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작은 신의 아이들 (Children of a Lesser God, 1986): 사랑과 소통의 문제>


2008. 7.이인엽






어느 섬마을의 농아학교에 부임해 오게 된 특수 교사 제임스(윌리엄 허트). 그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농아들을 가르치며, 그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귀머거리로 태어난 아이는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곧 말도 못하게 되는데, 주인공은 그런 농아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특수교사이다. 제임스는 아이들과 친해지며 열심히 말을 가르치던 중, 학교 졸업생이면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사라(말리 매틀린)를 만나나게 되고, 고집스러우면서도 신비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끌리게 된다.


그는 말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서 사라와 친해지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상처들 – 농아로 태어나 이상한 말투와 목소리로 인해 어릴 적에 자매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커서는 또래 남자애들에게 성적으로 이용당했던 것 – 을 알게 된다.


사라를 돕고 싶은 마음과 사랑에 빠져든 제임스는, 수영장에서 홀로 수영을 하고 있는 그녀를 찾아가 물에 뛰어 들어 포옹을 하고, 곧 동거 생활을 시작 하게 된다. 사라가 제임스에게 포커를 배워 사람들과 함께 게임도 하고, 아기를 낳자는 이야기도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동시에 두 사람의 차이와 소통의 한계도 부각되기 시작한다. 


제임스는 계속해서 수화로 말하는 것이 피곤하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좋아하는 바하의 음악을 듣고자 하지만, 그 음악을 그녀와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심한다. 사라는 그에게 바하의 음악을 행동으로 표현해서 보여달라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한편으로 제임스는 사라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애인들과의 관계나 성공한 장애 여성의 이야기에 대해 충분히 공감 하지 못한다. 제임스는 결국 다시 사라에게 말을 배울 것을 권유하는데, 사라는 화를 내고 그를 떠나간다.





사라는 장애로 인한 상처와 자기 방어 욕구로 인해, 혼자만의 세계를 살아왔다. 이는 사라가 밤 바람과 커튼의 움직임을 느끼는 영화 맨 첫 장면, 그리고 혼자 침묵 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 등, 느린 화면으로 신비롭게 비춰지는 영상들 속에 잘 나타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제임스가 그녀의 공간인 수영장으로 뛰어들고 함께 나체가 되어 포옹을 하는 것은, 그녀가 제임스를 자신의 세계 속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키는 것은 그녀에게 중요했다. 말을 배우지 않기로 한 것, 세상과의 분리 자체가 이미 그녀의 정체성이 되었고 그녀의 자존심과 자기 보호본능은 그런 삶의 방식을 바꿀수 없게 했던 것이다. 말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동거했던 제임스가, 다시 말을 배우라고 압박을 하자 사라는 자신이 감추고 싶었던 이상한 목소리로 괴성을 지르며 그를 떠나가고 만다.

 

남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여자를 바꾸고 도우려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일 지라도 한편으론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필요를 위해 상대를 바꾸려는 것일 수 있다. 제임스는 사라에게 쉽게 말을 배우라고 하고, 또 그녀가 하는 청소부 일을 쉽게 그만두라고 하고, 자기와 동거 하자고 한다. 그녀의 상처를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쉽게 개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자기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남성에게 저항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 그리고 자기 방어 본능에서 나온 것이며 자신의 껍질을 깨기 싫어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무엇일까? 


상대를 돕고 바꾸고 더 나은 모습이 되게 하는 걸까? 아니면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지켜주는 것일까? 이 두가지가 적절한 방식으로 조화되어야 하는것 같다. 이 세상은 상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편의를 위해 상대를 조종하는 부모와 연인들로 가득 차 있다. 동시에 상대방을 존중해 준다는 이름으로, 그 사람의 고통과 질병을 돕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늘 왜곡에 빠지기 쉽고, 모두가 자기 합리화의 대가들이기 때문이다.


정신과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코트 펙은 자신의 명저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인격적 영적 성장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좋은 목적을 위해서도 자신의 의도가 순수하고 이타적인가를 늘 돌아보고, 상대에 대한 민감한 배려와 존중, 인내심을 가져야만, 진실한 서로의 성장이 가능한 것 같다. 결국 상대를 존중하면서 상대를 도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상대를 시혜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며, 통제하며 구속하려고 할 때가 많다.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가 아닌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상대의 성장이 아닌 종속을 가져오거나 아니면 반발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으로 상대를 돕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영화는 장애인과 비 장애인의 사랑과 소통을 다루고 있지만, 이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통의 장벽들 - 언어와 문화의 차이, 인종간의 문제, 남녀의 차이 등등 - 을 대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음성언어와 수화라는 차이도 크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온 두 남녀에게서 나타나는 의사소통방식의 차이는, 사랑을 오해와 고통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는데,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휩쓴 말리 매틀린은 실제로 농아였고, 당시 19세였던 그녀는 35세의 윌리엄 허트와 사랑에 빠져 2년간 동거를 했다고 하는데, 결국 헤어졌다고 한다. (3년간 결혼생활을 했다는 말도 있음) 두 배우의 실제 삶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소통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또한 이 영화는 여류 감독 란다 헤인즈가 브로드웨이 연극을 영화화 했다고 하는데,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이 잘 나타난다. 두 사람의 심리가 담긴 장면과 배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섬마을의 아름다운 풍광 등 정말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사라가 떠나고 제임스는 일방적이었던 자신을 돌아보고, 그녀의 위치에 서보려고 노력한다. 귀를 막아보기도 하고, 그녀가 수영하던 수영장에서 혼자 잠수를 하며 그녀의 기분을 느껴보려고도 한다. 자기 반에서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 남학생을 보는 시선도 여전과는 달라진다. 무조건 바꾸려고 하던 것에서, 그 아이의 의사에 대해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기술을 배워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라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도 한다. 학교 졸업파티 때, 사라는 다시 제임스를 찾아오고, 두 사람은 서로 미안했다고 이야기 한다. 제임스는 일방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사라는 자신의 상처로 인해 제임스를 밀어냈었지만, 이제 제임스도 상처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껍질에서 벗어나는 과정일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며 사랑을 이루어 가는 것은 힘들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다. 순간적인 빠져듬의 사랑이 금새 사라지는 밤하늘의 폭죽이라면, 인내로 만들어 가는 사랑은 오래도록 타는 모닥불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아직도 사랑에 대해 관계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참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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