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영화와 세계관6. 큐브(1997, The Cube): 닫힌 계를 탈출하라! (2003/12/08)



2003.12.08 이인엽


 




 


큐브는 독특한 영화이다.

수많은 방으로 연결된 큐브라는 공간에 몇 명의 남녀가 들어오게 된다.

그들이 왜 큐브에 들어왔는지, 큐브를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큐브는 후속편들이 나와서 시리즈물이 되었는데, 이글은 1편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각 방에는 일련의 숫자들이 적혀있고,

어떤 방에는 들어온 사람을 살해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수학을 전공한 여자는 각 방에 표시된 숫자를 분석하면 위험한 방과 안전한 방을 구분 할 수 있고,

큐브의 끝으로 가게되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큐브를 지배하는 숨겨진 원리, 그것을 찾아내면 출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밀지를 신봉하는 자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진리를 찾아나가는 것처럼.


그러나 함께 안전한 방을 찾아가면서 그들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 .


어떻게 보면, 큐브는 세상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날 세상에 던져져 스스로의 생존을 책임지게 된 인간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인간이 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누가 세상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탐구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생존이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내부의 갈등에 더 집중한다.

이것은 결국 창조자와 인간의 근원에 대한 불가지론을 말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큐브는 상당히 현대적인 영화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각 인간상을 대표한다.

지식인, 혹은 과학자, 의사, 경찰(통제자), 반체제 인물, 사회의 낙오자 등등...

갇힌 공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이들 내의 갈등은 커져가고,

힘을 가진 경찰은 생존과 질서유지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통제하려 하고,

지식인을 지배해서 자기만 빠져나가려고 한다.

 

결국 영화가 비판하는 모순의 원인은 사회내의 권력이다.

파시즘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배권력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회구성원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사회 내부의 모순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역시 인간에게 초월이 필요하다는 실존적 문제를 보여준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 ‘갇혀 있다’는 것이다.


트루먼은 섬에 갇혀있다. 그의 배는 망망대해처럼 보였던 위장된 벽에 부딪히고,

비로소 자신이 조작된 세계 속에 살고 있었음을 알게되면서 그는 울음을 터트린다.

 

다크 시티에서 고향을 찾아간 주인공이 만난 것은 벽이었고,

자신이 인공도시 안에 갇혀 있었음을 발견한다.

 

13층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살고있던 세상의 끝 - 프로그램의 끝을 보게된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를 고문하던 스미스 요원이 자신도 이곳 즉, 매트릭스가 지겹다고 말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리플리컨트는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분노한다.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조작되고 한계 지워진 세계이다.


세상의 끝.

그들이 만나게 되는 벽은 자신이 살고있는 세계의 한계, 그리고 자기 내면의 한계이다.

죽음도 하나의 한계이며,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공간도 하나의 한계이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이다.


초월을 찾아 헤매는 인간은, 새로운 것을 찾아보지만

결국 스스로의 한계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로 속의 쥐처럼,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서로를 향해 공격성을 보이고 폭력을 가하고 지배하고 착취한다.

 

또한 도대체 누가, 무엇이 자신을 한계 지었는가에 분노하며,

그 벽을 부수고 나아가려 한다.

 

벽을 넘어 초월에 이르기를 갈구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무한속에 있다고 상상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한계와 세상의 한계속에서,

결핍과 권태 속에서 고민한다.

 

세상을 통제하고 지배하면 그것을 초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인간은 자유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진보한 기술과 문명은 인간에 대한 억압과 통제, 그리고 착취를 강화시켜 왔다.

 

인간에게 구원은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무한에 접속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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