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엽

영화와세계관4. 13층(The Thirteenth Floor) : 세상의 끝

 


2003.12.04 이인엽


 






 



영화 ‘13층’도 이제까지 소개한 영화들과 비슷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당시 기술의 한계가 있긴 했지만, 상상력과 설정이 매우 훌륭한 영화다. 

13일의 금요일과 같이 미국에서 13이란 숫자는 불길한 상징인데, 한국의 병원에 4층이 없듯이 미국에는 13층이 없는 건물들이 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존재하지 않는 층이라는 의미도 있다. 


고도의 컴퓨터로 현실세상과 똑같은 또 하나의 가상공간을 프로그램화 한 연구실.

가상공간의 인물들은, 현실의 인물들을 원형으로 디자인되었다.


회사의 사장(아민 뮬러 스탈)은 몰래 가상세계로 들어가서,

자신을 본 따 디자인된 하위세계의 인물 대신 활동하면서, 쾌락을 즐기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하위세계의 술집 종업원(빈센트 도노프리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사장은 죽기 전에 놀라운 비밀을 하나 알게된다.


그것은, 현실세계로 믿어왔던 자신의 공간도, 

알고보니 다른 세계를 모델로 만들어진 하나의 하위세계였다는 것이다. 

결국 세상은 여러 층의 가상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이를 알게 된, 회사 직원인 주인공(크레이그 비에코)은

아직까지 한번도 나가보지 않았던 자신의 도시 밖을 나가게 되고,


공사중이라는 표시를 넘어가자

그곳에서 세상의 끝, 정확히 말하면 프로그램의 끝을 보게 된다.


어느 날 죽은 사장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그레첸 몰)가 나타나는데,

이 여자는 상위 세계에서 온 인물이었다.


상위세계에서 이 여자의 남편이 주인공의 원형이었는데,

악독한 심성을 가진 그는, 아내가 자신의 하위세계 인물인 주인공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기 아내를 죽이려하는데,


결국 그는 경찰에게 살해되고, 주인공은 그 대신 상위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

.

.

트루먼 쇼, 다크 시티, 큐브, 그리고 이 영화에서 동일하게 만나게 되는 것은

'세상의 끝'이다.


때로는 벽으로, 프로그램의 끝으로 만나게 되는 이 ‘끝’은,

세상이 유한하다는 것을 말한다.


유한성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

왜일까? 인간은 ‘무한’과 ‘초월’을 지향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넘어갈 수 없는 벽 앞에서,

인간은 그 너머의 것을 끊임없이 질문한다.


죽음 이후에, 그리고 우리의 이 세계 밖에 무엇이 있는지 . . .


그것은 우리 세계 밖에 무엇이 있는가를 통해

우리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밖에는 어떤 공간이 있는지,

그리고 세상 밖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 - 그것이 신이든 외계인이든 -

그 존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규명 받고자 한다.


결국 벽은,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그 너머를 보게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이 영화에서는 하부세계와 상부세계를 통해

자신의 세계가 하나의 가상공간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트루먼의 배가 바다처럼 보였던 벽에 부닥칠 때,

자신의 세계가 조작된 공간이었음을 확인한다.


다크 시티의 주인공이 쉘 비치의 그림이 그려진 벽을 부수자,

자신의 세계는 우주에 건설된 인공도시임을 깨달으며,

자신이 우주인들의 실험대상이었음을 발견한다.


때로는 이러한 진실을 감추고 거짓된 설명을 통해 권력을 얻는 세력이 있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된 인간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유한하다는 것이고,

동시에 인간은 벽 뒤의 세계, 무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설명을 끊임없이 궁구한다.


또한 자신의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선 상위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로 진입하기를 소망한다.


전체적인 흐름과는 연관이 적은 이야기지만, 하나 덧붙이면,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인격의 중요성을 말하는 점이다.

다른 차원마다 동일한 인물들이 있는데,

이들은 동일한 육체와 외형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내면은 달랐고,

악한 심성을 가진 남편을 둔 아내는

하위공간의 인물이지만 주인공을 사랑했다.


이 영화는 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다른 차원의 세계들 - 진보된 세계와 그 하부세계들-로 세상을 설명하려 한다.

어찌보면 이는 소설 '개미'가 그렇듯이

모든 차원들을 상대화 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매트릭스 2가 끝나면서, 네오가 현실세계에서도 센티넬을 무력화 시키는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를 보면서, 3편에서 영화 13층과 비슷한 설정이 나타나지 않을까 추측해 보기도 했다.

'매트릭스-현실세계'의 이분법이 아니라,

영화속 세계가 '매트릭스-현실세계-현실세계를 매트릭스로 하는 또 다른 현실세계 . . .' 같은 다차원의 세계일수 있다는 추측이었다.


물론 영화는 이러한 수직적 다층화, 상대화 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굳이 설명하자면,

2편에서 이미 나온대로, 네오가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이전에도 여러명의 네오와 여러 시온들이 나타나고 없어지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으로,

일종의 수평적 다층화, 상대화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는 비슷하다.

확실한것 절대적인것은 없다.


믈론, 이것도 세상에 대한 나름의 설명일 수 있다.


어쨌거나,


'세상의 끝'...


그곳에서 인간은

'자신'과, '세상'과, '세상, 그 너머'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