초기로, 지금과 같은 우상화, 독재화나 경제난을 겪기 전이라는 사실도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것 같다. 


북한에 간 양심수 들의 모습은 북한의 선전물로 소개되는데, 

'조국통일의 불사조'로 찬양되는 이들의 모습은 부자연스러 보인다. 

남한사회의 극단적 모순을 경험한 이들은, 아마도 북한 사회의 모순도 곧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너무나 비인간적이었고, 

이를 끝까지 견대낸 그들의 의지력은 참으로 초인적이었다. 

송환은 당연하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져야 한다. 

그 기다림은 남북한의 분단속에 참 오랜시간 지연되어 왔다. 


하지만, '통일의 선구자나 민주화 유공자' 보다는, 

'분단 현실의 피해자' 정도가 더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혼란과 변화의 시대, 균형잡기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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